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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을 찾아서(Finding Nik)-6

by 윤금현

2.


돌로 만들어진 벽의 나무문이 벌컥 열렸다. 애슬로우 중위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빠르게 걸었다.

“야! 이 나쁜 새끼야!”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중위는 뒤를 돌아보았다. 로라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옷 여기저기 나뭇잎이 붙은 채였다.

“왜? 대체 왜 그러는데? 너....... ”

“이 개새끼!”

줄리어스는 쳐다보기만 했다.

“나....... 간다.”

줄리어스는 그녀로부터 돌아서더니,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멈췄다. 앞에 존이 서 있었다.

“너는 뭐냐?”

“야, 줄리어스, 너.......”

존 스튜어트 중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존을 보더니, 줄리어스는 피식 웃었다.

“멍청한 자식, 말을 해!”

뒤에서 로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존은 주먹을 날렸다.

퍼억

줄리어스는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존은 씩씩거리며 줄리어스의 배를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줄리어스의 입에서 ‘헉’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 이제 연놈들이....... 아주 쌍으로 지랄을 하네.”

퉤!

줄리어스는 누운 채 고개를 돌려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너, 이제 로라와는 만나지 마라. 마지막 경고다.”

존이 손가락으로 찌르는 시늉을 했다. 줄리어스는 흙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웠다. 로라가 저만치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늘을 쳐다보는 줄리어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3.


<1875 년 1 월 1 일부터 1876 년 12 월 31 일까지 2 년 동안 제 25대 뉴욕 주지사였던 새뮤얼 틸던(Samuel Jones Tilden; 1814~1886)이 남긴 200 만 달러의 신탁금에다, 1854 년에 지어진 애스터(Astor) 도서관과 1870 년에 설립된 레녹스(Lenox) 도서관을 합하여, 뉴욕 시에 새로운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협약이 1895 년에 체결되었다. 그리고 1901 년에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가 이동도서관 설치를 위하여 520 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1902 년에 착공하여 1910 년에 완공된 뉴욕 공공 도서관은 카네기의 기부금으로 뉴욕 시 전체에 80 여 개가 넘는 분원을 만들었다. 그 결과 뉴욕 공공 도서관은 1800 년 설립된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다음으로 큰 도서관이 되었다.>


줄리어스는 테라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복도를 지났다. 계단이 보였다. 막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를 누군가 불렀다.

“누구세요? 왜 거기서 나오지요? 문이 안 잠겨 있던가요?”

순간 움찔한 그는 천천히 뒤로 돌았다. 왼쪽 겨드랑이에 책을 한 무더기 끼고 있는 여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살짝 찌푸린 채였다. 눈빛에 의심이 서려 있었다. 줄리어스는 얼른 상냥한 미소를 얼굴에 띠며, 조금은 건들거리는 발걸음으로 그녀 곁으로 슬슬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얼른 받쳐 들었다.

“너무 무거워 보입니다. 제가 도와드리지요.”

그는 책을 잡으면서 왼손으로 슬쩍 그녀의 손을 만졌다.

“친절하시군요. 그렇지만 이 시간에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도서관 이용 시간이 끝났거든요. 호호호!”

도서관 사서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줄리어스는 그녀로부터 책들을 받아들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길을 잃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야 되는데.......”

줄리어스는 천천히 말을 했다.

“아까 눈을 치우던 인부들이 문을 안 잠갔나 보군요. 거기는 아무 것도 없어요.”

“아, 그렇군요. 하지만 전망은 참 좋던데요. 저 멀리 여신상도 보이고.”

줄리어스는 그녀에게 씩 웃어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줄리어스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보일 리가 있나요?”

“아, 그렇지요. 하하. 쌍안경으로 보았습니다. 흐흐흐.”

이를 살짝 문 채, 입술만 양쪽으로 벌리면서 줄리어스는 어색하게 웃었다.

“호, 쌍안경도 가지고 다녀요? 그걸로 뭐를 볼까요? 참으로 취미가 독특하시네요. 흐흐흐.”

사서는 줄리어스의 웃음을 따라서 했다가, 다시 새침해졌다. 그녀는 줄리어스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좀 이상한 사람을 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하였다.

“도서관 밖으로 나가려면 아래로 내려가야지 왜 위로 올라와요?”

“실은 여기가 처음인데, 화장실을 찾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복도 저쪽 끝에 있어요. 그리고 도서관 이용 시간이 끝났답니다. 계단을 내려가서 로비로 나가면, 외부로 나가는 문이 있어요. 미스터 로저스한테 부탁하면, 그가 열어줄 거예요.”

줄리어스는 책을 도서관 직원에게 돌려주고 화장실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도서관 사서는 줄리어스에게서 다시 책을 받아들더니, 복도 끝의 화장실로 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방금 그가 나온 2 층 테라스로 나가는 문으로 가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어두운 밤 공기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테라스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문을 잘 잠그라고 해야겠군."

여직원은 중얼거리며 부리나케 가버렸다. 줄리어스가 화장실로 들어 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니, 여직원은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줄리어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도서관에서 나온 줄리어스는 건물 앞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성 조지 도서관 센터.png

뒤를 돌아보니 계단 위에 도서관 정문이 있었고, 그 위쪽에 세인트 조지 도서관 센터(St. George Library Center)라고 건물 이름을 새긴 명판이 붙어 있었다.

“그런대로 무사히 도착했구나.”

그는 도서관 건물을 바라보면서 싱긋 웃었다.


<1907 년 6 월 26 일, 문을 연 세인트 조지 도서관 센터는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며, 카레르와 헤이스팅스(Carrere and Hastings)가 디자인하였다. 그리고 가장 큰 열람실에는 커다란 목재 들보를 댄 천장이 있었다. 이곳은 허드슨 강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맨해튼으로 가는 페리 터미널과 가까웠다.>


“밤이 되어서 그런지 날씨가 춥네. 오늘 밤이 첫날인데....... 어디서 잘까? 아직 배는 고프지 않으니까 아무데나 별 상관없기는 한데.......”

줄리어스는 입고 있던 점퍼를 바싹 끌어당겼다.

도서관 왼편에 도로가 있었고, 건너편에 기다란 건물이 보였다. 그는 도로를 건너 건물 앞으로 갔다. 세인트 조지 극장(St. George’s Theatre; 1928 년 8 월에 착공하여 1929 년 12 월 4 일 개장을 한,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가장 거대한 극장이다. 극장 내부의 인테리어가 스페인과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멋진 건물이다.)이었다. 오른쪽을 보니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스태튼 아일랜드 자치구 홀(Staten Island Borough Hall; 1906 년 카레르와 헤이스팅스에 의해서 벽돌과 석회석을 사용하여, 프랑스 르네상스 스타일로 디자인된 건물이다.)이었다.

“멋지게 생겼군.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줄리어스는 세인트 조지 극장 앞에서 잠시 서성거리다가, 오른쪽으로 가서 살펴보니,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북쪽으로 가야 해. 그래. 그렇게 해야겠어.”

극장의 왼편으로 걸어가서 보니, 저 멀리 북쪽으로 숲이 보였다. 그는 숲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5 분 정도 걸었다. 그의 눈앞에 서서히 숲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공원이었다.

“흠, 거기서도 숲에서 생활했는데, 여기서조차 숲에서 잠을 자야 하는군.”

“그래, 집이었으면 더욱 좋겠지. 따듯하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숲이 더 편해. 어쩔 수 없잖아.”

그는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에선가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고, 개들이 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줄리어스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설명을 해드려야지 납득이 갈 것입니다. 닉! 그냥 닉이라고 불러도 상관없겠지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그러면서 빨간 색으로 물이 들기 시작하면, 이제 모두들 저녁 식사를 하러 이동할 준비를 합니다. 각자 자신의 장비를 챙겨 들지요. 해가 지면 전투도 끝이 난답니다. 예전에는 컴컴한 밤에 야습도 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안 합니다. 별 효과도 없고, 이제는 우리나 저쪽 편이나 다들 그런 줄 압니다. 좋은 점도 있기는 합니다. 저쪽도 우리를 밤중에 기습하지는 않으니까요. 숲 속에 나 있는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인 동시에 병영입니다. 예? 좋은 집이냐고요? 그럴 리가요. 그냥 돌로 벽을 세우고, 벽 위에 나무로 판을 만들고, 그 위에는 잎사귀들로 지붕이라고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당연히 바닥은 흙이지요. 그 위에 어디서 주워왔는지도 모르는 천들도 깔고 그럽니다. 햇빛이 조금 남아 있을 때, 얼른 식사를 끝내고, 다들 가족들 곁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홀로인 사람들은 그냥 여기 병영 가운데에서 잠을 잡니다. 장교들은 동쪽 침상에서, 사병들은 서쪽 침상에서 침낭을 깔고 잡니다.”

“내 이름은 줄리어스 애슬로우. 나이는 27 세. 아버지는 칼 애슬로우. 어머니는 헬렌. 지금은 없어요. 죽었으니까. 가족은 없어요. 나는 군인입니다. 여기서 남자들은 아니 모든 사람들이 다 군인이지요.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간단하지요? 대부분의 군인들이 칼이나 창을 사용합니다만, 나는 주로 활을 사용합니다. 아, 물론 칼도 자그마한 걸로 하나 휴대하고 다니기는 합니다. 그리고 장교입니다. 계급은 중위. 병영은 가로가 100 미터 정도 그리고 세로가 200 미터 정도예요. 정확한 수치는 아니에요. 대충 그렇다는 말이지요. 가로 세로야 바꾸어 말해도 그만입니다. 가운데가 주방 겸 식당이고, 건물 벽을 빙 둘러서 방들이 있습니다. 복도도 여기저기 있지요. 병영 모서리 네 곳에 감시탑이 있어요. 높이는 5 미터 정도나 될까요? 두세 명씩 올라가서 망을 봅니다.”


줄리어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몸을 기대고 있는 나뭇가지 건너편의 또 다른 나뭇가지에 자그마한 새 한 마리가 우두커니 앉아 그를 보았다.


“전투에 나갔던 사람들이 다들 돌아옵니다. 나의 소대도 줄을 지어서 인원 점검을 받아요. 여기 오기 전 마지막 전투에서 두 명을 잃었어요. 다섯 명은 부상. 남은 사람은 열세 명. 겨우 이십 명을 채워서 완전한 소대를 만들었는데, 다시 절름발이 소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세 명이 빠지면, 수가 적은 다른 소대와 합쳐야 합니다. 내가 소대장이 되거나 아니면 부소대장이 되겠지요. 식사를 마치고 나에게 배정된 방으로 가면....... 그만 두지요. 가족들이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 있는 방으로 갑니다. 보통 어머니와 동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식이 없는 어머니는 홀로 남은 어린이를 양자나 양녀로 들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혼자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스티븐스 대령이 있습니다. 우리 병영의 대장이지요.”


줄리어스 애슬로우는 눈을 감았다. 높다란 나무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