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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스가 총리가 화답할 때

by 윤경민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 욘사마(배용준) 열풍이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궜던 2004년.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일본인이 56%나 됐다. 사상 최고치였다.

노무현 정권과 고이즈미 정권이 독도 영유권과 과거사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2005년에도 일본인의 절반 이상(51%)은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일본 내각부의 조사 결과)

겨울연가,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한류드라마의 힘이 컸다.

그 당시 TV를 틀면 어느 채널인가에서는 반드시 한국 드라마가 방영될 만큼 한류는 일본인들의 필수 대중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초기에는 중년 여성이 주요 팬이었다.

욘사마가 도쿄에 도착하는 날 나리타공항에 수천 명의 아줌마 부대가 진을 치고 있던 풍경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영애 주연의 드라마 대장금은 한류팬을 남성으로 넓혀갔다.

일본인 한류팬들은 겨울연가 촬영지인 춘천과 남이섬을 찾기 시작했다.

서울 명동은 일본인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대중문화, 소프트파워는 그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일본인은 10%대로 주저앉았다.

한국인이 싫다(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일본인이 되레 절반을 넘었다.(56%)

마찬가지로 일본인이 싫다는 한국인도 64%나 된다.

호감을 갖고 있다는 한국인은 15%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이처럼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놓인 것은

오랜 기간 정치 외교 갈등을 방치한 결과다.


아베 정권은 우향우를 계속하면서 한국을 자극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가 하면 고노담화, 무라야마 담화 무력화를 시도했다. 우익은 헤이트 스피치, 혐한시위로 장단을 맞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왕의 사죄를 요구해 일본국민들을 자극했다. 악순환이 거듭되며 반일감정과 혐한감정이 에스컬레이트되었다.

한일 초계기 레이더 조준 논란은 군사적 긴장마저 고조시켰다. 이윽고 경제전쟁의 막이 올랐다.

아베 정권은 한국 사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빌미로 수출규제란 경제보복을 감행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GSOMIA·지소미아) 폐기로 맞섰다. 대한해협엔 전운이 감돌았다.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되며 위기는 극에 달했다.


갈등을 부추겨온 아베 총리는 물러났다.

하지만 그를 그림자처럼 보좌했던 스가 관방장관이 후계자가 되었으니 별로 달라질 게 없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놔두었다간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빨려들어간다.

으르렁거리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코로나 19 직격탄을 맞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한일관계는 회복해야 한다.

돌파구 마련을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일본 지도자가 교체된 지금이 적기다.

때마침 일본에선 한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겨울연가와 대장금에 버금가는 '사이코지만 괜찮아''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열풍이다.

방탄소년단의 오리온 차트 석권 등 Kpop의 열기도 여전하다.

최근 번역 출판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공감을 사고 있다.

필자의 지인 중에 동방신기와 K팝 아이돌의 광팬인 한 일본인 모녀는 입국 제한 조치가 풀리기만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갈등을 하루아침에 해소할 수는 없다.

어려운 것은 뒤로 미루고 무난한 것부터 풀려는 슬기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와 안보, 복잡하게 얽히고설켰지만 우선 마주 앉아 이야기해보자.

영토와 역사 문제는 우선 선반 위에 올려놓고서라도.


스가 신임 총리가 답할 차례다.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총리의 취임 축하 서한에 하루빨리 화답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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