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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을 찾아서(Finding Nik)-3

by 윤금현

Ⅳ.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한 명이 하얀 가운을 입고서, 빙 둘러앉은 사람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대학의 자그마한 세미나실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에서부터 정장 차림의 신사도 있었고, 화려한 군복 차림의 사람들도 있었다.

"여러분, 인간이란 존재가 어떤 존재입니까? 나는 신을 믿지도, 안 믿지도 않지만, 신에 비한다면 인간은 어린애에 불과할 것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아이를 키워 보셨겠지만, 어떻던가요?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주면 그 장난감이 안 망가지고 계속 있던가요? 이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왼쪽 가슴에 약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군인이 손을 들었다. 입고 있는 제복으로 보아서 공군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목덜미를 감싸고 있는 군복의 칼라에 별이 두 개씩 네 개가 달려 있었다.

"스미스 소장."

"그걸 무용지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폐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흰 가운의 노인이 다시 말을 하였다.

"당신도 알다시피 정치가들이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권력과 거기에서 나오는 돈에만 관심이 있지요. 얼마 전에 보았잖아요? 만약 외계인이 진짜 있어서 우리 지구를 방문한다면, 그 먼 거리를 달려와서 기껏 한다는 것이 전쟁이란 말입니까? 입장을 바꿔 보세요. 우리가 2 억 광년 떨어진 곳까지 어찌어찌 해서 갔다고 합시다. 갔더니 거기에 우리보다 못한 문명이 있는 거예요. 그럼 당신은 다짜고짜 싸움부터 할 겁니까?"

스미스 공군 소장은 이 말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자 탁자에 앉아 있던 정장 차림의 신사가 말을 꺼냈다.

"생각을 해 보세요. 이제는 뒷집 초등학생도 원자폭탄 설계도를 볼 줄 압니다. 아마 요새 아이들이 수소폭탄 설계도를 찾아서 자신의 스마트패드에 저장하는데 5초면 충분할 겁니다."

모여 앉은 사람들이 서로서로 말을 해대는 통에 다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러분, 잠시 조용히 해 주세요."

처음 말을 꺼냈던 하얀 가운의 노인이 좌중을 진정시켰다.

"지금 여기에는 과학자들과 군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왜 모였지요? 우리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여기 모인 겁니다. 다들 잘 아시잖아요.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어쩌면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7년 전 더블엔(NN) 그룹을 결성할 때를 생각해 봅시다. 그때는 과학자들만 있었는데, 이제는 뜻을 같이하는 많은 군인 동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합니다. 2190년이 오기 전에 그것을 전부 없애버렸으면 합니다."

육군 복장을 하고 있는, 양 어깨에 별을 세 개씩 달고 있는 군인이 일어났다. 살짝 살이 찌기는 했지만, 아랫배도 안 나온 아직도 탄탄한 몸매의 장군이었다.

"군인으로서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물려주기 위하여, 제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린워스 육군 중장은 거수경례를 하였다. 집에서 뛰어놀고 있을 손자들을 생각하면서. 아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평화에 대한 경례이리라.

"공군도 모든 것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스미스 소장이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또 한 명의 장성이 손을 들어서 동의의 뜻을 표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복 윗도리 소매에 굵은 금줄이 하나 그리고 가느다란 금줄이 하나 있었다.

모임의 좌장격인 노 과학자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폭이 발사되어 어딘가에, 그것도 사람이 아주 많은 큰 도시에 떨어진다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비록 폭탄이 터지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 스스로가 이제는 머리맡에 원폭을 올려놓고 사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Ⅴ.


2189년 11 월 11 일.

캄캄한 밤. 하늘에는 희미한 별빛만 반짝이고, 거리와 도로에는 뿌연 가로등만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5 톤짜리 볼보 트럭이 홀로 도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바퀴 열 개 전부를 지면에 닿게 하고서.

짐칸 전체가 하나의 박스 형태로 된 트럭이어서 짐칸에 실린 물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운전석에 달랑 육군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군인 한 명이 운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운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육군 중위 브랫 스티븐스는 옆 좌석에 놓여 있는 도넛 봉투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냥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스티븐스는 자신도 참석했었던 그 파티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다.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in the City of New York) 체육관의 1층 홀 안에는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이 건물은 얼마 전에 새로 완공되었는데, 체육 시설들은 2층부터 7층까지에 있었고, 1층은 행사장으로 사용하려고 널따란 홀로 만들었다. 이 홀의 여기저기에 풍선도 달려 있고, 색색으로 칠해진 줄들도 걸려 있었다. 한쪽에 자리한 무대에는 밴드가 자리 잡고서 이제는 완전히 옛날 노래가 되어버린 마이클 잭슨의 '세상을 치유하자(Heal the World)'를 연주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더블엔(NN) 그룹 7주년 기념 - 2187년 11월 11일(NN Group 7th Anniversary - Nov. 11, 2187)'라고 쓰여 있었다. 홀 가운데에서는 몇몇 커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춤도 추고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신나는 파티를 연상케 하였다. 단지 모여 있는 사람들 상당수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는 사실만 뺀다면 여느 고등학교 졸업 축제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찌지지……."

갑자기 마이크가 비명을 질러댔다. 음악이 멈추자 춤추던 사람들이 모두 무대 쪽을 쳐다보았다.

"잠시만, 잠시만요. 여기를 보아 주세요."

어느새 무대 위로 올라간 반백의 노신사가 밴드 보컬의 마이크를 빌려서 말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더블엔 그룹 7주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렇지요?"

음악과 춤이 중단되어서 살짝 기분이 가라앉았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더니 왁자지껄 웃으며 박수를 쳤다.

"헤이, 숀,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무대 앞쪽에 있던 노신사가 무대 위의 노신사에게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마이크를 잡고 있던, 숀이라 불린 사람은 안경을 고쳐 쓰더니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벡스 교수님, 이렇게 좋은 날 한 가지 발표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드디어 타임머신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뭐라고, 다시 말해보게."

벡스 교수가 말을 하였다.

"저와 동료들이 타임머신을 만들었습니다."

노신사 숀은 코끝을 살짝 긁었다. 그리고 검지로 코의 양쪽을 한 번씩 문질렀다.

"스티븐스 박사,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였다.

무대에 올라가 있던 숀 스티븐스 박사는 다시 한 번 좌중을 둘러보더니,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타임머신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진짜로 만든 것은 아직 아니고, 이제부터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순간 체육관 홀이 조용해졌다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와! 하하하"

"그건 불가능해. 말도 안 돼."

"아무리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이 엉뚱한 아이들을 배출한다지만, 이건 아니지."

사람들의 야유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스티븐스 박사는 손짓으로 무대 아래에 있던 한 사람을 불렀다.

"리처드, 이리 와서 말 좀 해 봐. 우리는 자네의 설명이 필요해."

무대 한 편에서 오렌지 주스를 홀짝거리고 있던, 키가 크고 홀쭉한 남자 한 명이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스티븐스 박사 쪽으로 다가 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아내었습니다."

갑자기 강당 전체가 조용해졌다.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스웨덴 웁살라대학교(Uppsala University) 출신인 리처드 올루치 박사는 마이크에 입을 대고 조용조용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트럭은 뉴저지의 엘리자베스 쪽에서 고우썰즈 다리(Goethals Bridge)―1907 년 테오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에 의하여 파나마 운하 건설의 수석 기사로 임명된, 브루클린 태생의 육군 장교이자 토목기사였던 조지 워싱턴 고우썰즈(George Washington Goethals; 1858~1928)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다리이다.―를 타고 스태튼 아일랜드로 들어섰다.

다리를 빠져 나온 트럭은 곧장 달려 스태튼 아일랜드 익스프레스 웨이로 진입하였다. 섬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길이다. 혹시 뒤에서 누가 따라오지나 않는지 다시 한 번 후방 카메라 화면으로 확인을 한 스티븐스 소위는, 허드슨 강 근처까지 온 트럭의 방향을 갑자기 북쪽으로 틀어서 베이 스트리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속 북쪽으로 달리더니, 스태튼 아일랜드 자치구 홀(Staten Island Borough Hall)까지 왔다. 여기에서 트럭은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도로 건너편 옆 건물 앞에 멈췄다.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5층짜리 건물이 조용히 서 있었다.

건물 앞쪽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경사진 도로가 건물의 지하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트럭은 크게 방향을 틀어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하더니, 주차장 안쪽 깊숙이 들어가서 멈추었다.


"그러니까, 도서관에 숨기자 이 말이네."

"그럼. 옛말에도 있잖아. 돈을 숨기려면 책 속에 숨겨라. 책을 보는 자가 도둑질을 할 리가 없다. 하하하"

리처드 올루치 박사가 말을 하자,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다들 웃어댔다. 먼저 말을 꺼냈던 숀 스티븐스 박사는 멋쩍은 듯이 뒷머리를 긁어댔다.


그 당시 아버지의 집에 모였던 사람들은, 재미로 도서관이니 어디니 하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된 브랫은 지금 이 순간에서야, 왜 아버지 숀 스티븐스가 자신에게 그 대화를 듣도록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보통 트럭 같았으면 짐칸의 문을 열고 사람의 손으로 혹은 다른 도구, 기중기 같은 것을 이용하여 화물을 내렸을 테지만, 이 신형 트럭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동 하역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운전석에 있던 스티븐스 소위가 내리더니 자그마한 리모컨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짐칸의 내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짐칸의 윗부분과 뒷문 전체가 열렸다. 짐칸 내부에 장착된 로봇팔이 화물 상자를 꽉 쥐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다시 소위가 스위치를 누르자, 화물을 받치고 있던 짐칸 하부가 기울어지면서 주차장 바닥까지 연장되었다. 화물이 내려갈 수 있는 발판인 셈이다. 그런 후 로봇 팔이 천천히 화물을 밀어서 주차장으로 내려 보냈다.

네모난 육면체의 검은 상자였다. 높이와 폭이 거의 3 미터는 되어 보인다. 상자가 안전하게 지하 주차장 안쪽 모서리에 안착한 것을 확인한 브랫은 뒤로 빙글 돌았다. 거기에는 점잖은 복장의 노신사가 한 명 서 있었다.

"장인어른. 대단히 고맙습니다."

"원 별 말을. 그런데 저걸 여기다 얼마나 둘 거지?"

"글쎄요. 어쩌면 영원히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물건이 사용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야지요. 아, 그런데 직원용 주차장은 어느 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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