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어디 편한 자리에 앉아라. 의자도 좋고 소파면 더 좋다. 참, 그렇지. 돈이 별로 없으니 소파가 있을 리가 없지. 방바닥에라도 앉아라.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고 그대로 따라 하기를 바란다. 먼저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래야 한다. 이건 아주 비밀스런 작업이 될 것이니까. 자, 이제 주변에 아무도 없다. 그럼 천천히, 내 몸에서 내 몸이 아닌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자. 무슨 말인지? 모자를 쓰고 있다면 벗어라. 상의를 벗어라. 하의를 벗어라. 속옷도 벗어라. 양말도 벗어라. 입고 있지 않은 것들은 그냥 넘어가면 된다. 상의와 하의 주머니에 있는 것들을 전부 꺼내서 바닥에 늘어놓아라.
내 몸은 내가 만든 것일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일단 부모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다. 처음 수정된 정자와 난자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 다음 크면서부터는, 밥을 먹으면서 내 몸을 내가 키워 나갔다. 그러므로 절반은 부모에게서, 절반은 내가 내 몸을 만든 것이다.
그 다음 내 것인, 내가 만든 내 몸 주위에 있는 옷가지들, 주머니에서 나온 것들을 둘러보라. 그 중에서 내가 내 손으로 만든 것이 단 한 가지라도 있는지 찾아보라. 과연 있을까?
이제 다시 옷을 차려 입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자. 집 안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상관없다, 단 한 개라도 있는지 찾아보라. 있다면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산다는 증명이다. 나는 내 손으로 만든 물건을 단 한 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전부 돈을 주고 산 것들이다. 이제 알겠는가? 왜 돈을 벌기 위해 사는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는 음식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돈 주고 산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옷을 입으니까, 할 수 없이 나도 입어야 되는 옷가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돈 주고 산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장소. 내가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돈 주고 샀든지, 아니면 돈 주고 빌렸든지, 어쨌든 돈이 개입된 장소다. 스마트폰, 한국 사람들은 전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이거 내가 만든 거 아니다. 삼성, 엘지, 애플 기타 등등 회사가 만든 것이다. 우리 모두 돈 주고 샀다. 그것도 할부로. 게다가 사용료까지 매달 꼬박꼬박 내고 있다. 뭘로? 몸으로? 아니, 돈으로!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노트북, 카메라, 옷장, 의자, 식탁, 전자레인지, 식기 세척기, 가스레인지, 인덕션, 오븐, 와인 냉장고, 김치 냉장고, 공기 청정기, 진공청소기, 주방을 차지하고 있는 각종 그릇들,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 신발장을 채우고 있는 신발들……. 정말 끝도 없다. 이것들 중 단 한 개라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 있을까? 바로 이것이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이유다. 비누, 샴푸, 린스, 치약, 칫솔, 각종 화장품, 수건, 향수 등등. 정말 끝도 없다. 돈 주고 산 것이 아닌 게 있을까? 간단히 생각하자. 돈이 없으면 이것들을 살 수 없다. 물론 이것들을 살 수 없어도 된다. 음식만 조금 있으면 죽지는 않는다. 공기는 아직 공짜니까. 하지만 물도 돈 주고 사 먹는 시대가 되었다. 설마 생수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집에 나오는 수돗물이 공짜인가 곰곰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시간이 흘러, 미래가 오면, 아마 공기도 돈을 내야 할 것이다. 그럼 그때는 정말로 돈이 없으면 바로 죽는다. 그리고 지금도 돈이 없어 음식을 못 산다면, 죽는다. ‘죽을 것이다.’가 아니다. 죽는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이제 알 것이다.
그럼 안 죽을 만큼만 돈을 벌면 되겠지? 안 그런가? 뭐 하러 그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을까? 적당히 음식 사고, 옷 사고, 집 한 채 있거나, 아니면 빌려 살거나 하면 되지. 그렇다! 맞는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안 죽을 만큼만 있으면, 안 죽을 만큼만 벌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에게 정말로, 정말로 경의를 표한다. 이제 당신은 이 책을 그만 읽어도 된다. 왜? 당신은 신선이니까. 종교라면 치를 떠는 나지만, 그냥 도교적인 표현을 써봤다. 당신은 중이니까. 좀 어색하다. 당신은 성인이니까. 이것도 어색하다. 그래서 신선이라는 표현을 빌려 온 것이다. 적당히 벌어서 안 죽고 사는 것에 완전히 만족한다면, 그걸로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돈을 가지고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 등등, 뭔가 많은 것들을 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니까, 당신이 신선이라면 이 책을 이제 그만 읽어라. 어쩌면 이 세상에는 당신 같은 욕심 없는 사람들도 존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는 신선이 아니다. 자! 욕심꾸러기들이여! 다시 정신을 차리자!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았으니, 이제 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뇌? 그렇다! 우리 모두 해골 속에 담고 있는 그것 말이다. 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