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줄리어스는 눈을 떴다. 왼쪽 어깨를 보았다. 피가 흐르고 있다. 어깨에 힘을 주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토머스와 스탠이 수건을 들고 있었다. 피투성이였다.
“미스터 잽스, 미스터 로저스, 두 분은 문을 지켜 주세요.”
줄리어스는 총에 맞은 왼쪽 어깨를 감싸 쥔 채 일어섰다. 그대로 2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걸었다.
“미스터 테슬라, 이쪽으로.”
그는 계단 앞에서 테슬라를 불렀다. 테슬라가 계단으로 걸어왔다.
“애슬로우 중위, 대단한데. 여기까지 오다니.”
계단 앞에서 줄리어스는 돌아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의 눈에 존 스튜어트 중위가 보였다.
“존, 이것이....... 이것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지?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줄리어스, 시간이 별로 없다. 그대로 올라가라.”
존은 장총으로 줄리어스를 겨눴다. 총구로 계단 위를 가리켰다. 줄리어스는 테슬라와 함께 2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존이 따라 갔다.
뒤에서 도서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토미, 우리 여기서 그냥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건가? 난 저 남자가 맘에 걸리는걸.”
스탠 로저스가 작게 속삭였다.
2 층으로 올라 온 줄리어스와 테슬라 그리고 존은 테라스로 나가는 문 앞에 섰다. 문은 잠겨 있었다.
'쾅!'
'우지끈!'
존이 발로 문을 차 버렸다.
“이쪽으로.”
존 스튜어트 중위가 고개를 돌려 줄리어스 애슬로우 중위를 보며 말했다. 줄리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왼손은 아래로 쳐졌다.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줄리어스는 곧장 테라스로 나갔다. 옆을 보았다. 존이 자신의 왼쪽 어깨를 만졌다. 아지랑이가 일면서 머신이 나타났다. 줄리어스도 어깨를 만졌다. 존의 머신 옆에 그가 타고 온 머신도 모습을 드러냈다.
“너, 저걸 타고 온 거야?”
존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젠장 맞을. 그래. 좋아.”
“줄리어스, 임무를 끝내야지.”
존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줄리어스는 존을 보았다. 그리고 두 대의 머신을 보았다. 존은 왼쪽 어깨의 피부를 찢었다. 동그란 물체를 살 속에서 끄집어내더니 줄리어스에게 던졌다. 줄리어스는 머신 쪽으로 걸어가더니 2층 테라스의 문 쪽에 더 가깝게 있는 머신 앞에 섰다. 줄리어스는 닉(Nik)의 손에 동그란 물체를 쥐어주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경찰들이 금방 들어올 거예요. 자 타세요.”
존이 타고 온 머신 앞에 선 테슬라는 높이가 3 미터 정도 되는 검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상자의 윗면은 키가 대략 190 센티미터 정도 되는 테슬라보다 상당히 높았다. 테슬라는 줄리어스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는 미래에서 왔으니 내 사망 날짜를 알고 있겠지?”
“.......”
“말해줄 수 있나?”
줄리어스는 망설였다.
“내 친구들은 전부 여기, 이 세상에 있다네. 살았거나 죽었거나. 나 역시 여기 묻히고 싶어.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지?”
줄리어스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줄리어스는 씹어 뱉듯이 말을 했다.
“내년 1 월 7 일입니다.”
“그래. 고마워. 많이 남지는 않았군. 자, 그럼 이제 가볼까?”
테슬라가 머신의 옆면에 손을 대자 사다리와 발판이 나왔다. 그는 손잡이를 잡고 머신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머신의 지붕에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테슬라는 줄리어스를 내려다보았다.
“자네도 올라 와.”
줄리어스는 고개를 저었다.
“문을 닫으세요. 그리고 의자에 앉은 다음 출발 버튼을 누르세요. 그러면 머신이 알아서 데려다 줄 겁니다.”
“시간이 없네, 줄리어스. 빨리 올라 와.”
테슬라의 재촉에 줄리어스는 힘없이 말을 했다.
“타임머신은 일인용입니다.”
“....... 그런가?”
테슬라는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머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머신 안으로 사라졌다.
'웅! 웅! 웅!'
타임머신이 괴물처럼, 이제 입에서 막 불을 뿜어내려는 용처럼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줄리어스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옆을 보니 존도 떨고 있었다. 머신은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점점 투명해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렇게 니콜라 테슬라는 떠났다.
줄리어스와 존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머신은 한 대가 남아 있다. 줄리어스와 존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서히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난 처음에 대령이 빈 머신을 다시 보낸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었지.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대령은 머신을 보낼 생각이 없었어.”
“글쎄?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 작전을 위해서 대령은 나를 보낸 거야.”
존은 총을 버리고 칼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총알도 안 남았거든. 이제 하나 남은 머신을 누가 타고 갈지 결정할 시간이다.”
“.......”
존은 천천히 다가왔다.
줄리어스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존은 한 발 더 다가왔다.
존은 칼을 쳐들고 덤볐다. 줄리어스는 몸을 숙였다. 존은 줄리어스의 몸에 부딪쳤다. 줄리어스는 그 힘에 밀려 그대로 쓰러졌다. 왼쪽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존은 쓰러진 줄리어스의 위에 올라탔다. 줄리어스는 눈을 감았다. 존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칼을 높이 쳐들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퍽!’
줄리어스는 눈을 떴다. 오른손의 칼을 높이 들고 있던 존이 옆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그리고 그 뒤로 1942 년의 뉴욕에 처음 도착하던 날, 줄리어스를 위하여 도서관 문을 열어 주었던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스탠 로저스는 눈 치우는 삽을 든 채였다. 줄리어스는 몸을 일으켰다. 쓰러진 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존의 칼을 차 버렸다. 그 다음 존의 몸을 오른손으로 끌어 당겼다. 그를 바로 눕히고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존 스튜어트 중위의 눈동자가 풀려 있었다. 테라스 너머에서 ‘우지끈’ 하면서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존, 정신 차려, 존!”
줄리어스는 존을 흔들었다. 존은 ‘음’ 하면서 깨어났다.
“존! 나는 여기 남을 거야. 동료들한테 내가 행복할 거라고 전해 줘. 알았지? 행복할 거라고 꼭 전해야 돼.”
존의 눈동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갔다. 줄리어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존은 말했다.
“뭐라고?”
“난 여기 남을 거라니까!”
존은 눈을 끔벅끔벅했다. 줄리어스는 존의 귀에 입을 댔다.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 여자가 생겼어.”
존은 ‘피식’ 웃었다. 그는 상체를 일으킨 다음, 손을 뻗어 줄리어스의 왼쪽 어깨를 잡았다. 줄리어스는 움찔했다. 존은 줄리어스의 어깨에 흐르는 피를 쓸어 내렸다. 그 다음 줄리어스의 왼쪽 어깨에서 삐져나와 있는 물체를 당겼다. 인공 피부가 찢어졌다.
“이건 유품으로 내가 가져가지.”
존은 줄리어스의 머신에 그의 어깨에서 빼낸 동그란 물체를 댔다. 그리고 존 스튜어트 중위는 떠났다.
테라스 문이 벌컥 열렸다. 경찰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토머스 잽스와 스탠 로저스는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줄리어스는 테라스 바닥에 앉아 있었다.
“다들 꼼짝 마!”
경관들이 줄리어스 애슬로우를 둘러쌌다. 다들 손에 총을 들고. 줄리어스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거, 하나만 물읍시다. 낸시 브라운 경관은 안 왔소?”
87.
도서관 로비에 스티븐스 대령과 클린스 중위가 나란히 눕혀졌다. 그 옆에 페터슨 상사가 앉았다. 아무도 말이 없다. 로비에 누워 있는 스티븐스 대령의 몸, 절반은 인간이고 절반은 기계로 이루어진 몸에서는 심장 박동도 없었고 전기 신호도 나오지 않았다.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톰 클린스 중위에게서도 생명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로비 여기저기에 앉아 있는 부대원들의 얼굴은 다들 흙빛이었다. 모두들 비통한 표정들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요? 상사님.”
스타인 병장이 크레이그 페터슨 상사에게 물었다.
“휴, 나도 모르겠다. 소대장 말대로 저지르기는 했는데.......”
“이제 맨해튼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홀러스 상병이 말했다.
“이제 누가 지휘하지? 페터슨 상사님이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미치 일병이 말하자, 바로 옆에 있던 하퍼 일병도 끼어들었다.
“돌아갔다가, 우리가 대령을 죽인 걸 알게 되면…….”
미치의 얼굴빛이 변했다.
“아마 교수형을 면치 못할 걸.”
하늘 높이 떠 있던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더니 그대로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밤이 찾아왔다. 세인트 조지 도서관 센터의 로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젊은 군인들은 계속 그렇게 앉아 있었다.
몇 명이 고개를 숙이더니 슬슬 졸기 시작했다. 또 다른 몇몇은 하품을 하다가, 일어나서 로비를 걸었다.
도서관 로비 한쪽이 밝아지면서 희미한 빛이 생겼다. 크레이그 페터슨 상사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희미한 빛 쪽으로 다가갔다. 주위의 병사들이 모두 멈춰서 상사를 지켜보았다. 희미한 빛은 점점 밝아지더니, 공간 전체가 번쩍였다.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검은 상자가 나타났다.
모든 군인들이 놀란 표정으로 커다란 검은 상자를 보았다. 그런데 검은 상자 옆에서 다시 희미한 빛이 생겨났다. 그러더니 두 번째 밝은 빛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