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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을 찾아서(Finding Nik)-2

by 윤금현

프롤로그



Ⅰ.


"이제 인류는 전쟁을 하지 않은지가 벌써 250여 년이 흘러갑니다. 물론 국지적으로 작은 전쟁은 있어 왔지만, 이제는 그런 소규모 국지전도 거의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인류는 평화의 시대로 들어선 것입니다."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함께 대통령의 2187년 연두교서가 끝났다. 존 리처드슨 대통령은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첫 번째 임기 동안에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쉽게 두 번째 임기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의 평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막강한 군사력에 힘입은 바가 크기는 했으나, 그런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통령은 생각하였다. 어쨌든 이것은 자신의 업적인 것이다.

의회를 떠난 대통령과 장관들은 백악관 뜰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며, 대통령의 '전 지구적 평화 시대'라는 기조를 담은 연설에 감동하는 분위기였다.


"질문 있습니까?"

대통령의 말에,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손이 올라갔다.

"레프트(LEfFT; Liberal Energy for Future Trend)의 그랜트 기자입니다. 이제 대통령께서는 평화의 시대라고 선언하였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쌓아만 두고 있는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들은 전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지금 거의 3만 개나 되는 핵폭탄들이 지구상에 존재합니다. 이제 이것들도 폐기해야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옆에 서 있는 국방장관을 흘끗 보았다. 이런 질문은 제발 좀 안 받았으면 하는 표정이다. 국방장관이 대통령의 귀에 뭐라 속삭였다.

"에, 그러니까 가령 예를 들어서 외계인이 쳐들어 올 수도 있잖아요? 우리는 지구를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방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목이 마른 지, 물을 얼른 마신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구는 우주에 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당히 많은 혜성들을 포함해서 우주 물체들이 지구의 옆으로 지나치고 있습니다. 고전이지만 '아마겟돈'이라는 영화를 생각해 보세요. 원폭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사용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원폭을 없애는 일은 대단히 복잡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종사하고 있는 몇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만약 실직하게 된다면, 이것은 대단히 큰 사회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춘 대통령은 생각을 잠시 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원폭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없앤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도 같이 없앨까요? 그러나 저는 항상 세계 평화를 위하여 다른 나라들과 계속 군축 협상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곁에 있던 장관들도 어깨를 펴고 줄지어 나갔다. 어쨌든 평화의 시대인 것은 확실하니까.



Ⅱ.


큰 방 한가운데에 기다란 직사각형 사각 테이블이 있고, 그 주위를 열 개도 넘어 보이는 의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밖의 날씨는 화창하였고, 햇빛이 커다란 유리창을 통하여 실내로 들어왔다. 창밖으로는 도심의 풍경이 멀리까지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자리잡고 있는 푸른 산의 나무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산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테이블 중앙의 좌우에 각각 두 명씩 네 명의 남자들이 앉아 있고,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가방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남자들 앞에는 네모난 플라스틱 서류 케이스가 보이고, 그들 가운데 놓인 재떨이에서는 아직 덜 꺼진 담배가 연기를 솔솔 만들어 내었다. 어딘가에서 공기 정화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들렸다. 오른쪽의 한 명이 마시던 물잔을 들더니, 재떨이에 살짝 기울여서 담뱃불을 마저 꺼버렸다. 그러더니 말을 꺼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별 상관없잖습니까? 그리고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입니까?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요. 대통령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 지구적 평화의 시대라고."

왼쪽에 앉은 두 사람 중, 더 젊어 보이는 남자가 그 말을 받았다.

"그건 그렇지요.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니까. 고장이 나던 말든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어요? 그리고 저 망할 놈의 미사일을 쏠 일이 없잖아요?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에."

아까 담뱃불을 껐던 사람이 말을 마치고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조용히 있던 남자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양 손을 펼쳤다. 그러고 나서 두 손을 맞잡더니 자신의 두툼한 배 위에 올려놓았다.

말을 마친 남자는 플라스틱 서류 케이스를 열어서 가장 위에 놓여 있던 한 장의 종이를 꺼내더니, 이것을 왼쪽에 앉은 두 사람 앞으로 살짝 밀어 주었다. 왼쪽의 두 사람 중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정장 윗도리 왼쪽 가슴에서 멋들어진 만년필을 꺼내더니, 서류에 사인을 하였다. 그러자, 아까 서류를 밀어주었던 남자는 다시 서류를 자기 앞으로 가져가더니, 이번에는 가방을 왼쪽의 두 사람 앞으로 밀어 주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난 네 명은 서로 악수를 하였고, 왼쪽 두 명은 가방을, 그리고 오른쪽 두 명은 서류 케이스를 가지고 방을 나갔다.

그들이 나간 문 왼쪽에는 멋들어진 디스플레이 화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날짜와 시간이 표시되는 달력 겸 시계였다.

2178 년 9 월 15 일 오후 2 시 30 분 46 초.

문이 닫히고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을 햇빛만이 비추고 있었다.



Ⅲ.


언제부터인가 결코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그룹의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939 년에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육천 달러로 시작된 연구비는 1941 년이 지나자 20 억 달러가 되었고, 모든 연구 프로젝트 중에서 최상위 프로젝트로 격상되었다. 그리고 많을 때는 13 만 명까지 이 프로젝트에 고용되었다. 역사상 앞으로도 이렇게 많은 자금과 과학적 두뇌들이 집중된 프로젝트는 다시 없을 것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두 개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데, 하나는 우라늄 원자폭탄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플루토늄 원자폭탄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개는 일본에 투하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원자폭탄에 대한 통제권은 과학자들의 손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노벨상을 받았거나 노벨상 후보로 이름이 올라본 적이 있는 과학자들이 모여서 엔피엔(NPN)이라는 그룹을 2180 년에 결성하였다. 엔피엔은 노벨상에 지명되었다는 의미로서 Nobel Prize Nominated의 약어였는데, 이들은 어떤 책임 의식으로 뭉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일종의 원죄로 받아들였다. 이 사람들은 아무리 대단한 과학적 발견이라도,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결과물들이 인간의 행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군인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참가하였다. 과학자와 군인, 두 종류의 사람들 모두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만들고 군인들이 사용하였지만, 원폭에 대해서는 과학이나 전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무지한 정치인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와 군인 두 그룹의 일부 사람들은 다시금 그들이 잃어버렸던 권한을 되찾아오고자 시도하였다. 그리고 당연히 더 급진적인 매파가 등장하였다.


시간이 흘러 모임의 이름인 엔피엔(NPN)에서 피(P)가 떨어져 나가면서, 무슨 반도체 이름과 같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기는 했지만, 모임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더블엔(NN)이라는 약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자 매파들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더블엔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No Nukes(핵무기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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