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만사는 마음

83산 관악산 (2025년 2월)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눈은 까칠한 아파트 정원도 그림책 같은 풍경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눈이 온 산이 그리웠지만, 지독한 독감을 앓고 나서 겨울 산이 두려웠다. 눈이 함빡 내린 산의 비경도 기억 속의 잔상으로만 두기로 했는데 ……. 나의 빈약한 결심은 눈 구경 가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금방 무너졌다. 그까짓 추위쯤이야 하고 채비하며 눈산을 볼 기대로 마음이 설렜다.

과천 향교에서 시작하여 관악산 케이블 능선을 탔다. 안개가 짙어 건너편 용마능선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올라가니 눈이 거의 무릎까지 쌓였다. 발이 푹푹 빠졌다. 앞서간 사람들이 남긴 자국을 따라가다가도 가끔 길을 잃었다. 눈이 쌓인 산은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고, 깊고 따뜻한 정취가 흘렀다. 아이젠을 해도 눈이 흠뻑 쌓인 경사면은 미끄러웠다. 한 친구가 미끄러지면서 산 아래로 한참 내려가 우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푹신한 눈이 부상을 막아주었다. 눈을 털며 일어난 친구가 아들이 외국에서 사다 준 물병이 배낭에서 떨어져 버렸다고 속상해했다. 하지만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눈 속으로 사라진 물병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연주암은 툇마루를 등산객들의 식사 장소로 내준다. 겨울의 은혜로운 햇볕을 쬐면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먹을 복이 있어 절에서 주는 보슬보슬한 백설기를 얻어먹었다. 우리는 처마 밑으로 찌를 듯이 내려온 고드름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따뜻한 사발면을 먹었다. 햇볕을 이기지 못한 지붕 위의 눈이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깎아지른 절벽인 연주대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정조의 든든한 신하였던 체제공은 65세에 관악산을 오르고 《유관악산기》를 썼다. 한문으로 쓴 산행기에는 옛날 사람들의 산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담겨있다. 불성사의 중이 나이 든 등산객을 걱정하며 “길이 몹시 험하여 나무꾼이나 중들도 또한 쉽게 올라가지 못한다”라고 하자 “천하만사는 마음이다. 마음은 장수이고 기운은 졸병과 같아서, 장수가 가는데 졸병이 어찌 안 갈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장수인 마음’이 있으면 ‘졸병인 기운’은 따라오는 것일까. 나는 졸병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나 보다.

연주대 올라가는 절벽에는 낡은 밧줄이 달린 쇠말뚝이 아직 남았다. 이제는 철제 계단이 놓여 비교적 쉽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산양이나 겨우 걸어갈 수 있는 길로 밧줄을 잡고 올라갔다. 멀리 보면 불꽃 같은 ‘죽순 모양으로 자란’ 바위(죽순바위) 위에는 응진전이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있다. 이 산을 자주 찾는 친구는 응진전이 잘 보이는 전망대에서 변하지 않는 바위 주위로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고 했다. 친구들의 머리처럼 희끗희끗한 관악산은 체제공의 시대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위엄이 있다.


“연주대는 구름과 하늘 사이에 높이 솟아있는데, 스스로 내 몸을 돌아보니 천하 만물이 감히 높음을 겨루지 못할 것 같았고 사방에 보이는 뭇 산봉우리들은 녹록하며 비교할 것이 못 되었다.”


하산길인 용마능선에서 보는 케이블 능선의 북사면은 살벌하게 얼어붙어 찬 기운이 흘렀다. 아마도 눈이 한참 녹지 않고 나무를 감싸고 있을 것이다. 이주 후 다시 이 산을 왔을 때 보니 케이블 능선에는 눈이 그대로 있었다.

횃불 같은 봉우리를 태우면서 어지러운 도심을 쏘아보고 있는 관악산. 눈이 화기를 잠재워 얌전해진 산에서 나는 겨울 산에 대한 두려움을 잊었다. 이제 춥다고, 눈이 와서 위험하다고 하는 핑계를 대지 않을 것이다. 천하만사는 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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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받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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