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6.25 전쟁에 참가했던 미군과 유엔군에게 공급할 무기와 의복, 식재료 등 각종 군수물자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를 공급할 곳은 가까운 일본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제조 능력과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25 전쟁 3년간 미군은 일본 기업들에게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일본 업체들은 불철주야 생산해냈다. 패전으로 경제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던 일본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이를 ‘조선 특수’(朝鮮特需)라고 불렀다. 일본은 6.25 를 조선전쟁이라 부른다.
막대한 달러가 일본 열도에 들어오면서 돈이 돌기 시작했다. 경제는 활황으로 불타올랐다.
직접 발주에 의한 특수 외에 간접 특수도 있었다.
6.25 전쟁 발발 직후 요코하마에는 미군의 재일 병참사령부가 설치됐다.
주로 간접조달 방식으로 대량의 물자를 사들였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의 특수 규모는 1950년에서 1952년까지 3년간 10억 달러나 됐다.
지금 우리 돈으로 무려 1조 2천억 원을 넘으니 당시 화폐가치로 따지면 그야말로 천문학적 금액이다.
1950년부터 1955년까지 간접 특수로 인한 경제효과는 36억 달러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일본은 이 ‘조선 특수’를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에 패해 폭망하고도 20여 년 만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바로 6.25 특수 효과를 톡톡히 누린 덕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