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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을 찾아서(Finding Nik)-14

by 윤금현

19.


“제임스 린든!”

독방 옆의 넓은 유치장 바닥에 모로 드러누워서 자고 있던, 그래도 꽤 깔끔한 옷차림의 젊은 남자 한 명이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린든! 일어나! 집에 가야지.”

린든이라고 불린 그 사람은 이제 서서히 잠이 깨고 있었다.

“경관님, 어제 밤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 아, 글쎄, 옆방에 혼자 있던 녀석이 밤새도록 중얼거리지 뭡니까?”

“그건 그 녀석 사정이고, 자네는 이제 일어나서 가도록 해.”


“저, 브라운 양, 모닝커피를 한 잔 할 수 있을까요?”

은근슬쩍 이 경찰서의 유일한 여경인 낸시 브라운에게 다가가며, 린든은 말을 붙였다.

“호호, 린든 씨, 어젯밤에 슬쩍한 물건을 어떻게 했는지 말해준다면, 커피에 토스트까지 함께 드리지요.”

“그냥 포기하겠수다. 아직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뭘.”

제임스 린든은 혼자서 경찰 분서 한 쪽 끝에 있는 물통으로 가서 물 한 잔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더니 빌 잭슨 경사에게로 다가갔다.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흰 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잭슨은 흑인 경관이었다. 그는 탄탄한 몸에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옆방 있잖아요. 그 독방. 거기에 그 녀석이 전쟁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엄청난 전쟁이랍니다. 글쎄, 온 세상이 전부 싸웠대요.”

경찰서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린든을 쳐다보았다. 다음 순간 경찰서 안은 조용해졌다.


경찰서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이 조용히 열렸다. 분서장 월터 로이드 경위가 나왔다.

분서장이 나오는 것을 본 린든은 더 큰 소리로 떠들었다.

“엄청난 무기들로 싸움을 했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대요. 지금도 계속 싸워대고 있답니다. 그리고 무슨 폭탄 이야기도 했어요.”

폭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서장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했다.

“린든, 내 방으로 들어 와. 경사도 같이.”

경위가 조용한 목소리로 잭슨 경사와 린든을 불렀다. 낸시 브라운이 책상에서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잭슨은 서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린든도 따라 들어갔다. 로이드 경위는 자신의 책상 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본 그는 책상 위에 있던 카멜 담배를 뽑아들더니, 손짓으로 잭슨과 린든에게 앉으라고 했다. 경사와 좀도둑은 서장의 철제 책상 앞에 있는, 쿠션이랄 수도 없는 얇은 천만 달랑 깔려져 있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엉거주춤하게 엉덩이를 걸쳤다.

“자, 담배.”

서장과 린든은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방에 안개처럼 퍼져 나가며 꽉 찼다. 잭슨 경사가 일어나서 한쪽 벽면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다들 말이 없다.

“서장님.”

잭슨이 서장에게 재촉을 했다.

“린든, 그 폭탄 이야기를 해 봐.”

서장이 말하자 린든은 움찔했다.

“서장님, 그게 그러니까....... 새벽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옆방에서 누군가 중얼거리지 뭡니까? 물 한 잔을 마시고 자려고 하는데 계속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어쩌면 물을 마시기 전에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전쟁 이야기도 하고....... 폭탄 이야기도 했어요.”

“계속해.”

“폭탄 몇 개가 세상을 끝장낸다고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폭탄이랬어요.”

린든은 떠듬떠듬 이야기를 했다.

로이드는 잭슨을 쳐다보았다.

“경사, 린든을 어떻게 처리 할까?”

“예? 뭘 말입니까?”

로이드 경위는 찌르듯이 잭슨을 바라보았다. 경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린든은 특별히 큰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사소한 이런저런 문제들을 일으킨 적이 조금 있었습니다. 게다가 여기 뉴욕 시민들한테 무슨 엄청난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니까요. 제 생각으로는 여기서 훈방 조치를 하고자 합니다.”

잭슨의 말이 끝나자 린든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린든, 자네 오래오래 건강히 살고 싶지?”

로이드 서장의 말에 린든은 해죽이 웃었다.

“서장님,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저, 아직 결혼도 안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기는 한데.......”

잭슨 경사는 얼른 린든의 어깨를 잡았다.

“자, 린든. 이제 밖에 나가서 잠시만 기다려. 내가 처리해 줄 테니까.”

린든은 로이드와 잭슨에게 살짝 목례를 하더니, 서장실을 나갔다.

“서장님, 줄리어스 애슬로우, 이게 진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을 어떻게 할까요?”

로이드 서장은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보았다. 눈을 감더니 목을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 서장은 눈을 떴다.

“경사, 일단 몇 명을 모아서 줄리어스란 남자를 다시 데려오도록 하시오. 조용히 잡아들이시오.”

경사는 서장의 방에서 나오더니 경찰서 안을 둘러보았다.

“핸슨, 암스트롱, 터너!”


로이드 서장은 두 대 째 피우던 담배를 끄더니 자리에 앉았다. 거칠게 전화기를 집어 들더니 번호를 돌렸다.

“메리어트 상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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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에서 낭랑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찰리를 부탁합니다. 로이드라고 하시오. 급한 일이오.”

“어디에 걸으셨어요?”

“월 스트리트 경찰 분서의 월터 로이드 서장이오.”

잠시 후 전화기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어, 월터, 오랜만이야.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조지, 혹시 자네 지난번 우리 형 환송회 기억나는가?”

“큭큭, 그날 많이도 마셔댔지.”

“지금 당장 나한테 와줘야겠어. 바로 그 일이야.”



20.


“대령님이 찾으십니다.”

상병의 말에 고개를 돌린 줄리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퍼, 가자고.”


줄리어스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에서는 클린스의 소대원들이 검은 상자의 한쪽 벽면에 있는 뚜껑을 열고, 거기에 지름이 5 센티미터, 길이는 1 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나무 막대기를 연결하고 있었다. 그 옆 바닥에는 역시 나무로 만들어진, 지름이 1 미터 정도 되는 동그란 핸들이 놓여 있었다. 줄리어스는 대령과 스튜어트의 뒤로 다가갔다. 대령은 낡고 두툼한 책을 하나 들고 있었다. 줄리어스는 책의 제목을 보았다. ‘타임머신(Time Machine)’

“스튜어트, 이 책은 말이야. 이 머신에 대한 설명서라고나 할까, 뭐 그런 것이야. 그러나 이걸 전부 읽어볼 필요는 없어. 나야 전부 읽어 보았지만. 여기에는 이것을 작동시키는 방법이 나와 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그게 뭡니까?”

“큰 문제는 아니고. 다만 이건 충전을 해야 하는데, 충전은 쉬워. 자체 발전기가 있어서 말이야. 그걸 돌려주면 전기가 충전이 되지. 지금 톰의 소대가 그걸 하려고 하는 중이야.”

톰의 소대원들이 나무 막대기에 핸들을 끼우더니, 양쪽에 두 명이 서서 힘차게 이것을 돌리기 시작했다.

“저렇게 하면 충전이 된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나 역시 교육은 받지 못했어. 그 전쟁으로부터 10 년 후에 태어났으니까. 나의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이 기계를 작동시켜야 할 경우에 대비해서 저렇게 설계를 했다네. 이 책에 그렇게 쓰여 있어.”

“그럼 사람이 손으로 돌려서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까?”

“그렇지. 그래서 앞으로는 손으로 하지 않고, 더 좋은 방법을 사용하기 위하여, 이 작전이 수립되었다네.”

대령의 설명에 스튜어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손으로 핸들을 돌리고 있는 부대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것 말고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천천히 대령을 돌아보며 스튜어트가 질문을 하자, 대령은 왼손 검지를 치켜들었다.

“이건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 기계 안에 있는 배터리가 대략 120 시간 정도 대기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왔다 갔다 하는데 사용되는 에너지는 빼고.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일이라는 거지. 즉 자네는 5 일 이내에 작전을 완료해야만 하네. 물론 4일도 좋아.”

“예. 그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기 시간이 다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대령은 씩 웃더니, 존의 어깨를 탁 쳤다.

“걱정하지 마. 저건 혼자 이곳으로 돌아온다네.”

이 말을 들은 스튜어트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요? 그럼 나 혼자 두고 이놈의 기계만 여기로 온다는 말입니까?”

스티븐스 대령은 다시 말을 하였다.

“스튜어트 중위, 나는 자식을 가져 보았다네. 물론 어릴 때 죽었지만. 자식을 낳아 보니,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았지. 그리고 나 역시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네.”

“.......”

“여기 있는 부하들은 모두 나에게 자식 같은 존재야. 절대 그곳에 자넬 혼자 내버려 두지는 않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대령님,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든지 물어 봐.”

“정말로 이 작전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스튜어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는 그가 뉴욕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어. 그 책에 나와 있잖아. 그리고 그 책에 그가 결혼했다는 내용이 있던가?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가 꽤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은 확실하지.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자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어떤 사회 시스템이 그 당시에는 있었다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경찰이라네.”

대령의 뒤에 서 있던 줄리어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신의 배터리 충전이 끝났다. 클린스의 소대원들은 뒷정리를 하고, 사용했던 장비들을 지하 주차장 한쪽으로 치워 놓았다. 대령이 머신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머신의 속으로 사라졌다.

“존, 겁나냐?”

줄리어스는 존의 어깨를 툭 쳤다.

“뭐라고? 웃기지 마.”

존은 줄리어스의 가슴을 밀쳤다.

머신의 위에서 스티븐스 대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교들은 남고, 나머지 병사들은 로비로 올라가라.”

존과 줄리어스 그리고 클린스를 제외한 나머지 소대원들이 웅성거리며 계단 쪽으로 갔다.

머신의 옆면에 나와 있던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스티븐스 대령이 스튜어트 중위를 불렀다.

“존 스튜어트 중위, 이제 갈 시간이야. 참, 인식을 해야지.”

대령은 납작한 주머니를 군복 상의 주머니에서 꺼냈다.

“이걸 피부에 이식해야 하거든. 그 다음 인공 피부로 덮으면 되네. 자네가 해주도록. 줄리어스 중위.”


줄리어스는 커버를 찢어 표면이 기하학적 무늬로 덮여 있는 금속성의 동그란 물체와 흐늘흐늘 거리는 얇은 상아색의 막을 꺼냈다. 금속 물체를 스튜어트의 왼쪽 어깨에 댄 다음, 인공 피부로 덮었다. 인공 피부는 스튜어트의 어깨살에 찰싹 달아 붙었다. 이제 동그란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대령님, 이게 완전히.......”

“걱정 마. 나중에 제거하면 되니까.”

스튜어트는 어깨를 만졌다. 대령은 존으로 하여금 손바닥을 머신의 옆면에 대도록 했다. 네모난 사각형 안에 사람의 손바닥 모양이 생기더니, 잠시 반짝였다. 그리고 다시 꺼져 버렸다.

“이 머신은 아까 이식한 장치를 인식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 대단한 기술이지.”

줄리어스와 클린스 중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스티븐스 대령은 중위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혹시 제군들, 설마 이게 아무나 작동시킬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겠지? 나의 할아버지는 미래를 볼 줄 아는 분이였다네.”

대령은 잠깐 동안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