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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을 찾아서(Finding Nik)-9

by 윤금현

9.


날씨가 화창했다. 바람이 살살 불었다. 강 건너로 보이는 맨해튼의 높다란 고층 빌딩들을 줄리어스는 올려다보았다. 잽스가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나?”

“저 대단한 건물들을 보세요. 저걸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누가 만들기는....... 사람들이 만들었지. 그렇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참 대단해 보이기는 하네. 그런데 자네는 맨해튼에 뭐 하러 가지?”

“아, 누군가를 찾으러 갑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중이라 이거군.”

“그게 실은....... 조금 달라요. 실은 처음 만나러 가는 길이라 정확한 주소도 몰라요. 아마 나이도 팔십이 넘었을 겁니다. 이제 저 먼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어서 만나러 갑니다.”

줄리어스는 줄줄 말을 해댔다.

“처음 만나러 가는 길? 허허, 그것 참. 그래도 참 좋겠어. 그 노인네가 부럽군. 난 이제 날 만나러 올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라네.”

“가족이나 친척이 없나요?”

잽스가 모자를 벗어 들었다. 그의 머리를 덮고 있던 흰머리가 드러났다. 앞쪽의 머리는 많이 빠져 있었고, 이마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했다. 노인의 눈이 강 너머를 향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지금 전쟁에 나갔다네. 태평양에서 싸우고 있지. 작년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잖아.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나쁜 놈들!”

“그럼 지금 1942 년도입니까?”

잽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거, 완전 촌놈이네. 너, 대체 어디에서 온 거야?”

줄리어스는 머리만 긁어댔다.

“젊은이, 정신 좀 차리게.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야.”

그는 고개를 들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과연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주위에 있는 친구들의 자식들도 다들 전쟁에 나갔다네. 부상당한 아이들은 돌아왔지만....... 아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대신 한 장의 편지가 날아온 집들도 있다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지요. 희망을 가지세요.”

그의 말을 들은 잽스의 눈에 미소가 어렸다.

“그래. 희망을 가져야지. 그리고 나에게는 아직 일이 있다네. 이걸 고물상에 팔면 왕복 페리 삯을 제하고도 남는 게 있지.”

자그마한 손수레에 실려 있는 종이들, 병들 그리고 금속 조각들을 쳐다보더니, 줄리어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근처에서 팔아버리지 그러세요? 이렇게 끌고 가는 것은 고생이잖아요.”

“모르는 소리 말아. 그냥 매집상에게 넘기면 절반 밖에는 안 줘. 자네, 다른 사람 지갑에서 1 센트를 꺼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나 해? 그리고 이렇게 페리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나에게는 운동도 되고, 뭐랄까 나들이도 되거든. 구태여 코니아일랜드까지 갈 필요도 없어. 거기는 사람만 많고, 게다가 나 같은 사람들한테는 별로 재미없거든. 젊은 사람들이나 재미있지.”


페리는 맨해튼의 화이트홀 터미널(Whitehall Terminal)에 도착했다. 둘은 부리나케 수레와 함께 페리에서 내렸다.“배를 태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야, 나야말로 오랜만에 친구가 생겨서 좋았어.”

“어디 사세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왜? 만나러 오려고?”

“세상일은 모르잖아요. 혹시나 해서요?”

“아까 만났던 해밀턴 애비뉴 알지? 거기 있는 커티스 고등학교(Curtis High school; 커티스 고등학교는 뉴욕시 교육부에서 운영하며, 뉴욕주 뉴욕시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7개 공립 고등학교 중 하나이다. 1904년 2월 9일에 설립되었으며, 스태튼 아일랜드 최초의 고등학교이다.)에 있어. 거기서 낮에는 청소도 하고, 부서진 데가 있으면 고치기도 하고, 밤에는 경비도 서지.”

“이야, 많은 일들을 하시는군요.”

줄리어스는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10.


위층에 올라갔던 1 소대와 2 소대의 군인들이 모두 로비로 내려왔다. 톰 클린스의 3 소대가 돌덩이로 막혀 있는 로비 계단을 파고 있었다.

“클린스 중위, 작업은 잘 되가나?”

스티븐스 대령이 말을 걸었다. 클린스 중위는 삽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삽하고 곡괭이로 파고 있습니다.”

“힘들지?”

“괜찮습니다. 대령님. 그런데 이거, 밤까지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완전히 막혀 있습니다. 쌓여 있는 돌들과 기타 등등, 이것들을 전부 치워야만 됩니다.”

톰의 대답에 대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늘을 보았다. 이제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 여기에 인원이 더 필요하겠군. 2 소대는 여기를 도와주고, 1 소대는 바깥에 천막을 치도록!”


하늘에는 별들만 반짝거렸다. 달빛이 없어서 주위는 캄캄했다. 도서관 앞 공터에서 모닥불이 타 올랐다. 불이 붙은 장작 몇 개를 누군가가 집어 들더니 1 층 로비로 옮겼다. 옆에 있던 다른 군인들이 거기에 나뭇가지를 올렸다. 줄리어스의 귀에 가끔씩 벌레 소리가 들렸다. 곤충들이 많이 보였다. 둘러보니 그의 소대 절반은 쉬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보초를 서고 있었다.

애슬로우 중위는 도서관 앞길을 건넜다. 스티븐스 대령이 혼자 앉아 있었다.

“대령님!”

대령이 돌아보았다.

“혼자십니까?”

대령은 그윽한 눈길로 줄리어스를 쳐다보다, 손으로 옆에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줄리어스. 자네가 처음 태어났을 때 이 세상은 어땠나?”

스티븐스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냥 그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그리고 주위에는 다른 군인들이 있었고. 지금 여기 같이 있는 동료들이 그때는 친구들이자 형제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다 같이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가 12 살이 되었을 때 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친구들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랬지. 자네 부모도 전쟁 통에 죽었지. 그런데 내가 태어났을 때는 세상이 이렇지 않았어. 내가 자네보다 30 살이 많으니까, 난 그 전쟁으로부터 십 년 후에 태어났다네. 방사능의 공포 속에서 살았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했어. 하루 종일 들판에서 농사를 짓고, 나무를 모으기도 하고....... 먹고 살려면 그 수밖에는 없었어.”

대령은 눈을 감았다 .

“벌써, 이 전쟁이 시작된 지도 15 년이야.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

하얀 장갑을 끼고 있는 자신의 왼손을 대령은 내려다보았다.

“그래, 동료들이 많이 죽었지.”

“대령님 손도 그래서 그런가요?”

줄리어스가 조용히 말을 했다. 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령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전쟁으로부터 벌써 60 년도 더 흘렀군. 내가 우리 가족사를 이야기한 적이 없지?”

“그렇습니다. 여기 있는 누구도 특별히 가족의 내력이란 것이 없으니까요.”

“내 할아버지는 더블엔(NN) 그룹의 일원이었다네.”

스티븐스는 줄리어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줄리어스는 잠자코 있었다.

“더블엔(NN). No Nukes(핵무기 철폐)라는 단어의 약자라네.”

“오호? 그래요?”

줄리어스는 도서관 쪽을 쳐다보았다.

“줄리어스.”

줄리어스는 고개를 돌려 대령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핵폭탄을 없애버리기로....... 이 지상에서.......”

대령이 말을 멈추었다. 스튜어트 중위가 걸어오고 있었다.

“줄리어스, 이제 교대하자.”

줄리어스는 벌떡 일어났다.

“자네도 여기 앉지 그래. 스튜어트 중위.”

“애슬로우 중위도 잠깐 있어.”

두 중위들은 대령의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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