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나만의 욕망을 추구하며

위대한 개츠비

철학자 라깡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했다. 수많은 영화나 소설에서는 욕망이 가득한 인간을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욕망은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문명을 이루고 개인의 성취를 이루는 순기능이 있다. 살아가면서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줄어드는 듯하다가도 금방 멀어지고, 그때마다 어떤 사람은 좌절하고 또 어떤 사람은 더 힘을 얻는다. 집착하지 않는 욕망 그 자체의 순수함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사는 의지’(코나투스)로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1920년대, 뉴욕과 그 주변에 살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등장인물들은 남의 욕망과 내 욕망이 뒤섞여 환상과도 같은 꿈을 좇는다. 1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남이 자랑하는 값비싼 물건을 부러워하고, 애쓰고 일해 번 돈을 호사스러운 파티와 여행으로 써버리면서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들은 자본주의가 극치에 달한 현대에 사는 주식 전광판에 나온 숫자에 일희일비하는 우리와 소름 끼치도록 닮았다. 속물근성이 득실득실한 벌레 같은 이 시대 우리의 이웃 중 하나를 보는 듯 애처롭고 딱해서 비난하기보다는 공감하고 위로하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를 함부로 비판할 수 없다. 주인공 닉의 아버지가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게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처럼 유리한 위치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이라고 말한 것처럼.

개츠비가 자기 집에서 강 건너 초록색 등대를 바라보듯이 멀리서만 바라보던 ‘데이지’라는 여자는 그가 추구하던 욕망의 끝이었다. 그는 데이지를 다시 만나면서 젊었을 때 가지지 못했던 부에 대한 갈증을 회복할 수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데이지는 그의 삶을 통째로 바칠 만큼 순수하고 고귀한 인간은 아니었다. 남편 톰의 외도를 알면서도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그녀는 옛 애인의 사랑이 한 줄기 바람처럼 신선했지만, 톰이 가진 재산으로 버티는 거짓 안정과 평화를 잃고 싶지 않았다. 평생 물려받은 재산으로 살아가며 폴로 선수가 공식 직업인 톰은 아내와 애인을 양손에 들고 즐기다가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개츠비의 등장에 더욱 치졸한 인간이 되었다. 그는 드러내놓고 외도하면서 아내를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나자 갑자기 가정에 충실한 도덕군자처럼 말한다. 권위주의와 이기심으로 뭉친 그의 욕망은 시기심으로 불타올라 교묘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빠져나간다.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모두 달라서 결국 각자의 꿈은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처럼 흐릿해지는데 광고판의 T.J. 에클버그 박사의 눈만이 또렷하게 그들의 파국을 지켜본다. 작가는 섬세하고 유려한 묘사와 비유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표현한다. (닉이 개츠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은빛 후춧가루가 뿌려진 별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꿈이 “초록빛 등대처럼 멀어져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고등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책을 읽지 않던 아들이 필독서라 할 수 없이 읽는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재미있다고 완독했다. 나는 아들이 책에 빠진 모습을 보고 감동할 지경이었다. 방황하던 사춘기 남자아이의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이제는 사회인이 된 아들은 이야기 전개가 재미있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알게 된 저열한 인간의 심리 표현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친구와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렸다고 여겼던 아들이 소설 속의 세상과 현실 세상의 접점을 찾아 책에 끌렸다니 고전의 위력은 대단하다. 천방지축이었던 아이가 인간이 부질없이 쫓는 욕망과 욕망을 실현하는 이런저런 과정을 소설로 공부했던 것일까. 돌이켜보면 그 후 아이는 부쩍 철이 들었고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우리는 욕망을 추구하다가 파멸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난한다. 개츠비, 톰, 데이지, 그의 친구 캐더린, 톰의 정부 머틀까지 비틀어지고 헛된 욕망의 끝은 파국이다. 남의 욕망이 아니라 순수한 나만의 욕망을 지니고 물질 중심주의의 세상과 영합하지 않는 법은 없을까. 100년 전 소설이 아직도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가 많은 것을 보면 어려운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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