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줄리어스, 적지에 침투했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 지역에 대한 정보조차 전혀 없을 때 말이야. 한 번 생각해 봐.”
스티븐스 대령의 갑작스런 질문에 줄리어스는 망설이다가 입을 떼었다.
“대령님, 일단 숨고 봅니다.”
대령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어 버렸다. 그리고 딱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 장난해? 자네의 그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봐. 그렇다면 숨은 다음에는 뭐를 할 건데?”
줄리어스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자 대령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숨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그러나 최선의 방법은 내 편을 한 명이라도 만드는 거야. 적의 점령 지역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군인이거나 적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전투와 관계없는 사람 하나를 만나는 것이지. 그러면 그에게서 약간이라도 정보를 얻어낼 수가 있거든.”
경찰서 문이 열리더니 두 남자가 나왔다. 한 명은 경관이었고, 다른 한 명은 아니었다. 둘은 잠시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겨울치고는 날씨가 따뜻했다. 하늘에 약간의 구름이 있었다. 경관이 아닌 남자는 입고 있는 옷의 깃을 세웠다. 그러더니 왼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오른쪽 발목을 만졌다. 다시 일어선 남자는 경찰서 정문의 유리에 자신을 비춰보았다. 옆에 서 있던 경관이 말을 하였다. 경관은 깃을 세운 남자의 주머니에 뭔가를 집어넣었다. 남자는 주머니 속을 보더니 웃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경관은 남자의 어깨를 툭 치더니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남은 남자가 말을 했다. 경관은 그 자리에 멈췄다. 깃을 세운 남자는 계속 떠들었다.
그는 남자의 말을 열심히 들었다. 경관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가 양손으로 남자의 어깨를 잡더니,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남자는 말을 멈췄다. 경관은 남자를 놓아주더니,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남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서서 길을 건넜다. 경관은 이 모습을 보다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음, 저 사람....... 잭슨 경사 같은데.......”
줄리어스는 경찰서를 뚫어지게 보았다. 경찰서 문이 열리며 낸시 브라운이 사뿐히 걸어 나왔다. 그녀는 곧장 큰 길을 따라 갔다. 줄리어스의 눈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런 그의 눈에 또 다른 한 사람이 들어왔다. 아까 그 남자였다. 그 남자는 브라운 경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줄리어스는 얼른 책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2.
“적이다!”
로비에서 외침이 들려 왔다. 순간 줄리어스는 대령을 쳐다보았다.
“클린스 중위, 여기서 지켜.”
대령은 고개를 돌리더니 줄리어스를 보았다.
“가자.”
대령과 줄리어스 그리고 스튜어트는 계단으로 뛰어갔다.
로비에는 여기저기 화살이 떨어져 있었다. 화살은 계속 날아왔다. 보초들이 몇 명 쓰러져 있었다. 다시 공기를 ‘쉬익’ 하고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윽’ 소리와 함께 보초를 서던 병사 하나가 쓰러졌다.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각 소대별로, 1 소대는 좌측으로, 2 소대는 우측으로. 3 소대는 지하로 가라.”
스티븐스 대령이 지시를 내리자, 존과 줄리어스는 자신들의 소대를 이끌고 도서관 정문으로 나갔다. 화살이 계속 날아왔다. 두 소대는 소대별로 재빨리 뭉쳐서 방패로 위와 앞면 그리고 측면을 에워쌌다. 날아오던 화살이 방패에 맞고 튕겨 나갔다. 주위가 조용해지더니 화살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보초들을 로비로 옮겨.”
대령의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2 소대가 부상자들을 로비 안으로 데려왔다. 스티븐스는 로비 안에서 밖에 있는 1 소대를 보았다.
“2 소대는 길 건너편 건물로 후퇴한다. 대형을 유지하면서 후퇴하라. 1 소대는 그 뒤에 후퇴한다.”
부대원들은 도서관 로비 뒤쪽 무너진 벽 틈 사이로 서서히 이동했다. 길 건너에 있는 큰 건물의 잔해 속으로 이동했다. 조용했다. 2 소대는 건물의 조금 안쪽으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1 소대가 따라 들어왔다.
저 멀리서 검은 형체들이 움직이더니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노려보기만 했다. 대령이 손짓으로 스티븐스와 애슬로우를 불렀다.
“이제 간다. 단 한 명의 부상자나 포로도 없다. 잘 알아들었지?”
두 중위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둘은 서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손에 칼과 방패를 든 군인들이 악을 쓰며 달려 나갔다.
도서관 로비에 도착한 존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달려갔다. 1 소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줄리어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래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줄리어스와 2 소대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1 소대가 다시 계단으로 올라왔다. 줄리어스를 바라보고 뛰어오고 있었다. 뒤에서 처음 보는 얼굴들이 손에 칼을 들고 뛰어 올라왔다. 존의 소대원들은 계단을 다 올라오자 로비 양옆으로 빠져나갔다. 줄리어스의 소대는 곧장 앞으로 뛰어들었다. 따라오던 적들에게 칼을 휘둘렀다. 칼에 베이고 찔린 그들은 쓰러졌다. 칼이 살을 찢는 소리, 신음 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난무했다. 자기편이 쓰러지는 것을 본 사람들은 다시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에서는 톰의 소대원들이 밀고 올라왔다. 방패를 앞세워 그대로 밀고 올라왔다. 우왕좌왕하던 적들은 뒷사람이 앞사람의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대로 죽어갔다.
날이 밝았다. 대령은 로비 가운데에 서 있었다. 대령의 앞에 존 스튜어트 중위가 누워 있다. 군인들에 둘러싸인 채로.
“존, 괜찮나?”
스튜어트 중위는 ‘끙’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가슴 아래에 붕대가 감겨 있다.
“그러니까 뭐 하러 그렇게 앞장서서 뛰어가냐? 하여간 무모하다니까.”
“줄리어스, 닥쳐.”
스티븐스 대령이 조용히 말했다.
도서관 앞 풀밭에는 22 구의 시체가 나란히 눕혀졌다. 누워있는 죽은 자들 앞에서 스티븐스 대령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
“누군지는 모르나 불행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명복을 빕니다.”
도서관 앞 공터에 작고 완만한 언덕 스물 두 개가 생겼다.
스티븐스 대령은 부하들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소대를 둘로 재편성한다. 즉시 실행하도록. 존과 톰이 각각 지휘한다. 존의 소대는 여기를 지키고, 톰의 소대는 로비의 저쪽 계단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확보한다. 한 시간마다 교대한다. 이상!”
빙글 돌아선 대령은 줄리어스에게 뭔가를 던졌다. 줄리어스는 얼른 받았다. 납작한 주머니. 동그란 물체와 인공 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