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대화의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
한때 중병설, 심지어 사망설까지 나돌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잇단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본 수해지역을 돌아다니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가 연출되는 모습은 국정원이 밝힌 권력 일부 위임설에도 불구하고 그의 권력에 어떠한 변화도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현재 세 가지 악재에 고난의 행군 시기 이상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19 사태가 그 첫 번째다. 의료체계가 취약한 북한으로서는 감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경우 체제 자체에 미칠 충격파 큰 만큼 초기부터 국경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중국과의 국경에 특수 부대까지 배치했다는 건 북한이 얼마나 코로나 19의 유입을 두려워하는지 잘 보여준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은 중국과의 국경 인근에 배치된 특수부대원들에게는 국경을 넘어 북한에 들어오는 이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감영병 통제 불능은 북한 사회를 파괴시키고 이는 곧 민심 악화로 이어지며 정권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바비와 마이삭, 하이선 등 잇단 태풍의 강타로 인한 대규모 수해다. 주택과 도로 등 상대적으로 자연재해에 취약한 인프라를 갖춘 북한은 최근 거듭된 태풍으로 인해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다. 보다 못한 러시아가 밀 25,000톤을 긴급 지원하고 나섰을 정도다. 세 번째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경제난이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는 물론 유엔의 제재가 흔들림 없이 북한의 목을 죄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코로나 19로 북한 스스로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의 국경을 사실상 폐쇄하면서 경제난은 더욱 혹독해지고 있다. 중국산 수입이 85%나 급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자 밀무역이 성행했고 급기야 북한 당국이 특수부대를 보내 밀수를 막고 나서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때 북한 경제에 심폐소생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북미 정상회담은 지나가버린 시골 마을 버스가 되어버렸다. 미국과의 담판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제재를 풀 길은 요원해졌다. 11월 미국 대선까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선 결과에 따라 다시 북미 협상의 물꼬가 트일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불확실하다.
북한으로선 수해복구와 코로나 방역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경제난을 버텨내야 하는 삼중고에 휩싸여 있다. 이처럼 엄중한 위기 상황은 김정은 유일권력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코로나 사태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들 한다. 냉전 이후 30년간 구가했던 세계화의 해는 저물고 내셔널리즘, 각자도생 시대의 해가 떠오른다고 한다. 폐쇄국가 북한으로서는 타격이 뭐 그리 더 이상 크지 않겠지만 개혁 개방으로 가는 길이 닫혀버리는 비운의 시대를 맞게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한반도를 둘러싼 경기자들의 면면을 볼 때 스트롱맨의 시대 또한 저물어가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최장 총리라는 기록을 세운 채 지병을 이유로 물러났다. 이번 역시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질환을 이유로 스스로 직을 내려놓은 것이지만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했고 코로나 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그를 괴롭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기이한 언행과 더불어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사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함으로써 정권을 내줄 위기에 몰려 있다. 유일무이의 권력자 김정은 위원장 또한 영원히 권좌에 머무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국경을 걸어 잠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복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했을 뿐 아니라 처형된 고모부의 시신을 당 간부들에게 보여주는 공포정치의 약발이 영원할 수 없다.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만으로는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걸 그도 모를 리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꾸어놓은, 그리고 앞으로 변형시킬 글로벌 정치 지형 속에서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국으로부터의 식량 지원, 코로나 방역 지원을 받고 경제난에 숨통을 트게 해야 민심을 다독이고 권좌의 불안정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와의 전쟁을 벌이는 이때 북한은 자연스레 손을 내밀 수 있다. 대화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