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식구들이 모이면 우리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꼭 한다. 막내딸인 이모는 가끔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며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는 외할머니의 백설기같이 하얗고 귀여운 얼굴, 어복 쟁반, 불고기 같은 평안도 음식, 그리고 언제나 무엇인가를 하던 부지런한 두툼한 손을 바로 어제 본 것처럼 기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할머니가 화선지의 여백을 가르던 붓놀림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왼손은 책상에 짚고 오른손으로 붓을 잡고 시원하게 난을 치고 나서 할머니 얼굴에 번지던 미소나 혹은 찡그림도 거짓말처럼 생각난다.
외할머니는 중년 즈음에 사군자를 배우기 시작하셨다. 월전 장우성 선생님에게 사사 받고 국전에도 몇 번 입상했다. 외갓집에는 외할머니의 화실이 있었다. 커다란 판자를 깔아 만든 책상에 국방색 담요가 깔려 있고 벼루와 종이, 문진이 펼쳐있었다. 그 방에 들어서면 먹의 향기가 그윽해서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면서 옆에 작은 책상을 두고 내가 난을 그리도록 했다. 그때 배운 난 그리는 순서가 아직도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내 손을 같이 잡고 그렸고 다음에는 혼자 그렸다. 잎을 어느 정도 그리고 나면 꽃 그리는 법을 배웠다. 먹을 연하게 해서 꽃잎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한 먹으로 꽃술을 찍으면 완성이었다. 다 그린 그림 오른쪽 밑 귀퉁이에 내 이름을 한자로 쓰고 나면 조손은 함께 행복했다. 정말로 오래전 일인데 잘했다고 칭찬해 주던 할머니의 환한 미소가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할머니가 어떻게 그 시대에 사군자를 그리는 취미를 시작하셨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기계가 일해주는 것도 아니고 소소한 집안일이 산더미였다. 게다가 철없는 외손녀는 거의 매일 오고 할아버지는 까탈스러워서 음식 하나도 손이 많이 갔다. 거의 반세기 전 여자의 시간은 가사 노동만으로도 빽빽했다. 일상의 틈에서 난을 치고 매화를 그리는 당신만의 세계에서 위안을 찾았을까. 이제 그때의 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든 나는 한 여성으로서 할머니를 이해한다. 그분이 기쁨과 슬픔, 그리고 회한까지 어떻게 삭이고 승화할 수 있었는지도.
추사 김정희는 가끔 그림도 그렸는데 그중 난을 가장 즐겨 그렸다. 그림에도 문자향(文字香)이나 서권기(書卷氣)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분의 난에서는 꽃다운 아름다움보다는 대쪽 같은 절개나 소나무 같은 주관이 보인다. <난맹첩> 속 난초들은 한결같이 잎이 꺼칠하고, 길게 꺾이거나 짧게 잘리고 또는 굽어 휘기도 해서 잡초같이 강하다. 형식으로 말하면 예서 쓰는 필법을 이용한 것이고, 내용으로 말하면 곱게 꾸민 연미(娟美)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고졸하면서 조야한 멋을 풍기는 난초 그림이다.
추사 선생님은 사군자 중에서 난초가 가장 어렵다고 하면서 난에는 인품이 나타나서 그림 그리는 것처럼 그리면 안 된다고 했다. 지금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는 추사가 말년에 글씨 쓰듯이 그린 난 그림의 절정이다. 그러나 추사도 고운 감성은 숨길 수 없었던지 부드럽고 ‘그림 같은’ 묵란화를 그렸다. ‘산이 깊어 날이 길고, 인적이 고요한데 향기가 스며드네’라는 화제가 있는 난은 딱딱한 문자의 향기가 없이 청초하고 우아하다.
석파 이하응은 추사의 열렬한 팬이었고 뛰어난 제자였다. 그는 야인 시절 난을 그리면서 분노와 한을 삭였다. 그의 난 그림은 스승에게 '압록강 동쪽에 이만한 작품이 없다'는 칭찬을 받았다. 석파의 난 화첩 발문에 보면 추사는 스승으로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아무리 구천구백구십구 분까지 이르렀다 해도 나머지 일 분만은 원만하게 성취하기가 어렵다. 이 마지막 일 분은 웬만한 인력으로는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인력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석파가 더 나아갈 것은 다만 이 일 분의 공이다. (석파 난권에 쓰다)
‘난을 그린다’ 하지 않고 ‘난을 친다’라고 한다. 우리 외할머니 같은 보통 사람이나 추사 김정희 같은 예술가, 정치적 야욕으로 가득 찼던 흥선 대원군에게 난을 치는 행위는 예술 이상의 구도와 기도였다. 할머니가 난을 치고 손녀에게 붓을 들려 가르치면서 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칠순이 넘어도 엄마가 보고 싶어 눈이 붉어지는 이모처럼 나는 외할머니와 화실에서 보낸 그 시간이 절절하게 그립다. 시인의 표현처럼 “그리움은 가슴을 후벼파고 도려낸다”
*그립다는 것은(이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