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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인간-6장

by 윤금현

6.



선두에 랄프가 서고, 그 뒤를 메리가 따랐다. 말콤은 그 다음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힘겹게 걸었다. 마지막에 제이콥이 존을 끌고 갔다. 존은 정신은 없었으나, 그런대로 걸음은 걸었다.

랄프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손가락을 입에 댔다. 그리고 살짝 주저앉았다. 이것을 본 나머지 사람들은 허리를 숙이고, 천천히 랄프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 앞에 보이는 작은 개울가에 비행기에서 탈출한 것이 분명한 녹색 피부를 가진 남자와 여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몸에 물을 끼얹으며 놀고 있었다.

지도에는 하루만 걸어가면 강이 나온다고 했으나, 이들은 삼 일을 걸었고, 그래서 물도 떨어지고 식량도 떨어지고 말았다. 어제 밤부터 오늘 낮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앞에 보이는 녹색인들은 전혀 피곤하거나 배고픈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점이 말콤의 배를 무척이나 아프게 했다.

“랄프! 총 있지? 이리 줘 봐.’

말콤의 눈에 싸늘한 한기가 올라왔다.

“말콤! 총은 뭐하려고…….”

랄프는 말은 했지만,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말콤에게 내밀었다. 부기장인 랄프 캐시디는 항공 보안 요원도 겸하고 있어서,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고, 말콤은 해군 조종사 출신이라서 총을 잘 다루었다.

메리는 총이 랄프에게서 말콤에게로 건네지는 것을 보았다.

“말콤! 총으로 저들을 쏘려고?”

“메리! 우리는 식량이 필요해. 난 육식동물이고, 지금 저기 있는 것은 내 사냥감이야.”

“안 돼! 어떻게 사람을 먹으려고…….”

“이봐, 여러분은 저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그래? 아니잖아. 자기들이 먼저 저들을 잡아왔으면서……. 대체 나에게 뭘 바라는 거야?”

메리의 얼굴이 벌개졌다.

제이콥이 살살 다가오더니 말콤을 뒤에서 덮쳤다. 둘은 풀밭에 나뒹굴었고, 잠시 후 말콤은 제이콥을 깔아뭉갠 채, 총으로 제이콥의 머리를 겨누었다.

“널 쏴버리겠어.”

“날 먹으려고?”

“그만 둬!”

메리는 소리를 질렀고, 말콤은 메리를 보았다. 그 순간 제이콥은 말콤의 권총을 잡았고, 둘은 권총을 함께 잡은 채, 있는 힘을 썼다.

‘탕!’

권총이 발사되었다. 주위에서 온갖 소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여기저기에서 동물들이 뛰고 달리고 도망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식물들조차 나뭇잎을 펄럭이면서 총소리에 반응하였다.

위험! 피하라!

메리는 주변의 반응에 어쩔 줄을 모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랄프를 보았다. 그 순간 랄프 캐시디가 푹 쓰러졌다. 옆에서 안절부절하고 있던 랄프에게로 총알이 발사된 것이었다.

“랄프!”

메리가 달려가 앞으로 쓰러진 랄프를 돌려 뉘었다. 그의 가슴팍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랄프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가쁜 숨만 내쉬고 있었다. 메리는 양손으로 랄프의 가슴에 난 구멍을 막았다. 꽉 눌렀다. 랄프의 입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나면서, 랄프의 호흡과 호흡 사이가 점점 길어졌다. 이윽고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며 랄프 캐시디가 죽었다.

말콤은 제이콥의 위에서 일어나 랄프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권총에서는 화약 냄새가 나고 있었다. 메리는 말콤을 쳐다보다가, 제이콥을 보았다. 제이콥은 그냥 바닥에 누운 채였다. 말콤은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나 자그마한 바위에 앉았다.

“랄프를 먹을 수는 없어. 그는 내 동료니까.”

말콤이 무감각한 어투로 말했다.

“존을 먹을까? 거미 독이 퍼진 고기를? 그건 아니지. 안 그래? 메리!”

말콤이 자기 이름을 부르자, 메리는 몸서리를 쳤다. 그 다음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말콤을 노려보았다. 말콤 역시 메리의 눈빛을 맞받아 똑같이 바라보았다. 잠시 후 메리가 고개를 숙이자, 말콤의 입이 열렸다.

"당장 뭐라도 먹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을 거야.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말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난 이것보다 더 지독한 상황도 겪어봤어. 그 전투에서 추락했을 때. 너희들은 내가 그때 어떻게 살아났는지 상상도 못할 거야. 내가 뭘 먹었는지를."

이제 말콤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그게 이유야. ……."

말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메리!, 팀장님! 우리 현실적이 되자.”

제이콥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메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말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말콤! 녹색인들은 가버렸을 거야. 총소리가 났으니까. 하지만 저 강에 가면 물고기가 있어. 물도 있고. 우리는 그걸 먹으면서 계속 가는 거야. 그럼 살 수 있어.”

제이콥은 모두를 설득하려 애를 썼다.

말콤은 물끄러미 메리와 제이콥을 보았다. 랄프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을 만도 했지만, 실전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군인 출신인 말콤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다음 그는 여전히 땅바닥에 누워서 입에서 침을 흘리고 있는 존을 보았다. 이제 존을 살짝 살짝 몸까지 떨고 있었다.

“찬성. 하지만 존은 버리고 가.”

말콤은 바위에서 일어나 랄프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안 돼!”

제이콥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럼 네가 데려가. 나는 절대 돕지 않을 거야.”

말콤은 이 말을 끝으로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뭇잎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아진 나뭇잎들을 한 주먹씩 쥔 다음, 랄프의 몸 위에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