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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을 찾아서(Finding Nik)-5

by 윤금현

1.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 창문으로 보일만한 것도 하나 없는 육면체의 상자 속에 갇혀 있는 줄리어스 애슬로우 중위는 두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자그마한 회색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상자의 내부는 좁았다. 안에는 성인 한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고, 정면을 뺀 나머지 세 면, 그냥 검은 색으로만 칠해진 세 면은 그가 앉아 있는 의자에 거의 닿아 있었다. 그는 정면의 커다란 패널을 보았다.

윙~ 윙~ 윙~

“저 놈의 윙윙거리는 소리!”

패널 위에는 뭔가를 표시하는 숫자들이 보였다. 숫자들 옆에 스위치들도 달려 있고, 삐죽 나와 있는 레버도 몇 개 보였다. 정면을 뺀 나머지 세 면, 검은 색 세 면은 그의 몸에 거의 닿아 있었다. 줄리어스는 좁은 좌석에서 몸을 살살 좌우로 흔들었다. 패널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조금 빠른 게 좋을까? 조금 느린 게 좋을까? 모르겠다. 이미 와 버렸는데....... 제기랄, 추우면 딱 질색인데”

띠띠띠 띠띠띠

벨이 요란스레 울렸다. 줄리어스는 순간 휘청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잠시 오른손을 심장 부근에 대고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깜짝이야. 소리 한 번 되게 크네.”

줄리어스는 투덜댔다. 그는 손을 뻗어서 파워 스위치를 돌렸다. 빠르게 바뀌고 있던 패널 숫자의 변화가 점점 느려지더니, 이윽고 완전히 정지하였다. 그러나 윙윙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런, 아주 지 맘이네....... 이걸 어떻게 멈추지?”

그는 정면 패널 위에 있는 ‘중지(ABORT)’라고 쓰여 있는 레버를 앞으로 확 당겼다.

철커덩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는 패널의 숫자를 보았다. ‘02021942’

“젠장, 뭔가 사고를 친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그래도 멈췄네.”

줄리어스는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는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멍청아! 밖의 소리가 들리겠냐?”

그는 양 손을 고개 뒤로 돌리고, 의자에 기댔다. 슬쩍 자신의 왼쪽 어깨 부분을 만져 본 줄리어스는 피부 밑에 엄지와 검지로 만들 수 있는 동그라미만한 크기의 딱딱한 이물질을 찾았다.

“요놈 덕분에 이 멍청한 머신이 나를 알아본다고. 뭐, 그렇다고 해 두지.”

“대령이 붙여준 것이기는 하지만, 언제든 필요 없으면, 떼어버릴 거야.”

찌이익

줄리어스는 무릎 위에 놓여 있던, 검은색 나일론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활과 화살 통이 보였다. 화살 통을 여니, 화살이 삼십 개 가량 있다. 나무로 만든 몸체에 돌을 갈아서 만든 화살촉이 붙어 있고, 화살의 꼬리 날개는 닭의 깃털이다. 활시위는 나무껍질과 동물의 힘줄을 꼬아서 만들어졌다. 그 외에도 나침반과 부싯돌, 망원경, 밧줄 한 묶음 그리고 책 한 권. 절반 정도는 찢어져서 없어져 있었다. 가방의 지퍼를 잠근 후, 그는 점퍼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뭔가가 만져졌다.

“슬슬 나가 볼까?”

줄리어스는 앉아 있던 좌석에 올라서서 천장에 표시된 손바닥 그림에 자신의 오른손을 대었다. ‘윙’ 하는 소리가 나면서 천장이 열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가방을 천장에 올린 다음, 줄리어스는 열린 문 옆을 어깨로 짚고, 위로 올라갔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줄리어스는 몸을 오싹거리면서 양 손을 비벼댔다. 하늘은 붉은 노을로 물들어가고,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해가 낮게 보였다. 쌀쌀한 겨울이었다.

“어, 추워....... 그나마 이 옷이라도 입고 왔기에 다행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머신의 옆면에 두 줄의 손잡이와 발을 디딜 수 있는 작은 사다리가 튀어 나와 있었다. 머신의 아래는 회갈색으로 보이는 어떤 표면이었다. 줄리어스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뒤로 돈 다음, 머신의 겉면에 만들어진 사다리를 밟고 회갈색 표면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표면에서 발을 살짝 굴러보았다.

“흙이 아니군.”

줄리어스는 사다리 옆에 있는 작은 사각형 그림에 다시 손바닥을 대었다. 두 줄의 손잡이와 사다리가 머신의 몸체 속으로 사라졌다. 저 위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렸다.

“대령이 말한 그대로네. 그래야겠지. 참, 희한한 인간이야. 대령은.”

똑바로 선 줄리어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어떤 건물의 위에 올라와 있었다. 왼쪽과 앞쪽은 건물의 한 층이 더 있었고, 그 위에는 경사진 지붕이 보였다. 오른쪽과 뒤쪽은 난간이었다. 네모난 구역의 한쪽 구석, 그가 타고 온 머신에서 몇 미터 정도 떨어진 왼쪽에는 눈 더미가 쌓여 있고, 그 옆에는 눈을 치울 때 썼던 도구들이 몇 개 나뒹굴었다.

“테라스에 착륙한 모양이구나.”

“아무렴 어때. 내려갔다가 나중에 다시 올라오면 되겠지.”

줄리어스는 가방에서 나침반을 꺼내 방위를 확인했다. 북쪽과 서쪽은 건물로 가려져 있어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남쪽으로는 건물들이 여러 채 보였고, 동쪽에 길게 놓인 도로 옆으로는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저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줄리어스는 살짝 웃었다. 그는 입고 있는 야전 점퍼의 왼쪽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라이프-1940-6-3-표지.001.jpeg

한쪽 부분에 찢어진 자국이 있는 종이였다. 종이의 왼편 위에는 라이프(LIFE)라는 글자가 빨간 밑바탕에 하얀 글씨로 크게 쓰여 있었고, 오른편 아래에는 6 월 3 일, 1940 10 센트(June 3. 1940 10 cents)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숫자 10은 큰 글자였다.

“이 여자를 찾으면 된다 이거지.”

가방에서 망원경을 꺼내든 줄리어스는 테라스에서 북동쪽 모서리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북동쪽을 살펴보았다. 푸른빛의 물이 보였다. 배들도 몇 척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망원경의 렌즈 속으로 저 멀리 여인이 보였다. 강 위에 떠 있는 섬, 그리고 그 위의 좌대에 서 있는, 머리에는 뿔이 달린 왕관을 쓰고 있는 여인. 여인의 몸집은 거대했으며, 왼손에는 책을 그리고 오른손에는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여인의 뒤 허공에 빨갛게 물들어 있는 저녁 해가 줄리어스의 눈을 찔렀다.

여인을 본 줄리어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몸이 서서히 떨렸다. 난간을 오른손으로 잡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은 줄리어스는 뒤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테라스 위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졌다.


눈을 뜬 줄리어스는 한 순간 눈동자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몇 번 눈을 깜박인 그는 테라스 바닥에 누워 있는 자신을 보았다. 주위가 어두워져 있는 것을 보더니,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착했구나.”

고개를 돌려 머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평평한 테라스 위에 커다란 검은 상자가 보였다. 정육면체처럼 생긴 검은 상자. 줄리어스는 왼쪽 어깨를 눌렀다. 머신 주위에 아지랑이가 일렁이더니, 머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줄리어스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때 바로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그냥 적의 동태나 살피고 오는 줄로만 알았잖아. 5 번 가로 가서 정보를 수집하라는 줄 알았는데....... 그게 포인트가 아니었어. 포인트는 1900 이었어.”

도시는 완전히 어두워졌으며,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다. 테라스 위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둘러본 줄리어스는 테라스 북서쪽 모서리의 자그마한 문을 발견했다. 그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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