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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Dec 05. 2020

경찰서에서 숨은 기사 찾는 법


유형별 취재 방법 1 사건 사고 (경찰, 검찰, 소방서 등)
 
q  경찰서에 숨은 기사 찾는 법.
 
언론사에 들어가면 수습기간에 반드시 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사스마리’ 일본어 사쓰마와리가 변형된 것으로, 경찰서를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아예 경찰서에서 먹고 자는 것은 '하리꼬미'도 해야 했다. 일제 언론 관행의 잔재인 셈이다. 지금처럼 ‘워라밸’ ‘소확행’이 중시되고, 주 52시간 근무가 법적으로 보장된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필자가 초년병 시절, 그리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행처럼 이어져 내려온 기자 교육 방식이었다.
 
가장 큰 특징이자 인권침해 요소는 거의 잠을 잘 수 없다는 점. 거점 경찰서 2진 기자실에서 끽해야 2~3시간 쪽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다. 주로 하는 일은 경찰서 4~5개를 돌아다니면서 사건 사고를 챙기는 일이다. 중간중간에 대학병원과 같은 큰 병원 응급실도 들르고 소방서 전화는 수시로 한다.
 
도대체 경찰서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하느냐고? 그것이 취재의 기초다. 기사 재료를 찾는 것이다. 경찰서 형사계에 들어가면 ‘당직사건처리부’라는 것이 있다. 그 장부에는 밤 사이 들어온 각종 사건이 제목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폭행사건, 변사사건, 절도사건, 강도사건, 살인사건까지. 이걸 보고 기사가 될 만한 것을 찾아서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하게 된다.
 
첫 번째는 당직 형사에게 묻는 것이다. 절도 사건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훔친 건지를 파악해야 한다. 제일 먼저 챙길 일은 피의자가 혹시 일반 대중이 알만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알만 하지는 않더라도 직업이 혹시 특이한 사람인지도 관심사다. 고관대작, 혹은 대학 교수나 의사, 변호사, 학교 선생님 은행 지점장이 절도죄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면 그게 바로 기사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아니더라도 유명인사나 고위층 인물의 자녀, 배우자가 절도 피의자라면 그 또한 기사가 된다. 개가 사람을 물면 별로 기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또한 범행 대상이나 수법도 챙겨야 한다. 고위층 인사의 집만 골라 털어온 절도 사건이라면 기사가 된다. 실제로 80년대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조세형은 부유층 집만 돌아다니며 거액의 현금과 값비싼 귀금속을 골라 훔쳐 ‘대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조세형은 또 그렇게 도둑질한 금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줘기도 해 한때 ‘의적’ ‘홍길동’으로 불리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15년 수감생활을 마감한 후 출소해 선교 활동가로 변신했다는 것도 큰 뉴스가 되었다.
 
그의 뉴스는 여기까지였어야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조세형은 최근(2019년)까지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도둑질을 하다가 감방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대도’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그는 단돈 몇만 원을 훔치다가 걸리는 좀도둑으로 전락했는데 이 또한 주목을 끄는 뉴스가 됐다.
 
조세형 사건과 관련한 웃지 못할 유명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어느 언론사 기자가 경찰서를 돌며 취재하다가 당직사건기록부에 쓰인 이름 조세형을 발견한다. 피의사실은 절도. 그 기자는 당직 형사에게 물었다. “이거 무슨 사건이에요?” “그냥 좀도둑이에요. 피해금액이 얼마 안 돼요” “혹시 조세형이 그 대도 조세형에요?” “뭐 옛날에 이름깨나 날렸던 그 사람 맞긴 해요, 근데 이번엔 몇만 원 훔친 정도라…” 기자의 촉이 움직였다. “한 때 대도였던 조세형이 좀도둑으로 전락한 거네” 그 기자는 바로 추가 취재에 돌입 기사를 완성하고 송고했다. 다음 날 신문에는 그 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그 기자가 다녀가기 전에도 타 언론사 기자들 여러 명이 같은 경찰서 당직사건처리부를 보고 갔지만 아무도 당직형사에게 그 사건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한다. 형사는 묻지 않는 기자에게 일부러 기사 꺼리라고 말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당직사건처리부를 유심히 본 기자가 혹시 하는 생각에 당직형사에게 물어봄으로써 특종기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취재의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 특종이라는 열매를 맺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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