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메리! 메리!"
제이콥은 메리를 흔들었다. 좌석에 안전벨트를 한 채, 정신을 잃고 있던 메리는 제이콥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깨어났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제이콥은 두 손으로 메리의 얼굴을 받치고, 그녀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제이콥은 존이 생각났다. 뒤쪽을 보니, 존은 벨트에 묶인 채 머리를 뒤로 젖히고 가만히 있었다. 얼굴 반쪽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그래도 숨은 쉬고 있었다. 제이콥은 그 뒤 좌석에 있는 수잔을 보러 갔다. 몸 전체가 앞으로 구부러진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수잔을 일으켜 세운 존은 그녀의 머리가 힘없이 옆으로 기울어지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목이 부러졌구나.'
제이콥은 수잔의 눈을 감겨주고, 다시 메리에게 돌아왔다. 이제 벨트를 푼 메리는 아직도 멍하니 좌석에 그대로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녹색인들……."
'메리는 아직도 그들을…….'
제이콥의 마음이 아파왔다.
"메리, 그들은 사라졌어."
"으윽!"
말콤은 정신이 들자마자 고통에 몸부림쳤다. 몸을 살펴보니, 왼쪽 다리가 피투성이였다. 깨진 유리가 몇 개 박혀 있었다.
"제기랄……."
옆을 보니 랄프도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랄프! 괜찮아?"
랄프는 말콤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이 말콤의 다리로 내려갔다. 랄프는 자신의 벨트를 푼 다음, 말콤의 벨트를 풀어 주었다.
"으으으……."
"조그만 참아요. 일단 다리를 묶어야겠다."
랄프는 조종실 뒤에서 구급상자를 찾았다. 말콤의 다리에서 유리 조각을 빼낸 다음, 랄프는 붕대를 꺼내 말콤의 다리를 묶어 지혈을 했다.
"됐어요. 부러지지는 않았고, 찔린 상처뿐이네요. 충격도 좀 받은 것 같고……."
랄프은 말콤을 부축한 채 조종실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방을 지나, 통로를 걸어가는 랄프의 발에 무엇인가 걸렸다. 날씬한 여자 다리였다. 랄프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좌석 사이를 쳐다보았다.
"엘리자벳이군."
말콤의 입에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말이 나왔다.
랄프가 자세히 보니, 머리뿐만 아니라 팔 다리도 피가 흘러 비행기 바닥에 흥건해져 있었다. 추락할 때, 안전벨트를 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말콤! 랄프!"
자신들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 말콤과 랄프가 앞을 보니, 제이콥과 메리가 보였다.
제이콥은 존을 나무 밑에 앉혔다. 거미에 물린 데다가, 추락의 충격까지 더해져 존은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메리가 다가와 존의 곁에 앉더니, 그의 눈동자를 살펴보았다. 뒤쪽에서 오던 말콤과 랄프도 멈췄다.
“어이, 잘난 과학자분들! 이제 속이 시원한가?”
말콤이 메리에게 빈정댔다.
“말콤,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랄프가 말콤을 말렸으나, 말콤은 듣지 않았다.
“이봐, 내 비행기를 추락시켜 놓고, 이제 속이 시원해?”
메리가 벌떡 일어나서 말콤에게로 갔다.
“말콤! 추락은 당신 책임이지. 안 그래? 당신이 기장이잖아.”
“그러게 왜 녹색인간들을 잡아온 거야? 그들을 풀어줬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거 아냐?”
“말콤! 그런 식으로 몰아세우지 마. 녹색인과 추락은 아무런 관련도 없으니까.”
말콤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재수 없는 것들을 태우니까……. 에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말콤은 돌아서서 하늘을 보았고, 랄프가 메리에게 말을 걸었다.
“메리! 우리는 물과 식량이 조금은 있어요. 한 이틀 정도.”
메리는 랄프를 쏘아보았다.
“이틀 내에 구조되지 못하면, 우리는 끝장날지도 모릅니다. 엘리자벳과 수잔은 죽었고, 녹색인들은 시체가 없으니, 어디론가 가버린 거지요. 존은 정신 못 차리고 있고. 말콤도 부상이고.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랄프의 말에도 메리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지도를 보면, 여기서 하루 정도 가면 강이 나온다고 되어 있었다. 강에 가면 물도 있고, 물고기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