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길러보기 한 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수염 길러보기 한 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길렀다기보다는 깎지 않았다는 게 맞을 게다.
휴가 때 귀찮아서.
일주일 휴가가 끝나고 회사 출근하는 날, 면도를 깜박했다.
그런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마스크가 가려주었기 때문에.
"어, 함 길러볼까" 로망이 작동했다.
남자라면 한 번쯤 길러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3주일 지나니 제법 덥수룩해졌다. 근데 왠지 지저분한 느낌이다.
머리도 한 달에 한 번 잘라줘야 하듯 수염도 다듬어야 하는 건가?
수염이란 게 고르게 자라는 게 아니다.
털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자라는 방향도 똑바르지 않다.
어떤 녀석은 위로 삐죽, 어떤 녀석은 옆으로 삐죽.
비뚤어진 녀석들이 제법 있다.
이런 군기 빠진 녀석들 때문에 각이 잡히질 않는다.
유튜브를 뒤져보니 '수염 기르는 법' 영상이 수두룩하다.
그냥 면도하지 않는 게 기르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길이가 고르게 되도록 다듬어주는 트리머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12년 동고동락하다 저 세상으로 간 전기면도기와 헤어지고 트리머가 달린 전기면도기를 새 식구로 맞이했다.
3mm, 6mm, 9mm의 트리머를 바꿔 끼울 수 있도록 돼 있는데 3mm가 내게는 적당한 듯싶었다.
다듬으니 "어라, 좀 괜찮아 보이네"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리액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수염을 기르는 사실을 모르는 상대와 만나 반갑게 인사한다.
함께 음식점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마주 앉아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벗는다.
이때 상대의 반응은 대개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 surprise! 놀란다.
"앗 깜딱이야! 너 왜 그래?"
"어머,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왜요? 왜 갑자기 수염을 기르세요?"
두 번째 유형: laugh! 마구 웃는다.
"하하하"
(뭐야 이 웃음은?) 근데 대개는 별로 기분 나쁜 웃음은 아니다.
세 번째 유형: smile. 미소 짓는다.
별 말없이 침묵의 미소만 짓는다.
이건 좀 기분 나쁜 반응이다.
네 번째 유형: poker face. 모른 척한다.
흠칫 놀라는 표정이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상적인 얘기를 한다.
그런데 가끔 눈동자가 내 수염을 향한다.
그러고는 한참을 얘기하다가 묻는다.
"근데 수염 왜 기르는 거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결국은 묻는다.
다섯 번째 유형: 평가를 한다.
평가는 엇갈린다.
먼저 직설적으로 안 어울린다는 평가다.
심지어 나이 들어 보이니 당장 깎으라고 아우성치는 이도 있다.
대개 친구들이다.
두 번째는 긍정 평가.
"의외로 어울리네요" "괜찮은데.."
세 번째 평가는 헷갈린다.
"안 어울리지는 않네요"
이게 뭔 소리지? 안 어울리지는 않다니, 어울린다는 거야? 어울린다는 건 아니란 얘기야? 에잇!
한 달간 수염 길러보기 프로젝트, 이제 막을 내릴 시간이다.
근데 왜 이렇게 아쉽지? 그냥 좀 더 길러볼까?
댓글 보고 결정해야 하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