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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Jul 22. 2024

맥스 그린(A Tale of Max Green)-4장

4.



"난 알고 있었습니다.

웨인이 말을 돌리자, 나는 담배를 하나 말기 시작했다.

"뭘 알고 있었습니까? 미스터 웨인."

"재키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지요. 암요. 그렇고말고요.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웨인을 째려보았다.

"거, 뜸 들이지 말고, 시원스레 말 좀 해봐요."

배도 불러지고, 술도 취해감에 따라, 나는 웨인이 자꾸 말을 끊는 것에 짜증이 났다. 이러다가 내가 웨인을 한 대 칠지도 모르겠다. 그런 눈치를 챘는지, 클럽의 주인은 재빨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맥스 그린과 재키 샌더스는 한 시간 동안, 부대 내의 휴게실에서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맥스는 왜 아론이 죽어야 했는지 그 내용을 완전히 알아버렸다. 재키는 맥스와 헤어진 그날 저녁, 바로 짐을 싸서 샌드 타운을 떠났다. 재키의 부모 말에 따르면, 대도시로 가서 직장을 잡을 거라고 했다. 다음 날 점심때가 지나자, 마을에 재키가 떠났다는 이야기가 쫙 돌았고, 로버트 웨이드는 그때부터 저녁까지 술만 퍼 마셨다.

맥스는 재키가 떠난 후부터, 눈에 띄게 부대 일에 열심이었다. 아마 아론도 떠나고, 재키도 떠나서 그러려니 하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사람이 뭔가를 잊고 싶으면, 다른 것에 몰두하는 법이니까. 가끔씩 부대 밖에서 맥스 그린과 로버트 웨이드가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맥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로버트를 지나쳤다. 딱히 할 말도 없었을 것이다. 샌드 타운은 조용해졌다. 말썽쟁이 클라이드도 사라졌고, 예쁜이 재키도 떠났으니까. 그러나 연대장 티모시 웨이드 대령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샌드 타운은 비록 황량한 사막의 변두리에 위치하고는 있었지만, 여기를 지나면 번화한 도시, 벅스 시티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막 건너편에 주둔하고 있는 산적들은 샌드 타운의 웨이드 연대가 눈에 가시였다. 여기만 없다면, 돈과 물자가 넘쳐나는 벅스 시티를 통째로 먹어버릴 수 있는데, 성질 고약한 웨이드가 버티고 있는 바람에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벅스 시티의 시장, 말콤 쉐퍼드는 웨이드 대령에게 부대의 전권뿐만 아니라, 샌드 타운의 통제권까지 넘겨준 상황이었다. 조건은 딱 하나! 산적으로부터 벅스 시티를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아니, 산적이 뭐 대수라고 그렇게 무서워합니까? 정규 군대가 가서 싹 쓸어버리면 될 텐데."

나의 말에 웨인은 고개를 저었다.

"미스터 녹스! 그런 말 마세요. 산적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보통이 아니거든요.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게 아니라, 전직 군인들이 주축이 된 아주 사나운 놈들이랍니다. 웨이드 연대도 정면으로 붙으면, 아마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을 겁니다."

"호! 그래요?"

콜린 클라이드 상사가 죽었다는 소문은 사막을 건너, 산적들에게도 전해졌고,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스파이들이 샌드 타운에 잠입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물론 웨이드 대령은 이것에 대하여 신경이 쓰였다. 마을 여기저기에 스파이들이 돌아다니면,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클라이드 상사가 비록 망나니이기는 했지만, 전투에서는 신출귀몰한, 말 그대로 타고난 전사였고, 클라이드가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면, 산적들은 준비를 할 것이다. 전투 준비를. 일 년에 몇 번씩 벌어지는 그런 소모전이 아니라, 어쩌면 대규모로 쳐들어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존 웨인은 이날 아침부터 바빴다. 날씨도 화창한데다가, 왠지 모르게 마을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샌드 클럽에는 오전부터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렸고, 웨인은 점심시간이 지나자, 벌써 어제의 매상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오후 세 네 시 쯤 되었을 겁니다. 그자가 들어온 거예요."

"누구요?"

나는 이제 완전히 웨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웨인도 이것을 분명히 알았다.

샌드 클럽의 문을 밀고 들어온 남자는, 척 보아도 외지인이 분명했다. 그 남자는 문을 밀고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더니, 모자와 옷에 달라붙은 먼지를 바깥에서 털었다. 그 모습을 카운터에 있던 웨인은 모두 보았다. 웨인은 클럽 안을 훑어보고, 고개를 저었다. 안쪽 구석 테이블에 외과의사인 로버트 웨이드가 혼자서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보던 웨인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오더니, 카운터에 앉았다.

"술 한 잔 주시오."

웨인은 전형적인 미소를 지으며, "뭘로 드릴까요?" 하고 물었고, 남자는 모자를 벗어서 카운터에 내려놓으며, "하이볼로 주시요.", 라고 답했다. 하이볼을 건네주자, 남자는 고개를 돌려 클럽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는 잔을 들고, 로버트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앉아도 되겠습니까?"

남자의 말에, 로버트는 얼굴을 들었고, 손짓으로 앉으라고 했다. 낯선 남자가 자리에 앉자, 로버트는 옆에 놓여 있던 맥주병을 들더니, 꿀꺽 한 모금을 마셨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그제야 로버트의 입술이 움직거리며, "그래요?", 하고 소리를 내었다.

웨인은 카운터 밑에 있던 전화기를 끌어당겨,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자, 그는 수화기를 입에 바짝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샌드 클럽인데, 낯선 남자가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는 바로 끊겼고, 웨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십 여분만 기다리면 된다.

"지나가다 들렀습니다. 이 마을이야 아주 평판이 좋으니까요."

"좋기는, 뭐가 좋단 말이요?"

로버트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오자, 남자는 깜짝 놀란 듯했다. 그는 하이볼을 천천히 마셨다.

"요새 재미난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남자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재미? 글쎄요. 몇 놈이 죽어나간 거 빼고는 얘깃거리도 없소이다."

로버트의 말에, 남자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와! 사람이 죽어 나가요?"

로버트는 다시 맥주를 홀짝거렸고, 남자 역시 술을 마셨다.

"누가 죽었습니까?"

남자는 로버트에게 미끼를 던졌고, 로버트는 여기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웨인은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있었다.

"클라이드라고, 완전히 미친 놈 하나가 죽었지요. 하하하!"

로버트는 클라이드라는 이름을 뱉으면서, 마치 자신이 미친 것처럼 웃어댔다.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로버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누가 죽었습니까?"

남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 아론이라고, 어린 놈 하나……."

아론의 이름을 말하다가, 로버트는 흠칫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로버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뒷얘기를 마저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때, 클럽의 문이 열리며, 맥스 그린 하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낯선 남자는 맥스가 입고 있는 군복을 보자, 눈빛이 묘하게 움직였다.

"근데, 당신, 어디서 왔습니까? 여기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한데."

로버트의 혀 꼬부라진 소리에, 남자는 남아 있던 잔을 비우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맥스 그린이 입을 열었다.

"그 자리에 가만 있으시오."

남자는 맥스를 쏘아보기는 했으나, 더 이상 움직이지는 않았다. 맥스는 웨인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며, 가만히 서 있는 남자를 다시 보았다. 남자의 눈이 맥스와 클럽의 문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저 문 밖에 일 개 분대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맥스의 말에 남자는 맥스의 허리춤을 보았고, 맥스가 무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벼락같이 클럽의 문 쪽으로 뛰었다. 문을 벌컥 열고 나간 남자는 순간 멈췄으나, 문 밖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람같이 도망쳤다. 그리고 그 뒤를 맥스 그린 하사가 쏜살같이 따라 나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웨인은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맥스가 누굽니까? 마을을 두 바퀴나 돌면서, 결국 그 남자를 잡았지요. 제깟 놈이 가긴 어딜 갑니까?"

"그 남자는 누구였습니까? 뭐하는 사람이에요?"

"미스터 녹스! 잠시만! 음식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따뜻한 뭐라도 가져올까요?"

웨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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