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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인간-3장

by 윤금현

3.


세 명의 과학자들이 녹색 피부를 가진 남자와 여자를 그물에 묶어서 데리고 온 다음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이 말을 걸자 녹색인들은 묘한 소리를 냈는데, 물론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쨌든 정상적인 인간의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세 사람은 녹색인들을 비행기 뒤쪽의 휴게실에 집어넣고 의자에 밧줄로 묶어 놓았다.

그때부터 녹색인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낮게 불렀고, 점점 높아지다가, 다시 낮아지고, 가끔씩은 흐느끼는 듯한 소리도 냈고, 잠시 쉬기도 하다가 다시 노래를 불렀다. 남자가 부르다가 여자가 부르다가 교대로 부르기도 했다.

세 명의 과학자들과 기장 말콤 프라이데이, 부기장 랄프 캐시디 그리고 스튜어디스 두 명, 엘리자벳 롱맨과 수잔 터너가 전부인 일행은 녹색인들의 노래가 시작된 다음부터 이상한 기상 변화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벌레들이 엄청나게 많아졌고, 주변의 온도가 기이할 정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이야 원래 더운 곳이지만, 기온은 점점 더 견디기 힘들만큼 올라갔다. 게다가 느끼기 나름이지만, 아무리 그늘에 있어도 시원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나무들마저도 이들을 저주하는 것만 같았다.

"어이, 과학자 양반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당신들의 그 잘난 과학으로 뭐라 설명 좀 해 봐."

부기장 랄프가 비아냥댔다. 그러나 세 과학자들은 누구도 이런 이상한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내 생각에는……."

랄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메리가 손을 들더니 랄프를 제지했다.

"원래 날씨란 것이 그래. 너희 파일럿들은 잘 모르겠지만......."

"뭐라고?"

랄프가 발끈했다.

"젠장! 이게 다 저 녹색 놈들 때문이야. 하나는 놈이 아니고 년이지만."

랄프의 말에 제이콥이 벌떡 일어났다.

"왜? 한 대 치려고? 이봐, 저 사람들을 풀어 줘. 그러면 어떻게 되나 보게?"

제이콥은 주먹을 꼭 쥐고 서 있기만 했고, 메리는 랄프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단지 존만이 이런 대화에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아주 중요한 샘플이야. 표현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나는 저들을 꼭 데려가야겠어."

메리는 이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던 기장 말콤이 드디어 말을 했다.

“난 이제 더 이상 못 견뎌.”

말콤은 더위에 완전히 지쳐버린 모습으로, 메리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말콤! 우리는 계약을 했어. 우리는 여기에서 삼 일 후에 뜰 거야. 삼 일! 알겠어?”

메리 역시 흥분된 목소리로 말콤에게 떠들어댔다. 그러나 말콤과 랄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둘의 눈에 결연한 의지가 떠올랐다.

“우리는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이륙할 거야. 탈려면 타고 아니면 알아서들 해.”

말콤은 이 말을 끝으로 이곳에서 삼백 미터 정도 떨어진, 걸프스트림을 세워두었던, 흙으로 만들어져 있는 임시 활주로 쪽으로 가버렸다. 뒤에 남은 랄프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학자분들께 미안하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좀 보세요. 이 망할 놈의 날씨. 이렇게 더운데다가 습기까지……. 삼 일 더 있다간 모두 죽을 거예요.”

“랄프! 우리는 아직도 할 일이 많아. 이것저것 샘플도 채취해야 하고 말이야.”

존이 랄프를 달래려고 했다.

“녹색인간들을 두 명이나 잡았으면 된 거 아니에요?”

랄프는 존을 놀렸다.

그때 녹색인들의 노래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 노래에 따라 나뭇잎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척 뜨겁고 게다가 끈적끈적하기까지 한 공기가 스멀스멀 일행의 주위로 흘러들었다.

식물생리를 전공한 제이콥은 이런 현상이 식물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공격을 당하거나 또는 공포에 질릴 때, 식물들은 특정한 호르몬을 분비하여 서로에게 알리기도 하고, 공격자들을 퇴치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이콥은 항상 밀림을 탐사할 때면, 긴 바지와 긴 팔 상의를 입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건 느낌이 안 좋아. 어쩌면 우리…….”

제이콥이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왜? 제이콥! 뭐가 문제야?”

메리가 말했다.

“지금 당장 이륙해야할지도 몰라. 식물들이 경고하고 있어.”

제이콥의 말을 듣자, 메리와 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제이콥은 셋 중 가장 젊지만, 식물생리에 있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제이콥! 정말 지금 떠나야 해?”

메리는 제이콥 앞에서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 옆 흙바닥에는 존이 퍼질러져 있었다.

“그래. 정말이야. 내 전공이 식물생리인 건 다들 알지? 내가 식물이라면 이건 비상사태야.”

메리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떠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제이콥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진짜로 망할 날씨, 그리고 이 끈적끈적한 분위기. 금방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으스스한 느낌까지, 이 모든 것들이 메리에게 결정을 강요하고 있었다.

“존! 너의 생각은 어때?”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고 있던 존은, 어깨만 으쓱했다. 맘대로 하라는 뜻이다.

메리는 손으로 이마를 잡으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뭔가가 메리의 목으로 쓱 지나갔다.

“앗! 깜짝이야!"

메리는 손으로 목덜미를 세차게 때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대체 뭐야?”

메리의 눈에 공포가 떠올랐다.

“메리! 식물들이 우리를 공격할지도 몰라.”

제이콥의 낮은 목소리가 음산하게 들렸다.

“제기랄! 웃기지 마!”

메리는 팔짱을 꼈다.

“아악!”

갑자기 존의 비명 소리가 온 숲에 메아리쳤다.

메리와 제이콥은 동시에 존을 보았고, 그들은 존의 얼굴 한가운데에 사람 주먹만한 거미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존은 등 뒤로 두 손을 땅을 짚은 채, 쩔쩔매고 있었다. 거미는 그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은 채, 뭔가를 하고 있었다. 메리는 손으로 재빨리 거미의 윗쪽을 잡은 다음, 밀림 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러나 벌써 존의 왼쪽 볼에는 빨갛게 거미에게 물린 흔적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존의 입에서는 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독이 몸에 침투한 것 같았다.

“정말 이건 말도 안 돼. 왜 여기에 거미가 있는 거야?”

메리는 온 세상의 동물들과 식물들이 자기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여기 아마존까지 왔는데……. 할 일의 절반도 못했는데……. 그러나 존이 쓰러진 마당에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철수해야만 했다. 이건 메리 본인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제이콥! 존을 부축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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