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내 이야기

자작나무숲에서

엄마와 이모(2025년 10월)

by Claireyoonlee

엄마와 이모는 열살 차이다. 어렸을 때 엄마는 이모를 업고 줄넘기를 하면서 놀았다. 언제쯤 등에 딸린 애 없이 편하게 놀아보나 하면서도 막내 동생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동생이 이쁘게 크자 더 이쁘라고 미장원에 가서 불파마를 해주었다. 이뻐진다는 언니의 말을 믿은 동생은 불로 지지는 고문 같은 미용 기술을 얌전하게 받았다. 동생의 미용을 위해 언니는 알뜰하게 모은 용돈을 투자했다. 똘똘하고 귀여워서 학교 대표로 나가는 동생을 언니는 최선을 다해 꾸며주었다. 어머니와 시내에 나가서 정장을 사고, 커다란 리본을 달아 머리를 묶어 주었다. 이모는 그 옷이 아주 작아질 때까지 입었다. 엄마는 이모를 꾸며주며 행복했다고 했다. 그들은 지금도 비슷하다. 언니는 이제는 나이들어 풍성해진 동생의 옷을 골라주고 속내를 들어준다. 동생은 그런 언니를 어머니보다도 더 끔찍하게 따르고 모신다.


나는 그들과 하루코스 강원도 유람을 갔다. 인제의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에는 희끗한 기둥에 눈을 여럿 달고 있는 자작나무가 엄마와 이모같은 자매처럼 사이좋게 모여 자라고 있다. 소나무가 솔잎 흑파리 피해로 병이 들어 죽은 자리에 자작나무 69만 그루의 묘목을 심었고 거의 40년을 키워 개방했다. 겨울이 되어 눈이 오면 숲은 더 하얀 보석처럼 빛난다고 하는데 지금은 잎사귀를 반쯤 떨어뜨린 가녀리고 하얀 나무가 가을바람에 사락사락 흔들렸다. 쨍하게 찬 공기가 머리를 맑게 했다. 어르신들 걷기에는 다소 오르막인데 두 분은 천천히 열심히 걸었다. 걷기 좋아하지 않는 이모는 언니가 걸어야 한다니까 투덜대면서도 걸었다.


이모가 중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내가 태어났다. 학교에 불이 나서 휴교하는 바람에 첫 조카를 보러 매일 왔다고 했다. 나는 하얀 배추벌레처럼 통통해서 목욕시키려면 이모는 갓난아기의 살을 하나씩 벌려서 씻겼다. 대학에서 프랑스어 전공을 한 이모는 나에게 프랑스 동요를 가르쳤고, 언니가 해 준 것처럼 머리를 빗겨 주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는 번역한 쪽지를 붙인 동화책을 보내주었다. 국비 장학금을 받아 떠난 유학생이 그런 선물을 보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어린 나는 '푸른 수염의 사나이'같은 이국적인 동화를 읽고 또 읽었다. 나의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그때부터 생겨났을지 모른다.


엄마와 이모는 나를 키웠고, 이제는 두 분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노년을 그려본다. 60이 넘은 나를 아직도 애처럼 보는 두 분이 건강하고 편안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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