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이번 전투는 너무 쉬었어. 그냥 불만 질러 버렸다니까.”
“그래서? 그럼 거기 모두를 전부 죽인 거야? 여자와 어린애들도?”
“몰라. 도망갔겠지. 못 빠져나간 자들은 죽었을 거야.”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군인도 아니었다면서?”
로비 한쪽에 마련된 식탁에서 다들 떠들어댔다.
“조용히. 다들 식사나 해. 빨리 끝내고 할 일이 많다.”
톰 클린스 중위가 말했다.
“그렇지만, 소대장님.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이렇게 싸우지는 않았잖습니까?”
“.......”
“소대장님, 뭐라 말 좀 해보세요.”
식탁에 앉아 있던 클린스 중위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로비 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스티븐스 대령 쪽으로 걸어갔다.
“대령님, 왜 그런 짓을 했습니까?”
그에게서 화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 중위를 본 스티븐스 대령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클린스 중위 앞으로 다가갔다.
“이봐, 톰.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야. 우리는 맨해튼에서 여기로 건너왔지. 다시 거기로 돌아가고 싶나? 우리가 애써 획득한 것들을, 책상에 앉아서 편하게 지시나 내리는 장군들에게 고스란히 바치자고? 난 그렇게는 못 해. 이건 나의 작전이야. 여기서 얻어진 모든 것들은 나의 것이야. 난 이걸로.......”
톰 클린스 중위가 주먹을 날렸다. 대령의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대령의 몸이 붕 떴다가 로비 바닥에 떨어졌다.
“끙.”
대령은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입술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대령을 향해서 톰이 악을 썼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던 사람들을 전부.......”
톰은 칼을 꺼냈다. 무시무시한 눈으로 대령을 노려보면서 그에게 한발 한발 접근했다. 바닥에 앉은 스티븐스 대령이 왼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기계로 된 손이 나왔다. 대령은 손등의 버튼을 돌렸다. 네 손가락을 클린스 쪽으로 향한 다음, 엄지손가락을 손바닥으로 접었다. 손가락 네 개가 발사되었다. ‘슉’ 하고 날아든 네 개의 칼날은 클린스의 가슴팍에 꽂혔다. 중위는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갔다.
“중위님!”
소대원들이 클린스 중위에게 달려갔다. 그의 가슴에서 피가 ‘쿨럭쿨럭’ 쏟아져 나왔다.
“대령을 막아.”
클린스의 소대원들이 스티븐스 대령을 중심으로 원을 만들었다. 식사를 하고 있던 나머지 부대원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들 긴장한 표정들이다.
“제군들, 이게 무슨 짓인가? 나는 그대들의 대장이다.”
똑바로 일어선 스티븐스 대령은 자신의 상의 군복 앞을 확 잡아당겨 찢었다. 금속으로 여기저기 덧대어진 몸이 나왔다.
“나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질긴 목숨을 이어 왔다. 그 이유는 다시 인류 문명을 재건하고자 함이다. 제군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나?”
클린스 소대원들의 눈에 살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로비 바닥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던 돌 조각들을 집더니, 대령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대령의 가슴에서, 배에서 그리고 다리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스티븐스 대령은 도서관 로비 한 가운데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톰을 부축하고 있던 페터슨 상사가 클린스 중위를 천천히 로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제는 눈이 감겨진 그 얼굴을 뚫어질듯이 쳐다보았다. 톰이 아직도 손에 쥐고 있는 칼을 살며시 그의 손에서 빼냈다. 페터슨은 천천히 걸어오더니, 몸을 앞으로 숙인 채 버티고 있는, 몸 여기저기서 아직도 스파크가 튀고 있는 대령의 어깨를 발로 밀었다. 대령은 힘없이 뒤로 쓰러졌다.
상사는 스티븐스 대령의 옆에 무릎을 꿇더니 대령의 인공 심장을 향해 톰의 칼을 내리 찔렀다. 순간 대령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크레이그는 대령의 부릅뜬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칼을 잡아 뺐다.
“으악!”
마이클 스티븐스 대령의 끔찍한 비명 소리와 더불어 크레이그 페터슨 상사의 얼굴에 피와 기름이 ‘팍’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