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내 이야기

Ars longa, vita brevis

화가 임직순

by Claireyoonlee

나의 동해시 바닷가 아파트에는 외갓집 식구들의 오래된 초상화가 있다. 외할아버지가 은행에 다니실 때 화가 임직순에게 '주문'한 그림이다. 그 속에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이제는 노장의 매력이 넘치는 젊은 시절의 5형제 자매가 있다. 외할아버지 얼굴에는 은행에서 임원으로 한창 잘 나갈 때의 당당한 기품이 있다. 주부이면서 사군자를 잘 그려 국전에 입선도 했던 외할머니는 우아하고 지적이다. 미남 대학생이었던 큰삼촌은 깐깐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고, 깔끔한 성격의 엄마는 새침하게 입을 앙다물었다. 모범생 고등학생 둘째 삼촌은 한 손에 책을 들고 순하게 서 있다. 셋째 삼촌 역시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눈에 장난기가 빛난다. 이모는 언니가 매어주었을 것이 분명한 커다란 빨간 리본이 잘 어울리는 귀여운 막내다.


임직순 화가는 '한국의 인상파, 한국의 마티스'라 불린다. 인상파 화가나 마티스처럼 강렬한 색채와 빛의 대비를 이용해 꽃과 여인을 그렸다. 창덕궁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예화랑에서는 11월 한 달 동안 임직순의 작품 전시가 있었다. 가을이 절정에 달한 궁의 나무처럼 그림은 화려하고 성숙했다. 깊은 우수가 풍기는 여인과 소녀가 초상화에서 본 엄마나 할머니, 이모의 얼굴과 겹쳤다. 처음에 대학생 엄마를 '이상하게' 그려서 다시 그려달라고 했다고 들었다. 작가는 엄마의 얼굴을 조금 더 '인상파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의뢰인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예술성을 포기했을 것이다.

전시회장 한 벽면에 화가의 말이 써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형체를 색채로 옮기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일, 사물 속의 숨겨진 진실을 일깨워 주는 일이다. 그것은 화가의 즐거움이자 모든 사람들의 즐거움이다. "

작가는 우리 외갓집 식구들 한분 한분 내면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려고 했고,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반백 년이 넘어서도 그때 그 젊음과 패기뿐 아니라 수줍음과 설렘까지 다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생의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Ars longa, vita brevis)라는 말씀이 꼭 맞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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