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집콕' 특수?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탄생한 '특수'라는 말

by 윤경민

특수

코로나 19의 습격 이후 전 세계 경제가 긴 불황의 터널 속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되레 호황을 누리는 업종도 있다고 한다.

마스크 제조업체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또 밀접 접촉을 피하다 보니 이른바 ‘언택트’ ‘비대면’ 문화가 정착하고

이로 인해 관련 산업은 코로나 19 사태 이전보다 더 잘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온라인 쇼핑과 온라인 교육산업이 꼽힌다.


코로나 ‘집콕’ 특수에 4월 온라인 쇼핑 12.5% 증가 (2020.6.3 조선비즈)


코로나 19로 편의점 배달 ‘특수’(2020.6.3 뉴스1)


한우ᆞ돼지고기ᆞ제철 농산물 ‘재난지원금’ 특수 (2020.6.3 식품저널)


심지어 편의점도 배달 서비스에 뛰어들었는가 하면

재난지원금 덕분에 그동안 안 팔렸던 고기도 특수를 누린다는 것이다.

하긴 필자 가족도 최근 재난지원금을 활용한 외식이 잦아졌다.

오랜만에 고기로 목구멍 때를 벗기러 아이들과 동네 고깃집에 갔을 때

아내가 아쉬운 표정으로 던진 말에 배꼽을 잡기도 했다.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재난지원금 카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특수… 특수란 무엇인가.


특수(特需). 특별수요(特別需要)의 줄임말이다.

특별한 수요란 뜻이다.

올림픽 특수, 방학특수, 입학 시즌 특수 등으로 파생된다.

특별한 이벤트로 인해 수요가 급증함으로써 물건이 잘 팔리고 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특수의 규모에 따라 한 국가가 벌떡 설 수도 있다. 실제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이 특수란 말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6.25 전쟁 당시 일본에서 탄생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은 일본에서 특수, 특별수요를 만들어냈다.

당시 6.25 전쟁에 참가했던 미군과 유엔군에게 공급할 무기와 의복, 식재료 등 각종 군수물자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를 공급할 곳은 가까운 일본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제조 능력과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25 전쟁 3년간 미군은 일본 기업들에게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일본 업체들은 불철주야 생산해냈다. 패전으로 경제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던 일본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이를 ‘조선 특수’ (朝鮮特需)라고 불렀다. 일본은 6.25 를 조선전쟁이라 부른다.

막대한 달러가 일본 열도에 들어오면서 돈이 돌기 시작했다. 경제는 활황으로 불타올랐다.



직접 발주에 의한 특수 외에 간접 특수도 있었다.

6.25 전쟁 발발 직후 요코하마에는 미군의 재일 병참사령부가 설치됐다.

주로 간접조달 방식으로 대량의 물자를 사들였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의 특수 규모는 1950년에서 1952년까지 3년간 10억 달러나 됐다.

지금 우리 돈으로 무려 1조 2천억 원을 넘으니 당시 화폐가치로 따지면 그야말로 천문학적 금액이다.

1950년부터 1955년까지 간접 특수로 인한 경제효과는 36억 달러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일본은 이 ‘조선 특수’를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에 패해 폭망하고도 20여 년 만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바로 6.25 특수 효과를 톡톡히 누린 덕분이었던 것이다.

조선 특수 시대의 긴자 거리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본 경제성장의 원동력 역할을 했다니, 씁쓸할 뿐이다.

‘특수’라는 말. 일본이 만들어낸 특별수요의 특수,

더구나 비극의 역사 6.25와 연관된 ‘특수’라는 말을 남용하지 말아야겠다.

대신 ‘경제효과’가 어떨까? 코로나 경제효과, 올림픽 경제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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