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사과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부싸움도 "여보 미안해" 한 마디면 될 것을 그 사과 한 마디 아끼려다 큰 싸움이 된다.
심지어 부부 해체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사과는 대화의 기술이다. 또한 사과에도 법칙이 있다. 기술이 필요하다.
사과의 다섯 가지 기술을 살펴보자.
1. 사과는 신속히 해야 한다.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추미애 법무장관은 뒤늦게 사과했다.
"아들 문제로 걱정을 끼쳐드려 국민에게 정말 송구하다"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소설 쓰시네"와 같이 의혹 제기를 무시한 채 극구 부인으로 일관해온 추 장관의 사과는 너무 늦었다.
깨끗이 인정하고 납작 엎드려 사과했더라면 지금처럼 먼지 털리듯 털렸을까?
반면 윤영찬 의원의 사과는 신속했다.
그의 사과는 "카카오 들어오라고 하세요" 문자가 공개된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비록 보좌진과의 대화라 해도 엄밀한 자세와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다"며 "질책을 달게 받겠다"라고 했다. 발 빠르게 그리고 깨끗이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한 것이다.
윤 의원의 문자 파문은 이틀 이상 가지 않았다.
2. 사과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
성추행 사건으로 스스로 물러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과오를 밝히고 사과했다.
그런데 쓸데없는 한마디 말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게 됐다.
"이것이 해서는 안 될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이는 은연중에 자신은 가볍게 한 것이었다는 의미를 강조한 표현으로,
별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인정될 수도 있다는 뉘앙스여서 비난을 자초했다.
바람직한 사과 방법이 아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여당을 중심으로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썼다가 뭇매를 맞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 진정성 없는 사과는 안 하니만 못하다.
3. 사과는 대상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뉴질랜드 외교관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질질 끌던 강경화 외교장관은 끝내 사과하고 말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피해자나 뉴질랜드 정부에 대한 사과는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왜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4. 사과는 말로만 말고 행동으로 해야 한다.
사과는 받아야 할 사람을 특정해 진심 어린 말로 신속하게 해야 한다.
행동이 뒤따르면 사과는 빛이 난다. 그리고 감동과 신뢰를 준다.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이 교과서적인 예이다.
1982년 누군가 타이레놀에 독극물을 주사기로 넣는 바람에 7명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다.
테러범에 의한 사건이었지만 제조사인 존슨앤존슨은
즉각 시중에 풀린 모든 타이레놀을 회수해 폐기 처분했다.
나아가 스스로 광고를 내 위험성을 알렸다.
이후 독극물을 넣기 어렵고 어린이들이 쉽게 개봉하기 어려운 포장법을 개발해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회수 비용과 광고료 등 거액의 손실을 봤지만 더 큰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5. 한 번 한 사과는 뒤집지 말라.
"일본군 위안부 모집 이송에 일본군이 관여했고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음을 인정"하면서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 1993년 고노담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라고 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
해마다 8월 15일이면 일본 천황은 유사한 사과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아베 전 총리는 "군이나 관에 의한 강제 연행 증거가 없다"며 뒤집기를 시도했다.
많은 우익 정치인들이 사과를 뒤집는다. 그러면서 한국은 왜 자꾸 사과하라고 하느냐고 불만이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다. 뒤집으면 안 하니만 못하다.
스가 신임 총리는 뒤집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