단순한 요리가 좋다.
배달앱으로 삼시 세끼를 주문해서 먹는 이 시대에도 우리는 왜 많은 시간을 들여 TV와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걸까? 요리를 덜 하게 될수록 음식과 다른 사람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점점 더 사로잡히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자기가 직접 요리하는 시간보다 유튜브에 나오는 요리 영상을 보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요리하는 영상을 보는 이유는 어쩌면 요리에 우리가 정말 그리워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일 요리를 하기에는 시간이나 체력 또는 지식이 충분치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요리가 우리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비극을 원치 않는 것이다. 요리과정을 지켜보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이 울린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리처드 랭엄은 <요리 본능>에서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하며 인류의 진화 과정이 변했다는 '요리 가설'을 말한다. 우리 조상들에게 에너지 집약적이고 소화하기 쉬운 식단을 제공함으로써 요리는 인류의 뇌가 더 커지고, 내장이 줄어드는 데 기여했다. 요리 덕분에 음식을 씹고 소화하기 훨씬 쉬워지고, 강한 턱이나 크고 튼튼한 소화관은 필요 없어졌다. 대다수 동물들에게 소화는 이동만큼이나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고비용 신진대사 활동이다. 요리는 불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복합 탄수화물을 분쇄하고 더 소화가 잘되는 단백질로 만들어 대부분의 소화 과정이 신체 밖에서 이루어진 후 우리 몸으로 흡수되게 해 준다. 열은 단단한 근육 조직 속에 있는 질긴 콜라겐 조직을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젤리 상태(젤라틴)로 변화시킨다. 또한 날것으로 먹었을 때 독성이 있는 많은 식물은 열을 가하면 독성이 사라지고 영양이 훨씬 풍부해진다.
삶은 근본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경쟁이다. 요리는 인류의 조상에게 전혀 새롭고 광대한 먹을거리의 지평을 열어주었고, 다른 생물종에 비해 중요한 경쟁 우위를 안겨주었으며, 특히 먹을거리를 찾아다니고 음식을 씹는 것 말고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었다. 씹느라 온종일 시간을 보낼 필요성에서 해방되면서, 인류는 신진대사를 위한 에너지와 시간을 문화 창조 같은 목적에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다 같이 식사를 위해 둘러앉아 눈을 맞추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자제력을 발휘하는 행위는 우리를 문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함께 먹는 관습이 만들어지며 요리는 우리를 더 사회적이고 문명화된 존재로 만들었다.
한편으로 요리를 배운다는 것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미생물학에서 얻은 사실들과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원소의 결합과 변형을 통해 자연 상태의 식재료를 변형시키는 방법을 이해하게 된다. 요리 행위 자체만으로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몇 배로 커진다는 사실은 요리가 힘든 일이라는 측면을 상쇄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음식조차 산업화되면서 산업적 요리는 우리 건강과 참살이에 상당한 손실을 끼쳤다. 식품기업은 설탕과 지방, 소금을 가정에서 요리할 때보다 훨씬 많이 사용한다. 또 새로운 화학 재료를 사용해 식품 보존기간을 늘려 실제보다 훨씬 신선해 보이도록 한다. 그래서 가정식 요리가 줄면서 비만이 증가하고, 만성 질병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공장에서 조리된 음식을 더 많이 먹으면서 우리는 먹는 행위와 우리가 사는 세계와의 유대감 형성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날것을 익혀서 조리된 음식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빈도가 점점 낮아지자 우리는 음식을 달리 이해하게 되었다. 완성된 형태로 말끔하게 포장된 음식을 보면 음식이 자연이나 인간의 노동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음식은 또 다른 상품 혹은 추상적 개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합성한 인공물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기업의 손쉬운 먹이가 되고 만다.
우리는 분업을 통해 문명이라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분업 덕분에 많은 이들이 회사에서 컴퓨터로 보고서를 만들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재배한 쌀과 만든 옷을 구매할 수 있고, 집 안을 밝히는 전기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전문화는 이론의 여지없이 강력한 사회경제적 힘이지만 동시에 능력 저하의 주범이다. 전문화는 무력감과 의존, 무지를 낳으며, 결국에는 책임감마저 약화시킨다. 사회는 점점 우리에게 작은 역할만을 부여한다. 우리는 회사에서 한 가지 제품을 생산하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수많은 상품들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사실상 우리는 모든 욕구와 욕망을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있는 것이다. '생계유지'를 제외한 모든 일을 우리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거나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학습된 무력감에 짓눌리는 상황은 우리를 위해 이 모든 일을 대신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기업들만 신나게 한다.
우리나라 가구 구성에서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서는 시대에 편의점 도시락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최근 코로나19 이후 '집밥' 열기로 잠시 주춤하고 있다. 대신 배달앱으로 거래되는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020년 17조 4천억 원에 달하며 전년보다 78.6%나 증가했다. 이 금액은 이 통계 항목이 생긴 첫 해인 2017년 2조 7천억 원과 비교하면 6.4배 수준으로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수치이다. 그러다 보니 배달앱 시장은 많은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퇴출되기를 반복하고 현재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등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격돌 중이다. 또한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재료 준비 시간을 획기적으로 덜어주고 열만 가하면 되는 '밀키트'라는 새로운 영역이 식품 산업에 등장했다. 가정식 대체식품(HMR, Home Meal Replacement)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업계는 2017년 기준 약 2조 5100억이었던 국내 HMR 시장이 지난해 3조 7800억으로 약 50%가량 성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한 끼 대용식에 그쳤던 가정간편식도 다양화되고 고급화되었다. 전문가들은 가정간편식이 외식의 대체재가 아니라 ‘집밥’의 대체재기 때문에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코로나 이후에도 내가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우리도 외식을 줄이고 배달음식과 밀키트에 의존해서 식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퇴사 후 관심이 있던 요리를 동네에서 배우고 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몰랐던 훌륭한 쿠킹클래스들이 연희동에 많았다. 지금은 청도로 이전한 제철 우리 농산물을 최대한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섭취할 수 있는 자연요리법을 배울 수 있는 '평화가 깃든 밥상'과 파스타 이탈리아 요리와 선생님의 미식 여행 이야기도 함께 할 수 있는 '라 쿠치나 디 로사(La cucina di Rosa)'는 특히 나에게 요리의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다행히 아직은 봄, 여름, 가을 우리나라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제철 채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와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소금, 설탕, 단백질의 기본 구성 물질인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어 인간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고기의 성질, 가정 시간에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는 영양분에 대한 이해, 조리 순서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의 맛, 재료 준비부터가 요리의 시작이라는 것 등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을 먹는 중요함을 배웠다. 아무 생각 없이 '맛있어서' 먹던 음식들이 '맛있어서' 문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가공육 등 포화지방이나 정제 탄수화물, 인공 첨가물이 높은 음식들은 염증 지수가 높아 대사증후군 발생 위험이 남성은 1.4배, 여성은 최대 1.67배 높다고 한다. 대사증후군은 심장질환이나 뇌 질환의 가능성을 높인다.
요리의 즐거움을 위해 요리를 하거나 요리하면서 약간이나마 여가를 보내는 것은 깨어 있는 매 순간 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기업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고, 진정한 여가의 형식은 오직 소비뿐이라는 무기력한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마이클 폴란은 <요리를 욕망하다>에서 말한다.
단순한 요리가 좋다. 올리브유에 볶아 소금간만 한 '브로콜리'를 맛보면 물에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던 엄마 반찬 '브로콜리'와는 완전 다른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영양소가 덜 파괴되는 이점도 있다. 건강이 염려되는 40대여, 요리의 즐거움을 찾아보자.
* 참고도서 : 마이클 폴란 <요리를 욕망하다>, 해럴드 매기 <음식과 요리>, 리처드 랭엄 <요리 본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