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윤 Aug 31. 2021

다들 똑같이 힘들게 일한다면서요

두번째 직장에 와서야 깨달은 사실

첫 직장인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약 1년 간 프리랜서로 생활하다 만난 두번째 직장에 다니게 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약 2년 전 퇴사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바로


"다들 힘들게 일해. 나가면 다를 것 같지?"


였다. 열악한 근무 환경 속 건강이 악화되어 이직을 결심한 25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말이었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한편으로는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마다 성격과 취향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같은 환경 속에서 같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겠느냐 말이다. 게다가 이 말을 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평생(약 10년 이상)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소위 '나가'보지도 않은 이들의 딱딱하고도 확신에 찬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아른아른하다.




완벽한 판단형(J) 인간인 나는 사실 퇴사 이후 계획이 명확했다. 다행히 고등학생 시절 시작했던 네이버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었던 탓에 갑작스럽게 수입이 끊길 걱정은 우선 접어두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도전해보자 다짐했다.


이후 1년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유익했다. 가격이 가장 저렴한 날짜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3주간 런던살기'를 다녀왔고 블로그 대행사와 함께 일을 하며 마케팅 시장의 구조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되었다. 수입원을 늘리겠다며 야심차게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가 구독자 2000명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




그렇게 내가 잘 하는 일과 어려워하는 일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졌다. 자연스레 첫 직장의 영향으로 움츠러들어 있었던 가슴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퇴사 후 1년이 조금 안 되었을 무렵부터 간호사로서 나의 역량을 더 잘 펼칠 수 있는 병원 외 직장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흔히 탈임상 후 공무원, 공기업, 연구간호사 등을 준비하지만 나는 보다 새로운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은 욕심에 헬스케어 분야의 의료 IT 회사에 재취업하였다.


매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대학병원과는 달리 직원 수 15명 남짓 작은 스타트업 회사였던 이 곳은 나에게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전 직장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한 치의 실수도 하면 안 되었다. 수많은 발생 가능한 변수를 예측하여 p.r.n.의 p.r.n.까지 준비했어야 했으며 집도의의 원활한 수술을 위해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 크기까지 외웠어야 했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은 업무의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일이 무척 신선했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 또한 도전정신이 강하고 추진력이 좋은 나에게 흥미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여유가 느껴지는 사내 분위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이야기는 차차 적어볼 예정이다.




입사 후 1년이 지난 지금은 사실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직원 수는 어느덧 2배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여러 직급과 직책이 생기며 조금은 딱딱한 공기가 흐를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담당하는 업무의 본질은 동일하다. 오히려 1년 전보다 명확해졌고 나는 이 일이 퍽 마음에 든다.


맡은 바 일을 하나씩 수행해 나갈 때마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히고, 하나씩 해결하며 희열을 느낀다. 상사 혹은 타 부서와 마찰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이 또한 융통성 있게 풀어나가려 노력한다. 오히려 첫 직장에서 상대적인 나의 약점을 채우는 훈련을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일은 다 힘들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있겠는가.


그러나 분명 사람마다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다르다. 운이 좋게 그럭저럭 맞는 일을 처음부터 시작하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최선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어떤 분야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하겠지. 그러나 성장 가능한 범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나의 20대 치기어린 도전에 스스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때의 그 선택이 옳았기를 바라며 오늘도 한 뼘만큼 성장하려 애를 써 본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를 결심한 지 1년이 지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