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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공사의 아무 말 대잔치

by 윤경민

정부와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아무 말 대잔치가 도를 넘었다.

기관명, 정책과 사업 제목까지 영어 천지다.

다음은 농어촌 공사가 2020년 6월 24일 배포한 보도자료.


농어촌공사, 포스트 코로나 시대 농촌 활성화 방안 모색


◦지역개발 전문조직인‘KRC지역개발센터’ 토론회 갖고 농어촌 발전방향 모색

◦농어촌 지속성장을 위한 공간 활용인 ‘K-Farm’ 사업 구체화를 위한 종합 토론

□ 한국농어촌공사(사장 김인식)는 24일 나주 본사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농촌마을을 활성화를 위한 「KRC지역개발센터 토론회」를 개최했다.

□ 공사 지역개발 전문조직으로 본격 운영 중인 전국 KRC지역개발센터 담당자가 참석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각 지역개발센터 현장 현안 관련 사례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 토론회는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발표자를 비롯한 최소 인원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그 외 담당 직원들은 공사 영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해 의견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 특히,‘그린어메니티 활용 K-Farm 사업(안)’에 대한 정부 정책 제안에 앞서 사업 구체화를 위한 종합토론이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으로 높은 관심을 모았다.

‘K-Farm’은 도시와 인접한 경관이 우수한 지역에 임대 농원, 체류 농원, 체험농원, 휴먼케어센터를 복합적으로 배치해 국민 힐링공간 종합 플랫폼을 조성하는 사업모델로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농어촌 지속성장을 위한 농어촌 공간 활용이라는 점에서 적합성에 주목하고 있다.

❍ 가장 큰 장점은 도시민 누구에게나 농촌지역에서 체험, 휴식, 힐링, 케어 활동을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농업인에게는 새로운 일자리와 소득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도시에서의 문제점을 농촌에서 해결한다는 장점으로 도농 상생에 새로운 지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영어 표현이 한 문장에 2~3개씩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천천히 들여다보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 : 요즘 많은 미디어들이 앞다퉈 포스트 코로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 감염 사태.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경제, 소비행태,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온 점, 이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삶의 방식이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등장한 용어다. 이걸 굳이 포스트 코로나라고 할 필요 있나. 그냥 코로나 이후 시대라고 하면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을 말이다.


KRC: 이건 도대체 뭔가? 문맥상 아마 한국농어촌공사의 영문 앞 글자인 듯하다. 뭐의 약자인지는 모르겠다. K는 Korea로 추정될 뿐 RC는 대체 뭐란 말인가. 농어촌공사를 영어로 뭐라고 하나, 쓸데없이 영어 실력 테스트를 하는 건가? 한국농어촌공사라는 좋은 이름을 놔두고 굳이 알아듣기 어려운 KRC라는 영어 약자를 쓰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한국통신은 KT, 한국담배인삼공사는 KT&G, 심지어 수자원공사는 K-Water로 회사 이름을 바꾸더니 한국농어촌공사도 KRC로 바꾸겠다는 건가?


‘K-Farm’ 사업 : 코로나 19 사태를 비교적 잘 극복하고 관리한 점을 많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았다고 K방역이란 말을 만들어내더니 이제 농장까지 K팜이라고 하는 건가? 영어를 쓰면 좀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가? 한국형 농장사업이라고 하면 얼마나 알아듣기 쉽단 말인가. 이 보도자료가 외국 언론에 배포하는 것도 아니고 이 사업을 외국에서 할 것도 아니면서 무슨 이유로 K-Farm 사업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알 수가 없다. 왜 사업은 business라고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그린어메니티 ; 점입가경이다. 이 영어 단어 아는 사람 얼마나 될까? 필자는 처음 듣는 말이라 영어 사전을 찾아봤다. 일단 어메니티부터 검색해봤다.


amen·ity

주로 복수로 (pl. -ies)
생활 편의 시설

Many of the houses lacked even basic amenities.

많은 집들이 기본적인 생활 편의 시설도 안 되어 있었다.


필자의 영어실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그렇겠지만 역시 처음 접하는 단어였다. 그래도 20대 때 영국에서 2년 살았고 영어로 외국인과 그럭저럭 소통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필자가 처음 보는 단어인데, 이걸 그대로 써도 되는 걸까?

기사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아래의 기사를 발견했다.


[그린 어메니티]왜 ‘그린 어메니티’ 인가

...이제 농촌 개발논리가 바뀌어야 한다. 농촌도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 유럽과 일본은 ‘농촌을 떠났던 사람들과 도시의 자본을 다시 역류시키는 방법’으로 농촌을 되살리고 있다. 그린투어(농산어촌 체험여행)와 그린어메니티(녹색 향토자원 개발을 통한 농촌혁신운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린투어로 성공한 농촌이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501251747111#csidxb94c32ecb8288aa9b926bf86afca2d5


괄호 안에 녹색 향토자원 개발을 통한 농촌혁신운동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놓았다. 이 얘기는 생소한 표현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굳이 이 어려운 영어를 쓸 필요가 있을까? 그냥 농촌 생활편의 향상 운동 정도로 쓰면 안 되는 건가? 풀어서 쓰면 초등학생도 알아듣기 쉬울 텐데 말이다.


휴먼케어센터 : 이건 또 뭔가? 돌봄 센터나 건강관리센터 정도면 어떨까?


국민 힐링공간 종합 플랫폼 힐링케어활동 : 힐링은 치유라는 좋은 우리말로 대체하면 좋겠다. 케어는 돌봄이라는 말이 딱이다.


원스톱 서비스 : 이 표현은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표현이라 거부감이 사실 없다. 그래도 일괄서비스도 나쁘진 않겠다.


오늘 무작위로 골라본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불필요한 영어가 많이 등장했으니 목적을 갖고 찾아보면 훨씬 더 황당한 것들이 더 나올 게 틀림없다. 정부 부처와 공기업,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공공기관이 소중한 우리말을 지키지는 못할 망정 앞장서서 망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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