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내 이야기

초록불이 주는 희망과 용기

브런치와 함께 이룬 작가의 꿈

by Claireyoonlee

아버지는 가끔 ‘시’를 쓰신다. 시라기보다는 아주 오래전 배운 맞춤법으로 휘갈겨 쓴 그분만의 감상이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문장에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재미있지만, 시라고 하기에는 쑥스럽다. 이번 여름 제주 여행 중에 아버지는 또 다른 '작품’을 썼다고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나는 쓱 읽고 영혼 없이 “좋네요”라고 말했다. 예의 바른 아들은 할아버지 시가 적힌 종이를 사진 찍었다. 아버지는 반색하며 그 사진을 여기저기 보내라고 했다. SNS를 하지 않는 아버지도 그렇게 당신의 작품을 널리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92세의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인사동 화랑가와 소규모 극장에서는 아마추어들의 ‘발표회’가 이어진다. 그림 그리기나 악기를 배우면 처음에는 그냥 취미로 하다가 실력이 조금 나아지면 혼자 즐기기에 ‘아깝다’고,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출판하려면 최소 300~500부는 찍어야 하지만, 글을 좀 쓴다 하면 책 한 권쯤은 별일이 아니다. 이미 얇은 시집 두 권을 낸 아버지는 여전히 당신의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욕구가 있는데 매우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브런치가 있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 잘 끄적였다. 언젠가 스스로 괜찮은 글이라고 생각하고 엄마에게 보여주었더니 내가 아버지에게 그런 것처럼 시큰둥했다. 그 후로는 혼자 감상에 빠져 쓴 글은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글을 쓰면 혼자 흡족해하거나, 가끔 블로그에 ‘공적인’ 글을 올렸다. 하지만 별 공감을 받지 못했다. 어렵사리 브런치에 허락받은 공간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까운 나무를 희생하지 않고도 나의 ‘업적’을 자랑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몇 번이나 수정하고도 자신 없었지만, 글에 진심인 독자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읽고, ‘좋다’고 클릭할 때마다 초록색 불이 켜졌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종 모양 아이콘 옆에 뜨는 초록색 점을 수시로 본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가 데이지가 사는 저택 앞 선착장에서 발산하는 초록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는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집요한 희망과 간절함, 하지만 동시에 잡히지 않는 사랑을 향한 아련하고 쓸쓸한 감정을 품고 초록색 빛을 바라본다. 나도 개츠비처럼 브런치의 종 옆에 뜨는 초록빛을 바라보면서 글쓰기에 대한 이루고 싶은 꿈과 사랑을 확인한다. 가끔 글쓰기에 대한 회의에 빠질 때도 초록 불이 켜지면 위안을 받고 다시 쓸 용기를 얻는다.


라이킷한 지인이나 구독자 혹은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눈여겨 살펴본다. 허접한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고, 구독까지 해주는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 자리를 빌려 그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90세가 넘어서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지 않은 우리 아버지와 닮은 나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 브런치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어딘가에 버려지는 종이책보다 브런치에서 출판하는 ‘온라인책’이 초록빛과 함께 나의 욕구를 완벽하게 채워주니, 나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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