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의 쓰임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자 애쓴다. 설거지 비누, 샴푸바, 고체치약, 대나무 칫솔 등 제로웨이스트 제품 한 가지쯤은 구매해봤거나 써봤을 것이다. 제로웨이스트 제품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텀블러는 이미 여러 개 갖고 있지만, 잘 사용하지도 않지만 스타벅스 50주년 기념 리유저블 컵을 갖고자 새벽부터 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제로웨이스트'는 또 하나의 소비 트렌드인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나는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누군가에게 전하려는 것인데, '나는 환경을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표현하려는 것은 아닌지 더욱 우려스럽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호황이다. 발달 장애인을 고용해 친환경 비누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 '동구밭'은 신세계인터내셔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와 협력해 고체비누 '제로바'를 출시해 큰 인기를 얻었다. 동구밭은 지난해 매출 60억 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10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식물성 천연 유기농 원료를 기반으로 하는 뷰티 브랜드 '아로마티카'는 지난 7월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두고 있는 국내 사모펀드로부터 15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화장품 업계 최초로 폐플라스틱과 폐유리를 재활용한 PCR 용기를 개발했다는 점과 고객이 사용한 용기를 회수해 화장품 용기로 다시 만드는 무한 재활용 선순환 프로젝트를 도입했다는 점 등이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친환경 대나무 소재 칫솔 개발로 주목을 받은 '닥터노아' 역시 대나무 칫솔 누적 판매량 100만 개 돌파했고 기관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활용해 생산 설비를 구축해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친환경' 타이틀을 건 제로웨이스트 제품이 엄청나게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지난 9월 초 성수동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더 피커(the Picker)' 인스타그램에 '온라인 입점 신청 플랫폼 운영 종료 안내'라는 조금 긴 공지글이 올라왔다. 이 플랫폼은 순환과 회복의 가치를 공유하는 건강한 생산자들이 직접 제품 입점 신청서를 작성해 '더 피커', 나아가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소비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통로였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 취지와는 다르게 '제로웨이스트'라는 키워드에 집중되면서 시장에서 유사한 제품들이 마구 양산되고, 중복되는 제품군의 입점 신청 쇄도해 '더 피커' 자체적으로 소통과 응대가 어려워 부득이하게 입점 신청 플랫폼을 종료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 피커'는 사실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만큼 책임감 있게 소비하는 것, 생산과 소비 이전에 물건을 깊이 있게 바라보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 시작과 끝맺음이 지구에게 아름다운 흔적이 되는 물건을 골라 사용하며 나의 소비를 돌아보고 회복의 지점을 찾아가는 것,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를 해결하는 주체적인 삶이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열 권 남짓의 책이 들어가는 작은 책 보관함을 보면서 그 옛날 한 권의 책을 얼마나 아껴서 읽고 소중하게 다뤘을지, 낡은 책 보관함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내가 가진 모든 물건을 소중하게 사용하며 가치를 더하는 것이 진정한 소비철학이 아닐까.
얼마 전 나는 우리 동네 일회용품 없는 카페 '보틀팩토리(Bottle Factory)'에서 진행하는 '설거지 원정대' 실험에 참여했다. 보틀팩토리는 일상에서 주로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대체할 물건과 그 사용법을 제안하는 '제로웨이스트 일상 가이드'를 제작해 공유하고 있는데, 제로웨이스트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보틀팩토리에서 직접 물건을 고르고 사용해 본 후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희동 이웃들과 함께 실험한 설거지 수세미와 세제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일상생활에 가장 밀접한 물건 중 하나다. 우리의 미션은 이미 출시되어 있는 다양한 자연 소재 수세미 6가지와 대표적인 설거지 비누 브랜드 6개 등을 직접 비교하며 사용하고 그 후기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었다.
이번 실험은 다양한 자연 소재 수세미를 사용해보고 아직 써 본 적 없는 설거지 비누를 처음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만 실험을 하며 한 가지 의아한 제품이 있었는데, 삼베로 만든 수세미 하나가 수세미가 아닌 행주와 같은 재질과 크기였기에 누가, 왜, 어떤 이유로 이 수세미를 만들었는지 참여한 사람 모두가 궁금해했다. 아무리 자연 소재라고 하더라도, 만든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이 수세미로 설거지를 해봤다면 실제 제품으로 출시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이 삼베 수세미야말로 무분별한 제로웨이스트 제품 양산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위해 고체치약을 사용하기 시작한 내 친구도 고체치약 한 알로는 개운함이 부족해 꼭 두 알을 쓰게 되면서 내가 왜 환경을 지킨다고 이렇게 비싼 값을 지불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계속 고체치약을 사용할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한다. 환경보호도 중요하지만 그 물건 원래의 기능은 다 할 수 있어야 대체가 가능하지 않을까.
전 세계는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Net-Zero)으로 만든다는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각종 탄소감축안을 내놓고 있다. 머지않아 내연기관 자동차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COP26에서 탄소 감축 계획이 잘 시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동시에, 세계 각국이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해 보다 구체적인 감축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된다. 급하게 만들어져 실효성에 의문인 우리나라 탄소감축정책안도 보다 구체적으로 개선되기를 바라본다.
나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물건의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분리배출한 재활용품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종이상자나 유리 용기, 플라스틱 용기가 한 번 쓰고 버릴 만큼 '일회용'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물건의 쓰임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제로웨이스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설거지 원정대 실험이 끝나고 나는 열매 수세미를 손바닥 크기로 적당히 잘라 잘 사용하고 있으며, 설거지 비누도 세정력에 충분히 만족하며 계속 사용 중에 있다.
* '제로웨이스트 일상가이드-매일 만나는 설거지 편'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 https://bottlefactory.co.kr/bottleLab/all/8B70iq7528Ytx7RVh6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