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스티븐스 대령, 그러니까 지금 스태튼 아일랜드로 건너가겠단 말이군요? 그것도 소대를 세 개나 가지고서.”
“그렇습니다. 누차 말했지만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탁자에 세 명의 군인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다들 어깨에 별을 하나 혹은 둘 씩 달았다. 그 탁자의 맞은편에 조금 떨어져서, 대령 계급을 단 사람이 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두 주먹을 쥐어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좋아요. 대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이 일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일단 그때로부터 시간도 많이 흘렀고, 그것이 아직까지 그 장소에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가운데 앉아 있는, 소장 계급을 단 장성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것이 지금도 거기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스티븐스 대령은 힘찬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좋아요. 그럼 삼 개 소대를 주지요. 그러나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먼저 거기에서 전투를 벌여서는 안 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정찰 작전일 뿐이고, 정말 중요한 점은....... 아직 스태튼 아일랜드는 우리 지역이 아닙니다. 잘 알고 있지요? 다른 지역을 점령하려면....... 아, 그 얘기는 그만 둡시다. 어차피 대령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만약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즉각 후퇴해야 합니다. 알겠지요?”
대령은 고개를 끄덕했다.
“그럼 시간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일 주일. 7 일이면 충분합니다.”
5.
줄리어스는 나무 위에서 몸을 움찔움찔 움직였다. 몸이 나뭇가지에 밧줄로 묶여 있었다. 밝은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그의 얼굴을 비췄다. 줄을 풀고 나무에서 내려온 줄리어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주변에 널려 있던 돌멩이들을 주워서 나무의 밑동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손에 묻은 흙을 탁탁 턴 그는
“돌에 발이 달려서 어디 가겠어?”
하고 중얼거렸다.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나뭇가지에 가려져 있었으나, 그 사이로 슬쩍 가방이 보였다. 줄리어스는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대고 풀 위에 앉았다.
“이제 이걸 읽어 봐야지. 거기에서는 이것을 읽을 시간조차 없었는데, 여기는 한가하네.”
줄리어스는 스티븐스 대령이 준 편람을 펼쳐 보았다.
[1856 년 7 월 10 일 오스트리아 제국(Austrian Empire)의 스밀리안(Smiljan) 마을, 세르비아 부모에게서 네 번째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의 아버지 밀루틴은 세르비아 정교회 사제였고, 역시 세르비아 정교회 사제의 딸이었던 어머니 듀카는 가정주부였다. ...... ]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그는 목을 살살 돌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날씨가 따뜻했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 그는 계속 읽었다.
[...... 드디어 1884 년 6 월 그는 뉴욕으로 가게 되었다. 대서양을 항해하는 도중, 그는 티켓과 돈 그리고 수하물의 일부를 도둑맞았다. 그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가진 것이라곤 주머니에 들어 있던 4 센트의 동전과 추천서와 몇 장의 시 그리고 소유물 중 남은 것들이었다.]
줄리어스는 책을 탁 덮었다.
“뭐야, 재미가 하나도 없잖아. 그래서 어쨌는데? 그래도 그가 뉴욕으로 오기는 왔군. 그래서 나도 뉴욕으로 온 거야.”
그는 화난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음, 그런데 이 넓은 뉴욕에서 어떻게 그를 찾지?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는데, 그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줄리어스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동안 나무 밑에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나는 북쪽으로 갈 테다. 그래야 거기로 갈 수 있으니까. 몰라. 일단 가보는 거야.”
그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도로 표지판이 보였다.
“세인트 마크스 플레이스. 이쪽으로 가 보자.”
“무턱대고 임무를 맡기는 맡았는데 말이야, 정말 막막하군. 떠밀려서 오기는 왔는데....... 바보 같은 녀석, 싸움도 잘 못하면서....... 칼에 찔리기나 하고 말이야........ 대충 삼사 일 놀다가 그냥 돌아가 버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는 해야겠지. 안 그래? 줄리어스!”
길을 따라 조금 걷자 곧 사거리가 나왔다. 도로의 왼편에는 학교가, 오른편에는 넓은 터가 보였고, 나무들이 많았다. 건물들도 몇 채 있었다. 줄리어스는 해밀턴 애비뉴로 방향을 틀었다.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활기가 넘쳤다. 줄리어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검은 테가 둘러진 밤색 중절모를 만지작거리던 줄리어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줄리어스, 이 옷들과 모자를 가져가. 구한다고는 했지만 자네의 여행에 맞을는지 모르겠군.”
스티븐스 대령이 주는 옷가지들을 애슬로우 중위는 받았다. 낡을 대로 낡은 옷가지들과 모자였다.
“중위, 그 시대에는 말이야, 돈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없으면 아무 것도 구할 수가 없다네.”
“그래요?”
“보통 금속이나 종이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걸 주면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지. 즉 교환을 하는 거야.”
“음식하고도 말입니까?”
“그렇지.”
“에이, 바보 아닙니까? 먹을 수 없는 것과 먹을 수 있는 것을 바꾸다니요?”
“그땐 그랬어.”
6.
줄리어스 애슬로우 중위는 복도를 돌았다. 그리고 복도 끝까지 가서 멈췄다.
‘대령, 스티븐스’
그는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문을 밀고 들어간 애슬로우는 스티븐스 대령의 앞에 차려 자세로 섰다.
“자리에 앉아.”
대령은 줄리어스를 꼬나보았다.
“중위, 우리는 오늘 저녁에 떠난다. 준비는 잘 되었겠지?”
“예. 대령님.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뗏목 세 개에 각 소대별로 타고 갑니다.”
“그래? 나는 어디에?”
애슬로우는 씨익 웃었다. 대령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았다.
“제 뗏목을 타시죠.”
대령은 눈가에 주름을 만들더니, 책상 위의 담배를 집어 들었다.
“담배?”
“아닙니다.”
대령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휴우’하고 연기를 뿜었다.
“그럼 가 봐.”
애슬로우 중위는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났다. 뒤로 돌아서 방문 앞으로 갔다.
“중위, 자네 말이야. 그만 사고 좀 치지 그래. 그딴 식으로 굴면....... 어쨌든 이번이 마지막이야.”
등 뒤에서 들리는 대령의 말에 애슬로우는 다시 빙글 돌았다.
“대령님, 죄송합니다. 이제 로라는 만나지 않겠습니다.”
“난 스튜어트의 뗏목을 탈 것이네.”
대령은 그를 노려보았다. 애슬로우는 뒷머리를 긁었다.
7.
줄리어스는 오른발로 땅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그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거기, 젊은이. 나를 도와줄 수 있나?”
바로 앞 도로에서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노인이 그를 불렀다.
“저 말입니까?”
감색 헌팅캡을 쓴 노인 한 명이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이리 와서 좀 밀어봐.”
줄리어스는 그쪽으로 다가가서 손수레 뒤를 밀기 시작했다. 수레에는 각종 종이와 고철 그리고 유리병들이 쌓여 있었다.
“이제 한결 낫군. 자네, 뉴욕이 처음이지? 척 보면 알겠는걸.”
노인은 싱글벙글거리며 계속 말을 하였다.
“촌티가 줄줄 흐르는데.”
줄리어스는 천천히 자신이 입고 있는 옷가지를 훑어보았다. 회색 점퍼를 걸쳤으며, 주머니마다 불룩 튀어나와 있고, 오래된 티가 났다. 점퍼 속에는 파란색 셔츠를 걸쳤다. 그리고 낡은 검정 바지를 입었다.
“하하하, 할아버지도 참. 이건 요새 남부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랍니다. 들어보셨나요? 이건 빈티지 스타일과 밀리터리 룩을 합친 거예요.”
줄리어스는 되는대로 지껄였다. 노인이 고개를 돌리더니 줄리어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줄리어스는 노인의 눈을 피하며, 목에 걸려 있던 가죽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목걸이에는 검은색으로 보이는 펜던트 비슷한 것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줄리어스가 노인에게 말을 했다.
“터미널.”
수레의 앞에서 끌고 있던 노인은 짧게 대답했다.
“터미널에는 뭐 하러 가세요?”
노인은 다시 뒤를 돌아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줄리어스를 바라보았다.
“맨해튼으로 가려면 페리를 타야지. 그것도 모르나? 대체 여기 리치몬드에는 어떻게 온 거야?”
“그게.......”
둘은 그렇게 작은 수레를 밀고 끌며 동쪽으로 가다가 도로가 휘어지는 것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대략 10 여 분이 흐른 후, 수레는 멈추었다. 그들은 브라이튼 지역의 끝, 리치몬드 테라스에 있는 세인트 조지 페리 터미널(St. George Ferry Terminal)에 도착했다.
“이봐, 젊은이. 여기는 백 년이 넘은 곳이야.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가 맨해튼으로 가는 출발점이자, 맨해튼에서 다시 돌아오는 도착점이 바로 여기라네. 자네는 모르나?”
“예. 모릅니다.”
“여기 사람이 아니군. 어쨌든 고맙네, 젊은이.”
“줄리어스, 줄리어스 애슬로우입니다.”
“그래. 나는 토머스라네. 토머스 잽스. 이제 배를 타고 맨해튼으로 갈 거야. 자네 갈 길을 가게나. 아차, 수고한 대가를 줘야지.”
노인은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 몇 개를 꺼내 들었다.
“저도 맨해튼에 가고 싶어요.”
줄리어스는 잽스에게 부탁을 했다.
“자네 빈털터리로군.”
“.......”
“좋아. 내가 태워주지. 자네가 날 도와주었고, 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5 센트 값어치는 했어.”
<1897 년에 페리 요금이 5 센트로 책정되었다. 1972 년 10 월 10 일 페리 요금은 10 센트로 인상되었으며, 1975 년에는 25 센트로 다시 올라갔다. 1990 년 8 월 1 일 요금은 50 센트까지 상승하였으나, 마침내 1997 년 7 월 4 일 요금은 폐지되고 페리는 무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