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by 윤경민

궂은비 내리는 날 ~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가수 최백호의 대표곡 '낭만에 대하여'가 요즘 다시 뜨고 있다.

미스터 트롯의 김호중 신드롬이다.

낭만은 로맨스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의 그 로맨스.

로맨스 (ROMANCE), 연애, 사랑의 감정, 설레는 마음이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사실 낭만은 일본의 유명 소설가이자 영문학자인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 1867~1916 )가 영어 로맨스를 번역한 말이다. 영국 유학 시절 로맨스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하던 나쓰메 소세키는 浪漫으로 결론지었다.

ROMANCE는 영국식 발음으로 로만스. 이 발음에 어울리는 한자를 찾으려 고민하다가 浪漫(로망)이라고 붙인 것.

浪 (물결 랑) 漫 (흩어질 만)

ROMANCE와 딱히 연관된 뜻을 가진 한자가 아니지만 발음이 그와 비슷해 마음대로 갖다 붙인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처럼 영어를 일본식 한자를 활용해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 일본의 글쟁이들은 서양 책을 번역할 때 한자를 사용해 새로운 낱말을 만들었다. 모리 오가이 (森鴎外) 후쿠자와 유키치 (福沢諭吉)도 마찬가지였다.

나쓰메 소세키가 지은 浪漫을 우리는 우리식 발음으로 낭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만일 당시 조선 또는 대한제국의 글쟁이가 영국 유학을 갔더라면 ROMANCE를 뭐라고 번역했을까? 과연 낭만이라고 번역했을까?

사실 우리가 쓰는 말의 태반이 서구 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의 글쟁이들이 한자를 활용해 번역한 것들이다. 우리는 그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고 있는 것이고.

학교, 병원, 국회의사당, 대통령, 회사, 정부, 신문, 증권, 경제, 비행기, 지하철, 교향곡…

끝이 없다.

그렇다고 이 모든 걸 다시 순우리말로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핸드폰 대신 손전화, 헤딩 대신 머리박기, 패스 대신 연락.

이와 같이 북한은 영어를 순우리말로 만들어 쓰지만 일본이 한자로 번역한 낱말들까지 고쳐 쓰지는 않는다.

이런 것들까지 일제의 잔재라고 하는 건 무리일 게다.

어차피 일본에 한자를 전수해준 건 4세기 백제 왕인 박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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