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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독립은 언제쯤?

부사 사과, 신고 배, 아키바레

by 윤경민



부사 사과 신고 배

사과의 품종 중에 '부사 사과'라는 것이 있다.
국내 과수 농가에서 생산하는 사과의 67%가 이 '부사 사과'다.
이미 알고 있거나 짐작하겠지만 '부사 사과'는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이다.
1930년대 후반 아오모리현 후지사키마치에 있는 농림성 원예시험장 동부지부에서 개발되었고 1962년 정식 품종으로 등록되었다.
부사는 미국 아이오와주의 레드 딜리셔스 (Red Delicious)와 버지니아주의 랄스 자넷 (Ralls Janet)을 교배해서 탄생시킨 품종이다.
부사는 富士(ふじ)를 우리 식으로 읽은 것으로, 일본어로는 '후지'라고 한다.
후지라는 이름이 붙은 사연은 이렇다.
처음 개발돼 자란 곳이 아오모리현 후지사키 (青森県 藤崎(ふじさき))라는 마을이었는데 후지사키의 후지가 후지산(富士山)의 후지를 연상하게 한 데다
개발자 중 한 사람이 야마모토 후지코(山本 富士子)라는 여배우의 팬이어서 '후지' 사과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부사 사과가 후지사과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고배가 일본 품종이라는 사실도 아는 사람만 안다.
신고배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배의 품종 가운데 85%나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신고 역시 부사처럼 新高(にいたか)를 한자 그대로 우리 식으로 읽어서 사용하는 말인데,
원래 일본어로는 '니이타카'이다.
1927년 도쿄에서 개발된 품종인데 니아타카라는 어원을 알게 되면 씁쓸해진다.
품질이 우수해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후지산이 아니라 니이타카산이었다. 니이타카산은 일본이 점령한 식민지 대만에서 가장 높은 산 新高山(3952m)로 원래 이름은 유이샨(玉山)인데 일제가 후지산(3776m)보다 높은 '국내' 최고봉이라고 해서 신고산(新高山)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방 7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일본이 개발한 품종, 그것도 그들의 지명과 심지어 침략해 식민 지배한 곳의 지명에서 딴 품종 이름을 우리식으로 읽어서 쓰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한아름' 배, '홍로' 사과 등 국산 품종을 개발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키바레', '고시히카리'와 같이 쌀 품종도 일본 것을 들여와 많이 먹은 것도 사실이다. 그 일본 품종 생산량이 10%에 이른다.

아키바레는 청명한 가을이라는 뜻이고 고시히카리는 일본 중북부 지방(니가타현, 도야마현, 이시카와현, 후쿠이현)의 빛이라는 뜻, 히토메보레는 하눈에 반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홍천쌀, 이천쌀처럼 지역 특산품에다 정부가 진수미, 알찬미, 맛드림과 같은 국산 품종 보급을 늘리겠다고 하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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