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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을 찾아서(Finding Nik)-4

by 윤금현

Ⅵ.


한쪽 벽면이 온통 번쩍거리는 계기반으로 꽉 차 있는 네모난 방 안. 바닥에 군인이 누워 있다. 대위 계급을 달고 있는 그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손에 총을 든 채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대위는 죽은 자의 허리춤에서 열쇠를 뜯어냈다. 그는 자신의 열쇠를 합쳐, 두 개의 열쇠를 하얀 작업복을 입고 있는 두 남자에게 건넸다.

“여기는 마크 원. 마크 투, 응답하라.”

‘지지직....... 지지직.......’

“어쩌지.......”

무전기를 들고 있는 남자가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것을 본 남자는 다시 무전기를 입에 댔다.

“우리는 계획대로 하겠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 이상!”

하얀 작업복을 걸친 두 명이 열쇠를 컨트롤 패널에 삽입했다.

“하나, 둘, 돌려!”

패널 위로 작은 스크린이 올라왔다.

“이제 발사 코드를 입력해야 합니다.”

옆에서 대위가 말을 했다.

무전기를 내려놓은 남자가 종이를 펼쳐 놓고 스크린에 발사 코드를 입력했다. 옆 사람이 혼잣말을 했다.

“이게 뉴욕 앞 대서양에 제대로 떨어져야 할 텐데....... 그런데 설마 이게 폭발하지는 않겠지?”




1920 년대를 지나면서 세계 최대의 도시로 성장한 뉴욕은 오늘 한껏 들떠 있었다. 아직 12 월의 셋째 주였지만, 거리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온갖 장식물들로 채워져 있었고, 사람들은 양손 가득히 선물 꾸러미들을 들었다. 서쪽 42 번 스트리트에서 47 번 스트리트 사이의, 7 번 애비뉴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타임스 스퀘어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44 번 스트리트와 45 번 스트리트 사이의 브로드웨이에 있는 장난감 가게 토이저러스(Toys ‘R’ us)는 아이들과 부모들 천지였다. 타임스 스퀘어 한편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시계탑의 날짜는 2189 년 12 월 18 일 금요일(Dec. 18 Fri. 2189)을 가리켰다.


파크 애비뉴와 94 번 가가 만나는 곳에 있는 헌터 칼리지 초등학교(Hunter College Elementary School)의 한 교실에서 마리 선생님이 수업 중이다. 이제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니까 오늘이 마지막 수업날인 셈이다. 스토니 브룩(Stony Brook)에서 역사를 전공한, 이제 막 서른 살이 되려고 하는 마리 파키오는 방금 점심 식사를 마친 초등학교 4 학년 아이들에게서 졸음을 쫓아가면서, 현대 역사를 이야기했다.

“자, 여러분, 오늘 시간은 전쟁에 대한 거예요. 사람들은 아주 옛날부터 서로서로 싸우면서 살아 왔답니다. 왜 싸웠을까요?”

이제 슬슬 졸음이 오려고 하던 아이들은 옛날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눈에 생기가 돌았다.

“선생님, 더 해주세요.”

마리 선생님은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서 목소리에 한껏 힘을 실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인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무너진 집들을 다시 세우고, 황폐해진 땅을 다시 갈아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었답니다. 그런데, 두 번의 커다란 위기가 있었답니다. 큰 전쟁을 두 번이나 했어요. 1914 년의 제1차 세계대전과 1939 년의 제2차 세계대전.”

아이들이 깔깔깔 웃어 젖혔다.

“선생님, 두 번이니까 처음은 1 번이고 그 다음은 2 번이네요.”

마리 선생님은 침착하게 아이들의 농담을 받아 넘겼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두 번의 커다란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누구 말해 볼 사람?”

교실 여기저기서 자그마한 손들이 올라갔다.

“어디, 그럼 제시가 말해봐.”

앞쪽에서부터 세 번째 줄에 앉아 있던 제시 티플러가 손을 들고 있었다. 금발 머리의 여자애였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들어요.”

“우, 우, 우.”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마리 선생님이 말했다.

“음, 돈이 많이 든다? 제시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야. 전쟁을 하려면 정말로 많은 돈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전쟁에 지면 나라가 파산하기도 하지. 그리고 또 무엇을 배웠을까?”

아이들은 서로 말을 해댔다. 어떤 아이는 생명의 소중함이라고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전쟁의 무서움이라고 했다. 인간성이 파괴된다는 말도 나왔다. 그녀는 아이들의 의견을 교실에 걸려 있는 커다란 터치스크린에 하나씩 불러 주었다.


[돈, 생명의 소중함, 전쟁의 무서움, 인간성의 파괴, 사회 질서의 무너짐, 사는 것이 힘들어짐, 문명의 몰락, 새로운 문명의 재건, 과학과 의학의 발달, 신무기의 탄생.]


마리 선생님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 아주 낮은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이 우리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점일까? 참고로 아직 칠판에는 그 내용이 나오지 않았어. 또 다른 힌트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뉴욕 맨해튼이라고 할까?”

아이들은 잠잠해졌다.

바로 그 순간 폭탄이 터졌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서 학교 건물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터치스크린에, 마리 선생님이 미리 입력해 놓았던 말이 떠올랐다.

‘전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러나 교실의 어느 누구도 이것을 볼 수 없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 8 층의 창가 기둥에 몸을 기댔다. 갑자기 건물의 창문이 전부 깨어졌다. 그리고 엄청난 충격파가 몰려왔다. 사무실 책상과 의자들 그리고 그의 몸도 공중에 붕 떠서 사무실 반대편 벽으로 날아갔다. 그는 건너편 벽에 ‘쿵’ 하고 부딪쳤다.

감겼던 눈을 뜬 오브라이언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무실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쓰러져 있었다.

“대체 뭐지?”

“여기서 나가야 해.”

다들 허우적댔다. 로버트는 사무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부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 절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회사 동료들을 본 로버트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봐요. 전부 내 말 들어요. 우리는 여기서 나가야만 합니다. 엘리베이터는 절대 안 돼요. 계단으로 걸어서 내려가야만 합니다. 자, 이쪽이 계단이니까 전부 내 뒤를 따라 오세요.”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앞장서서 복도 끝에 있는 계단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옆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캐시 힐데먼이었다.

“로버트, 부상자들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인간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잖아요.”

이 말을 들은 로버트는 계단 입구에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복도를 향하여 나 있는 첫 번째 사무실의 문이랄 수도 없는 문을 밀었다.




스태튼 아일랜드의 클로브 레이크스 공원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던 앨리자 테일러는 폭탄이 터지는 순간을 느꼈다. 폭심지로부터 여기까지 전달된 충격파가 그녀 자신과 로비를 그 자리에 쓰러뜨렸다. 잔디 위에 누운 앨리자는 얼굴을 들어 북쪽 하늘에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치마가 다 올라가 다리가 전부 드러났지만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슨 일이지? 저건 버섯구름 같은데....... 이런 세상에!”

“로비, 어서 빨리 집으로 가자.”

앨리자는 개의 목에 매어져 있는 줄을 당기며 집 쪽으로 발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대며 미친 것처럼 공원을 뛰어다녔다.

“원폭이 터진 거야. 그래 맞아. 방사능이야. 검은 비가 내린다고 했어. 그 비를 맞으면 아마 죽는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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