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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by 윤경민




아름다운 청년

"안녕하세요? 고객님, H손해보험 설계사 김00입니다"
지난 금요일 낯선 보험영업사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댁 엘리베이터 책임보험이 만기일이 다가오는데 명의가 변경돼 계약을 새로 맺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내 주민번호와 집주소가 필요하다고 해서 불러줬다.
그리고는 그가 문자로 내게 보내준 승인번호를 불러달라고 한 순간 혹시... 이거 무슨 피싱 아닌가?
살짝 의심이 든 나는 직설적으로 그에게 말했다.
"승인번호라는 게 당신 휴대전화 번호로 왔는데, 그걸 물어보는 게 좀 이상하네요.
요즘 뭐 이상한 일이 워낙 많으니 기분 나빠하지 말고 내가 당신이 H보험 설계사라는 사실을 확인 좀 해야겠어요"
다소 공격적으로 돌변한 내 목소리와 태도에 그는 생글생글 웃는 표정 (목소리만 들렸지만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으로
"네, 고객님. 요즘 별의별 사기가 다 있죠. 이해합니다. 저는 H보험 여의도지점에 근무하는 SLC 김 00입니다"
"SLC가 뭔가요?" "아, 네, 스마트 라이프 컨설턴트입니다"
나는 즉시 H보험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그의 신분을 확인했다. 그가 불러준 설계사 고유번호가 이름과 소속 지점이 일치했다"
"아, 확인됐습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그럼요, 고객님 입장에서 당연하시죠. 감사합니다"
해당 보험은 1년짜리 책임보험으로 엘리베이터에서 사고가 날 경우 대인 대물 보상을 해주는 보험이었다.
보험료는 1년에 겨우 2만 3천 원이었다. 소멸성으로 돌려받지 못하는 건데, 의무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었다.
"보험 가입하려면 가입자 서명이 필요해서요. 찾아뵙고 서명받겠습니다"
나는 굳이 올 필요 있느냐, 메일로 보내면 서명한 뒤 스캔해서 보내주면 되지 않냐고 했다.
그래도 그는 한사코, 계약 연장이라면 그래도 되지만 첫 계약이니 직접 서명을 받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월요일 오전에 찾아오겠다고 했다.
주말과 휴일이 지나고 월요일 그 설계사가 회사로 찾아왔다.
1층 로비에서 그를 만난 나는 "어디다 사인하면 되죠?"라고 물었다.
그는 "그래도 처음 뵙는데 차 한 잔 하시죠. 제가 보험에 대해 설명도 드려야 하고요"
"아이고 바쁘실 텐데..." 약간 귀찮았지만 응하기로 했다.
1층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값은 그가 치렀다.
테이블에 앉아서 그는 보험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지만 매우 친절하게 해 주었다.
"사고가 안 나기를 바랍니다만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저한테 연락 주십시오.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겨우 1년에 2만 3천 원짜리 보험을 팔기 위해 여의도에서 상암동까지 전철을 타고 온 그였다.
커피값도 그가 냈다. 도대체 남는 게 있기는 있는 걸까?

앳된 나이로 보이기에 물었더니, 27살이라 했다.
입사한 지 이제 6개월. 첫 직장이라 했다.
굳이 올 필요 없는데 뭐하러 왔느냐고 재차 묻자 그는 말했다.
"영업하는 사람이니 찾아뵙고 설명드리고 서명받는 원칙을 지켜야죠. 아주 먼 것도 아니고 서울시내인데요 뭘"

원칙에 충실한 그 청년 설계사에게 나의 친구 이야기를 해줬다.
"어릴 적 친구가 공부는 별로 못해서 전문대를 갔는데, 졸업 후 제약회사 신문광고를 보고 영업사원이 되었고
선임들이 기피하는 시골 약국 영업을 도맡아 열심히 했더니 시골 약사들이 좋아하더라.
그 후 약품 유통회사를 차려서 지금은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영업"이라고"

나는 또 청년의 FM 영업 방식에 감동했고 그 초심 잃지 말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응원하겠다고 말해주었다.
그와 함께 외쳤다 "파이팅!"

오늘 한 아름다운 청년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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