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줄리어스 애슬로우는 잽스 노인과 작별하고 맨해튼에 발을 디뎠다. 해는 서서히 중천으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줄리어스는 스테이트 스트리트를 따라서 북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이윽고 그의 눈앞에 지하철역이 나타났다.
“보울링 그린(Bowling Green) 지하철역이라.......”
그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음, 아직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군. 그렇다면.......”
줄리어스는 브로드웨이로 접어들었다. 맨해튼의 거리를 보았다.
사람들은 멋지게 차려 입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도로에는 많은 자동차들이 있었다. 그리고 도로 좌우로는 높다란 빌딩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후유, 대단하군.”
“저건 자동차라는 건가?”
줄리어스는 연신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때 그의 눈에 어떤 빌딩의 1 층에 자리 잡은 커다란 빵집이 하나 들어왔다.
[브루스 앤드 선즈]
“아버지와 아들들이 함께 하나 보군. 그럼 이제 아침 식사를 해 볼까?”
줄리어스는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빵 가게로 쓱 들어선 그는 가게 안을 휙 둘러보더니, 문 바로 옆에 진열되어 있던 빵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을 얼른 집어 들었다.
“저 놈 잡아라!”
입으로는 빵을 물어뜯으면서, 눈으로는 앞쪽을 보면서 줄리어스는 쏜살같이 도망을 쳤다. 주변의 사람들을 피해서 그는 자동차가 다니고 있는 도로로 뛰어들었다. 여기저기서 빵빵거렸다.
“어쩔 수 없잖아.”
허공에 대고 소리를 친 줄리어스는 간신히 길을 건너 앞으로 뛰었다. 월 스트리트 지하철역이 보였다. 지하철 역 입구에 도착하기 전에 오른쪽으로 다른 길이 보였다. 월 스트리트였다. 잠깐 발을 멈춘 줄리어스는 얼른 오른쪽 길로 달렸고, 이제 거의 다 먹어간 빵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털어 넣으려는 순간, 발이 허공에 붕 뜨며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이런, 이런. 요 조그마한 도둑을 보게나.”
두 손이 뒤로 확 잡아 당겨지는 순간 왼손에 쥐고 있던 빵 조각이 땅으로 떨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제복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줄리어스는 양 손이 등 뒤로 결박당하는 순간에도 입에 남아 있던 빵을 열심히 씹었다.
“그래, 이유를 말해봐.”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오늘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줄리어스의 대답을 들은 경관이 ‘허허’ 하며 혀를 차더니, 그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흑인 경관이었다. 경사 계급을 달고 있었다. 이름표는 ‘B. 잭슨’
“이젠 아니야. 넌 커다란 빵을 하나 먹어 치웠잖아. 그것도 훔쳐서.”
책상 너머에 앉아 있던 잭슨 경사는 펜으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질문을 던졌다.
“이름, 나이, 주소, 직업.”
“줄리어스. 만약에 누군가에게 잡히거나 했을 경우에는 말이야, 어떻게 할 셈이지?”
“대령님, 그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요.”
“그래, 그럴 거야. 생전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상당히 곤란하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냥 사실대로 말할까요? 나는 지금으로부터 삼백 년 후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제 그만 풀어주시죠.”
“내 생각으로도 그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줄리어스 애슬로우, 27 세. 주소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이 여기 뉴욕에 처음이거든요. 직업도 아직 없습니다. 이제부터 구할 생각입니다.”
줄리어스는 최대한 공손히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책상에 놓여 있는 타자기를 쳐다보았다. 타자기에는 다 지워져 가고는 있었지만, 레밍턴(Remington)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작은 탁상 달력의 날짜는 2월 3 일 화요일이었다.
“줄리어스라, 이름만큼은 대단하군. 그런데 자네의 그 행위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걸. 그럼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
“그게, 저.......”
철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줄리어스의 뒤에서 철문이 닫혔다. 그리고 문이 잠겼다.
“얌전히 있어.”
젊은 경관은 줄리어스에게 눈을 부라렸다.
“글쎄,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말을 못하는 거 있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야, 뭐야?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아. 그리고 쌍안경이니 나침반이니 하는 것들을 왜 가지고 있을까?”
“바보 아니면 뭔가를 숨기는 것이 분명하군.”
“내기할까? 난 바보 쪽에 10 센트를 걸지.”
“이봐, 나도 그쪽에 걸고 싶었어.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자네 반대편에 걸지.”
줄리어스는 유치장 안에서 두 명의 경관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12.
스티븐스 대령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자네들 타임머신이 무엇인지 들어 보았나?”
“예. 시간을 이동하여 과거로도 가고 미래로도 갈 수 있는 상상의 기계가 아닌가요?”
대령은 가만히 줄리어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튜어트와 줄리어스도 대령을 따라서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었다. 그리고 셋은 나란히 도서관 로비로 향했다.
“그게 말이지, 나의 할아버지 숀 스티븐스와 동료들이 타임머신을 만들었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이 무엇인지 알아낸 것이라네. 그리고 그 시간을 볼 수 있는, 간단히 말해서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 거야.”
줄리어스 애슬로우 중위는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애슬로우 중위! 왜 그런 표정을 짓지? 설마 내가 꿈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대령님, 제가 그리 많이 살지도 않았고 배운 것도 별로 없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을 것 같습니까?”
스티븐스는 부하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걸어갔다. 줄리어스와 스튜어트는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들은 이 장치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분명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할아버지는 나의 아버지, 브랫에게 이 장치를 넘겼어. 그리고 아버지가 그것을 숨겼지. 숨긴 장소는 자신만 알고 있었고. 아버지는 원폭 방사능 때문에 암으로 사망했는데, 사망하기 전 나에게 그것을 숨긴 장소를 알려 주었다네.”
줄리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로 그런 장치를 만들었다면, 그걸 사용하여 그 전쟁 자체를, 아니 원폭 자체를 없애버리지 그랬어요?”
말을 마치고 가만히 있던 대령은 줄리어스를 보고 씁쓸히 웃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그렇지만 타임머신 기술자들은 애초부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만약 그렇게 하더라도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네.”
“불가능하다고요? 왜 그렇지요?”
스튜어트 중위가 물었다.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대강 들은 내용은....... 그건 말이지, 시간은 기록이라고 하더군. 타임머신은 기록이 된 페이지 사이에 링크를 거는 것이고.”
대령은 양 손을 가슴께에 들었다.
“잘 봐. 이렇게 왼손과 오른손이 있지. 왼손은 과거의 페이지. 오른손은 현재의 페이지. 두 페이지 사이에, 예를 들면 지금 이 시간과 과거의 어느 시간 사이가 연결되는 거지.”
대령은 양 손의 손가락들을, 엄지는 엄지끼리 그리고 나머지는 나머지끼리, 짝으로 붙여 보였다.
“알겠어?”
두 중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시간대 사이에 포털이 열린다고 봐도 되겠지. 뭐, 그런 거지.”
줄리어스는 손을 들어 대령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대령님, 그러니까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가서, 간 다음 거기서 역사를 바꾸면 되잖아요? 그 망할 놈의 폭탄들을 없애버리면 되잖아요. 아니면 폭탄을 만든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리든지.......”
스티븐스 대령은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애슬로우 중위. 이렇게 왼손과 오른손이 연결되어 있다고 해 봐. 그러면 이 상태에서 시간이 정지하나?”
“.......”
“링크도 시간을 따라 흘러간다네. 자네가 아인슈타인을 죽이면, 그건 그 페이지를 덮어쓰는 거잖아. 그 사실이 우리에게까지 오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