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래프팅
이 비가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나 해본 적도 없고, 할 계획도 없었던 극한 스포츠를 하기로 잡아놓은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신 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마지막 발악을 한다고 했다. 엄마는 비가 많이 와서 취소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른 명이 넘는 ‘초로의 젊은이’들은 속으로는 걱정이 되어도 얌전하게 하늘의 허락을 기다렸다. 그들의 기대가 간절했었나 보다. 이틀 전에 지독하게 내리던 비는 멈추고 예보를 비웃듯이 해가 나더니 구름이 적당히 하늘을 덮어 놀기 좋은 여름날이 밝았다.
지난겨울에 우리가 걸었던 얕고 앙증맞게 흐르던 한탄강은 비를 받아들여 웅장하게 넘실대며 빠르게 흘렀다. 물고기가 빤히 보일 정도로 맑았던 물은 강바닥의 흙을 삼켜 황갈색으로 일렁였다.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고무보트를 들고 가서 물에 띄웠다. 전문가 1명을 포함한 11명이 탄 고무보트는 종이배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배는 빠른 물살과 서투른 노젓기 만으로 움직였다. 교관이 시키는 대로 하면 배가 뒤집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같은 배에 탄 친구들 얼굴이 잔뜩 긴장해서 겁먹은 아이처럼 보였다. 평소에 재담으로 우리를 웃기던 친구도 입을 닫았고, 누군가 잘 따라 하지 못하면 걱정을 했다. 나는 노가 익숙하지 않아 어느 손으로 잡아야 할지 헷갈렸다. 구령에 맞춰 노를 강에 담그고 물을 가르니 배는 나아갔다. 숱 많은 머리채 같은 물결이 들이칠 듯 가까워서 떨어질까 봐 오른발을 바닥 밴드에 꼭 끼우고, 왼발은 오른발 뒤에 단단히 포갰다. 깎아지른 주상절리 절벽이 다가왔다가 멀어졌다. 비가 넘쳐흘러 만들어진 작은 폭포 밑으로 배를 몰아가 차가운 물벼락을 맞았다. 배는 돌에 닿을 듯 닿지 않았다.
강은 고요하게 흐르다가 물 밑의 거친 지형을 만나면 갑자기 하얀 물방울을 일으키며 사나워졌다. 처음 만난 급류는 우리 배를 높이 날아오르게 했다. 아주 짧았지만, 가슴이 철렁한 단말마의 순간이었다. 나와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잠시 사라지고 멈추었다. 그때 나는 왜 래프팅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지 깨달았다. 죽음의 순간도 이처럼 무섭지만 짜릿할까.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물살이 잠잠해지자 정신이 돌아왔다. 하도 비명을 질러서 목이 칼칼했다.
잠시 모래톱에 배를 세우고 땅에 발을 디뎠다. 가늘고 고운 모래가 밟히는 느낌이 부드럽고 편안했다. 이제 물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우리는 1차 래프팅을 무사히 마쳐 안도하며 쨍하게 시원한 물에 반쯤 들어가 사기가 충만한 전사처럼 노를 무기처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호수처럼 잔잔한 물에서는 ‘자케팅’을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강에 들어가 물에 떠서 흘러가는 것이다. 수심이 20m가 넘는 강물에 들어가다니! 잠시 망설였지만,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뛰어내려”라는 말을 듣자마자 물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친구들은 내가 제일 먼저 뛰어내려 놀랐다고, 인당수에 뛰어내린 심청이 같다고 놀렸다. 물은 내 몸을 휘감아 간지럽히고는 무심하게 흘러갔다. 물속에서 무엇인가 나를 잡아당길까 봐, 내가 탔던 3호 보트가 점점 멀어져 타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발버둥 치면 오히려 같은 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보니 구름이 함께 흘러갔다. 절벽에 홀로 핀 노란 나리꽃이 목만 내놓고 떠내려가는 사람이 재미있다고 웃었다.
작가 김훈은 전후의 혼란한 시대에 아버지가 강물을 보며 “흐르는 물을 보면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허송세월≫에서 말한다.
아버지는 흐름을 잇대어 가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의 새로움을 말한 것이었다. 경험되지 않는 새로운 시간이 인간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고, 그 시간 위에서 무너진 삶을 재건하고 삶을 쇄신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강물은 미래로 향하는 시간이었다.
대작가의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나는 물속에서 떠밀려 가며 새로운 시간으로 나아갔다. “미래로, 새로움으로 향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급류가 보이는데 내가 탔던 배가 멀리 보여 마음이 급했다. 후에 같이 배를 탔던 친구들은 내가 보이지 않아 한걱정했다고 한다. 나는 뒤에 있는 다른 배에 끌어 올려졌다. 다른 코스보다 비교적 완만한 편이라 죽음을 맛보는 다른 급류는 없었다. 배에 타고 보니 물속보다 편했고, 땅에 발을 딛고 보니 긴장이 풀려 다리가 휘청했다. 우리는 내년 여름에도 또 모험하러 오자고 의기투합했다. 미래를 향하는 강물에 들어갔다 나오니 미지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일까. 강은 우리의 걱정 많은 삶을 내려주고 또 서둘러 떠났다. 엄마가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고 “시린 몸을 한번 뒤채고는 오리처럼 곧 순한 머리를 돌려 반짝이는 은어들의 길을 따라” 자기 길을 가듯이.*
*허송세월 - 김훈
*성장 - 이시영
바다가 가까워지자 어린 강물은 엄마 손을 더욱 꼭 그러쥔 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거대한 파도의 뱃속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다 엄마 손을 아득히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 잘 가거라. 내 아들아. 이제부터는 크고 다른 삶을 살아야된단다. 엄마 강물은 새벽 강에 시린 몸을 한번 뒤채고는 오리처럼 순한 몸을 돌려 반짝이는 은어들의 길을 따라 산골로 조용히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