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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Kay Feb 13. 2022

주짓수 시합과 독서모임

배려의 진화: 배려와 배려를 감사하는 마음

주짓수 시합과 독서모임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독서 모임이 있다. 모임은 돌아가면서 한 명씩 책을 추천을 하는데 지인이 다음 회차에 내가 쓴 에세이집을 추천하였다.  그들은 항상 그랬듯이 한 장 한 장을 꼼꼼하게 읽을 것이고 포스트잇과 밑줄을 쳐 가면서 많은 질문과 공감하는 멘트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들이 책에 얼마나 시간을 할애할 줄 알기 때문에 나의 책을 선정해 주어서 참으로 고마왔다. 주짓수 시합과 독서모임


모임은 우리 집에서 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모임 전에 나는 준비할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루에 있는 식탁 테이블에 사람들이 조금 더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남편에게 테이블을 세로 방향으로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식탁 옆의 커다란 벤치가 남편의 발등 위로 떨어졌고 남편은 그 아픔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들이 옆에서 소리를 지르고 물티슈를 가져갔다. 내가 남편의 발 상태를 보니 엄지발톱이 거의 들썩거리면서 피가 막 흐르고 있었다. 

"아....! 시합! 이걸 어째!"


남편은 주짓수 마니아이다.  남편이 5년 전부터 시작한 취미생활인데 무엇이든 시작하면 열심히 하는 성격으로 선수 이상으로 성실히 취미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아이들과 함께 신년 계획을 세울 때 본인이 주짓수 대회에 8회 참여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회에 나가는 것은 체급, 기술, 체력 그리고 정신까지 모든 것들을 컨트롤해야 하기 때문에 시합 전에는 보통 때보다 더 많이 준비하지 않으면 긴장하게 된다. 남편은 그 전에도 시합에 출전했지만 시합에 나가면 극도로 긴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얼마 전 나에게 본인이 시합 전에 가지고 있는 긴장이 많이 해소되고 있어 이번 시합에는 그 전보다 평소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뿌듯해했다.  남편이 시합을 위해 그동안 멘털과 바디를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풀타임으로 일하면서도 준비를 철저히 하는 남편을 지켜보고 있었었다. 


그런데 이런... 그 발톱이 빠지는 사건은 시합 바로 일주일 전이었다. 엄지발톱이 들썩거려 피가 나오고 있는 상태 상태였다.  물론 난 안다. 남편은 발톱이 빠지는 물리적 통증의 정도로 아파할 사람은 아니다. 그동안 체급 유지하랴 그리고 마인드 트레이닝하랴 그렇게 바쁘면서도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시합 준비를 해 왔던 남편, 얼마 전에 자신의 마인드가 이번에는 준비된 것 같다고 만족해하는 남편임을 알기에... 바로 다음 주에 있을 그 시합을 참여할 수 없는 것... 아... 또 그것도 하필이면 나를 위한 모임에 식탁을 옮기다가... 발톱의 통증은 둘째치고 남편이 속상해할 그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의 모임이 있기 대략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일단 남편을 차에 태우고 마침 집 근처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다행히 골절은 없었다. 소독을 하고 항생제 처방을 받고 돌아왔다.

정신없이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속상해하는 남편을 두고 나는 이 모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다들 바쁜 시간 한 달 동안 나의 책을 열심히 읽어서 지금 먼 길을 그것도 다른 장소가 아닌 우리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들에게 남편이 발톱을 다쳐서 모임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가 참 미안했다. 


30분도 채 안 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머리는 굉장히 복잡했다. 

남편이 아프지만 나의 모임이 있다는 굉장히 이기적인 상황이었다. 


아마 우리가 20대였다면 대화는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 봐. 그걸 나랑 같이하지 혼자 하느라고 다치고 그래!  의자를 빼놓고 옮겨야지. 의자 있는 상태에서 식탁을 돌리면 어떻게 해. 지금 나 준비할 거 많은데... 일을 더 만들고 그래!"

"아니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다쳤는데. 나 다음 주 시합 나가는 것은 생각도 안 해?"

"시합 나갈 사람이 왜 의자도 안 빼고 그걸 혼자 했냐고!"

진짜 악덕하고 이기적인 멘트였을 것이다. 남편이 나 때문에 다쳤다는 죄책감을 오히려 뒤집어 씌워서 내가 받는 죄책감을 덜 느끼려고 서로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남편이 얼마나 미련하게 식탁을 옮기려고 했는지 떠들어댔을 것이다. 말그대로 적반하장이다. 


우리가 30대였다면 대화는 이랬을 것이다. 

"괜찮아? 안 아파? 그런데 오늘 집에서 모임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사람들이 내 책을 준비해서 지금 오고 있는데 미안해서 캔슬도 못해."

"괜찮아"

"정말 괜찮아?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건 아니지?"

"괜찮다니깐"

"정말 괜찮은 거지? 그렇지?"

"괜찮다는데 왜 자꾸 물어?"

"아니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왜 신경질을 내고 그래?"

난 미안한 마음을 덜 느끼기 위해 상대방에게 내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질문했을 것이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도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내가 더 안심하기 위해 또 질문을 했었을 것이다.  배려의 질문이 아니라 내가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질문을 계속 해 댔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싸웠을 것이다. 


차 안에서 남편에게 '미안해, 괜찮아?'를 수도 없이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걸 물어보는 자체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어 참았다. 그리고 일단 내가 미안한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과하고 곧 모임이 시작되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미안해. 오늘 모임이 있어서..."

남편은 "괜찮아" 했다.

아주 짧은 두 마디만 서로 왔다 갔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다 이해했고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모임은 남편의 배려 덕에 무사히 끝났다. 


남편은 물론 속상했을 것이다. 너무나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 

속상한 순간에도 남편이 나를 위해 배려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 미안하지만 그것을 감사하게 받았다. 


아마 50대가 되면 나에게 더 성숙한 배려의 마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맞는 결정 었는지도 모르고 무엇이 더 성숙한 방법 었는지는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일로 남편과 나는 싸우지 않았고 남편의 배려가 참으로 고마울 뿐이었다.  


우리의 서로를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진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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