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BTS가 탄생하지 않는 이유
BTS의 신곡 '다이너마이트'가 제목처럼 폭발했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등극해 화제다. 아시아 가수로서는 57년 전인 1963년 6월 15일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이후 두 번째다. 일본 가수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 점령은 그때가 최초이자 최후였다. 둘 다 미국 팝스타들의 아성인 빌보드를 깜짝 점령한 아시아의 샛별이지만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먼저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는 단번에 싱글차트 1위에 오르지 못했다.
일본에서 발매된 것은 1961년, 빌보드에 진입한 건 2년 후인 1963년이었다. 1963년 5월 11일 Hot 100 79위에 진입한 후 45위, 20위, 10위, 2위를 거쳐 3주 연속 1위 왕좌에 올랐다. 반면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 데는 단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 8월 21일 발매하자마자 같은 달 31일 핫 100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발매 첫 주에 1위에 오른 곡은 다이너마이트를 포함한 역대 핫 100 1위 곡 1109곡 가운데 43곡뿐이라고 한다.
'스키야기'가 당시 3주 연속 1위 자리를 지킨 기록을 깰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다.
둘째, 사카모토 큐의 노래 중 빌보트에 진입한 건 '스키야키가 유일하지만 BTS의 곡 가운데는 핫 100 4위를 차지했던 '온(ON)'과 8위에 올랐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10위를 기록했던 '페이크 러브'가 있다.
이것 말고도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정상 자리에는 무려 4차례나 올랐다.
셋째,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는 얻어걸린 측면이 크다.
음반이 일본 시장에 나온 건 1961년 여름, 이듬해인 1962년 도쿄를 방문한 영국 음반회사 사장에게 우연히 눈에 띄고 그는 이 음반을 트럼펫 연주자 케니 볼이 이끄튼 재즈밴드에 선물한다. 이것이 계기로 작용했다.
재미난 것은 '스키야키'는 원래 곡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래는 「上を向いて歩こう」'위를 보고 걷자'였다.
그런데 영국 레코드사 사장이 발음도 어렵고 의미도 전달되지 않는다며 자신이 일본에 와서 먹어본 음식 중 마음에 드는 음식이 '스키야키'라며 그걸로 제목을 바꾸자고 한 데서 곡명이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에서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라디오 DJ들이 방송에서 이 노래를 틀기 시작하면서 '스키야키'는 빌보드 차트로 가는 계단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는 철저히 미국 음악시장을 겨냥해 기획된 상품이다. BTS 노래 가운데 처음으로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썼다. 곡도 다양한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디스코 팝을 택했다. 작사 작곡 모두 미국인 전문가에게 맡겼다. 지금까지 발표했던 BTS의 노래는 대부분 한국어에 영어를 살짝 끼워 넣는 스타일이었다.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의 팬들은 한국어 가사를 외치며 흥겹게 춤을 추었다. 그런데 이번엔 계획적으로 전면 영어 가사로 곡을 만들었고 세계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넷째, 57년 전엔 음반과 라디오가 주력 매체였지만 지금은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튜브가 대세다.
인터넷이라는 도화선을 타고 BTS의 다이너마이트는 순식간에 전 세계 곳곳에 도달해 폭발하며 노랫말처럼 밤새 빛을 터뜨리고 있다. 듣는 음악이 아닌 보는 음악이란 점도 다르다. 사카모토에게 없는 화려하고 경쾌한 댄스가 BTS에게는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사카모토 큐에게는 없었지만 BTS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아미가 전 세계에 포진해있다.
다섯째, 한국에는 BTS 이전 미국 빌보드 차트를 포함해 전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렸던 싱어들이 있었던 반면 일본인 싱어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싸이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중독성이 매우 강한 말춤과 이른바 B급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7주간 핫 100 2위를 누렸다. 그 뮤직비디오의 누적 조회수는 37억 회에 달한다. 싸이는 강남스타일 외에도 젠틀맨(5위), 행오버(26위), 대디(97위) 등으로 빌보드 차트에서 꾸준히 사랑받았다. 한국 아티스트로서 빌보드 차트 등극에 스타트라인을 끊었던 건 2009년 원더걸스였다. "노바디 노바디 벗츄" (그 무렵 필자가 ARF 취재를 위해 태국에 갔을 때 음식점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와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한국 팝아티스트들의 빌보드 공략의 역사는 벌써 10년을 넘은 것이다.
닮은 점은 뭘까?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하는 BTS.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사회의 대중음악의 톱스타로 자리 잡은 BTS는 아시아인, 한국인에 대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 세계인에게 한국인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고 활력 넘치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스키야키'도 그랬다. 당시 이 노래는 미국인들의 일본인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꿔놓는 데 기여했다. 2차 대전에서 싸웠던 적국, 그러나 패전 후 고분고분 말 잘 듣는 한편 고도 경제성장 가도를 달리며 일하는 동물이라고 불렀던 일본인들이 사실은 미국인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을 가졌고 그런 섬세한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후 이 노래는 스페인어 등 여러 외국어로 번안되어 커버곡으로 불리어왔다.
앞으로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가 1위 자리를 얼마나 지켜낼 것인지, 얼마나 많은 가수의 커버송으로 불릴지 관심이다.
일본의 대중문화가 제2의 사카모토 큐, 제2의 '스키야키'를 탄생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 속에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진취적 기상을 함께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1억 2천5백만 인구의 시장에 안주하면서 도전정신을 상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를 제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본의 예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