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의 인격은 1,000년 동안 한결같았을까? 지금의 나 안에 과거의 나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모교의 교문 앞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보며 오래전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려고 애쓴다. 그리고 흘러간 시간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은 현재의 나와 예전의 나를 비교해본다.
나는 19세기에 선교사가 세운 사립 중 고등학교에 다녔다. 경기여고나 이화여고 같은 최고 명문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평판이 좋은 전 대통령 부인이 졸업했다고 명망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지은 붉은 벽돌의 학교 건물은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도 나올 만큼 고풍스럽지만, 사실 오래되어 생활하기 불편했고 아무리 청소해도 말끔하지 않았다. 낡은 나무 복도는 조금만 빨리 걸어도 바닥이 삐걱거려서 선생님의 핀잔을 듣기 일쑤였고, 낭만적인 하얀 격자 창문으로 찬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한겨울 쉬는 시간에는 가끔 틀어주는 라디에이터를 둘러싸고 추위를 녹이면서 수다를 떨었다. 교실이 남향이면 참을 만했는데 북향이면 온종일 덜덜 떨었다. 그래서 학년이 올라가면 남쪽 교실에 배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선생님 심부름을 하러 교무실에 가면 손을 델 만큼 뜨거운 난로가 있고 따뜻한 햇볕이 들어와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불평할 줄도 몰랐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별일도 아닌 일들이었지만, 교칙을 어기면 '죄'가 되어 벌을 받고 야릇한 소문에 휩싸였다. 머리가 귀밑 몇cm만 넘어도 불려가 야단을 맞았고, 교복을 고쳐서 ‘야하게’ 입으면 날라리라고 찍혔다. 멋 부리기 좋아하는 친구는 교복 상의를 꼭 맞게 입었다고, 공상이 취미인 친구는 수업 시간에 창문 밖 노란 은행잎만 바라본다고 혼났다. 주말에 교회 오빠랑 영화를 보러 간다고, 신기한 잡지를 가져와서 친구들이랑 돌려 본다고 혼나고 반성문을 쓰고 정학을 받았다.
나도 중학교 1학년 때 환경 미화를 하고 늦게 집에 오면서 시장에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다가 걸려서 거의 정학을 받을 뻔했다. 신성한 뱃지를 달고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는 '죄'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당시 학교 분위기는 살벌하고 무서워서 정말 정학을 받을까 봐 덜덜 떨었다.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현장을 잡은 선생님은 우리를 교무실에 불렀고 다른 선생님들이 지나가면서 고개를 푹 숙인 ‘죄인’을 보고 웃었다. 하지만 압제에 굴하지 않는 아이들은 애교머리를 자르고 교복 치마를 치켜올려 입고 몰래 다른 책을 보았다.
그 많은 수업 시간에 무엇을 배웠는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친구들과의 수다, 도시락을 나누어 먹던 점심시간, 끔찍하게 맛있었던 “보름달” 같은 빵을 사 먹으러 뛰어가던 짧은 쉬는 시간 같은 소소한 추억만 생생하다.
지금은 판사가 된 전교 1등을 맡아 하던 친구는 옆의 친구들 떠드는 소리가 거슬렸던지 쉬는 시간 십 분 동안에도 도서관에 올라가 공부를 했다. 도서관에서 진한 블랙커피를 마시면서 거의 매일 밤을 새우며 공부하던 옆얼굴이 결연했다. 뉴스에 나온 그녀의 근엄한 자태에서 나는 책에서 눈을 떼지않고 치열하게 공부하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배우가 된 중학교 동창도 있다. 그녀는 지성적이고 똑 부러지는 여의사 역할을 맡더니 요즘은 파격적인 팜므 파탈 역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국어 시간에 책도 크게 못 읽던 친구였기 때문에 처음 화면에서 보고 몰라볼 뻔했다. 각진 교실에서 네모난 칠판을 보면서 네모보다도 더 딱딱한 주입식 교육을 받았는데도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배우가 된 그녀가 신기하고 대견했다. 책을 크게 읽지 않는다고 혼나면 목소리가 더 작아지던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한 여자가 되었을까. 빠져나갈 틈이 없는 틀 안에서도 끼가 있는 아이들은 경계를 넘어 비상한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야단치고, 가끔 출석부로 등이나 머리를 세게 후려치던 지금 내 나이의 선생님들은 은퇴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립 학교에서 교장 눈치를 보고 박봉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루하게 의무적으로 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교과 내용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해주거나 유머가 있는 선생님도 있었다. 어떤 영어 선생님은 ‘accessory’ 억양을 설명하면서 ‘악’을 강하게 발음하지만, 시장에서는 ’악세사리 주세요’라고 밋밋하게 말해야 한다고 해서 우리는 웃었다. 나는 액세서리의 억양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키가 크고 역사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주던 국사 선생님을 아주 좋아했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국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했다. 사춘기 여학생에게 나타난 최초의 이성이니 호감과 연모의 마음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때는 좋아한다는 마음 자체가 금기였다.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은 대학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귀가 따갑게 들었다. 하지만 소녀들은 교회나 성당에 가면 이성을 만나 사귀고, 선생님을 몰래 좋아하고, 대학 가요제 출신 가수 오빠들을 짝사랑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걸어가면서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며 깔깔댔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면 좋겠다,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그 미래는 영원처럼 멀어 보였다.
여고를 졸업한 지 40년 만에 모교에서 만난 동창들은 ‘다른’ 사람 같았다. 그들은 학칙과 성적에 순응했지만, 이제는 땅을 개척해서 토지를 소유한 인심 좋은 지주처럼 자유롭고 편안했다. 교사(校舍) 또한 우리가 다닐 때와는 아주 달랐다. 100년이 넘어 유적이 된 학교 건물의 외양은 그대로이지만, 내부는 요즘 세대의 취향에 맞게 실내 장식을 했다. 나는 손녀가 있다면 이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아니 내가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교가 그 자리에 버텨주었음을 감사하고, 학창 시절에는 분주하여 보지 못했던 잘생긴 인왕산 정상의 바위를 감탄하며 올려다보았다.
사람의 세포는 끊임없이 떨어져 나가고 새로 생긴다니 우리는 순간순간 죽었다가 태어난다. 몇십 년 전 나의 세포는 이제 흔적도 없어 아주 다른 사람이 된 것일까. 그러나 과거에 일어난 일들, 밑줄 그어가며 읽은 책, 만나고 떠나 추억을 남긴 사람들은 현재를 이루고 미래를 만든다. 그저 매일 매일 좀 더 너그럽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기를 바랄 뿐! 교문을 나오며 까르르 웃는 여학생들의 체크무늬 치마가 가볍게 팔랑거렸다.
*므두셀라 : 969수를 살았다는 인물. 서양에서 장수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