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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Dec 09. 2020

돌다 보면 걸린다

방송기자가 알아야 할 99가지

 
q  돌다 보면 걸린다.
 
떼마와리, 봉숭아학당이나 소그룹 취재로는 특종을 낚을 수 없다. 개별 취재를 해야 단독기사를 챙길 수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다른 기자들과 함께 취재하면 그건 단독 취재가 아니다. 그래서 출입처 ‘마와리’ (돈다는 뜻의 언론계 용어. 일본어 잔재)를 개별적으로 돌아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직접 당국자 방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당국자들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국회 출입기자 시절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을 담당했는데, 매일 아침 2~3명과 전화 통화를 했다. 대변인은 기본이다. 그날 당의 중요한 일정이 뭔지, 당 최고위원회 안건은 뭔지, 현안에 대한 입장은 뭔지 등을 묻는다. 그리고 당일 조간신문에 난 특이 기사와 관련해서 챙겨야 한다. 언론사가 많다 보니 물먹은 기사 투성이다. 24시간 뉴스 채널 속성상 물먹은 기사, 빠진 기사는 반드시 확인해서 맞으면 써야 했다. 당시 필자는 중진(가장 경력이 많은 선배 기자는 여당 반장 야당 반장, 그 다음부터는 서열대로 2진, 3진, 4진, 5진 이렇게 부른다. 중간은 중진, 막내는 말진이다)이었기 때문에 당 대표나 원내 대표와 직접 전화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침 전화 취재 상대는 주로 대변인과 부대변인 정책위의장 정도였다. 그리고 물먹은 기사와 관련된 의원에게 전화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매일 반복됐다.
 
 청와대 출입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아침 7시 출근하자마자 곧바로 조간신문을 훑어본다. 물먹은 기사가 없는지 챙기는 것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대변인에게 전화를 건다. 대통령 일정에서부터 현안에 대한 입장, 다른 언론에 난 특이 기사에 대한 질문을 쏟아낸다. 윤태영 대변인, 김종민 대변인 (현 민주당 최고위원)은 참 친절한 대변인이었다. 필자는 꼭 전화통화 마지막에 하는 질문이 있었다 “제가 뭐 빠뜨린 거 있나요?” 윤태영 대변인은 늘 이렇게 대꾸했다. “아뇨, 챙길 건 다 챙기셨네요” 본인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반드시 별도로 내부 취재를 한 뒤 콜백을 해주던 윤태영 대변인이었다. 대변인 통화 후에는 비서관 통화가 이어진다. 정무비서관, 의전비서관, 정책비서관 등의 순이다. 그날그날 이슈에 따라 전화 상대는 달라진다.


 
에피소드 한 가지 소개한다. 2004년 1월 6일. 여느 때처럼 아침 7시 춘추관에 출근하자마자 조간신문을 훑어보고는 곧바로 전화 취재에 들어갔다. 몇 명째인가 모 비서관과의 통화에서 뜻밖의 기사가 발굴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투표와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자금 사건 수사와 측근비리와 관련한 특검 수사가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재신임 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포석이었다. 시기는 4월 총선에 함께 실시해 대통령 자신에 대한 재신임과 함께 여당에 대한 재신임을 동시에 묻자는 취지로 읽혔다. 곧바로 촉이 움직였다. 이건 파장이 클만한 기사였다. 통화가 끝나고 곧바로 단신 기사를 작성하고 데스크에 보고했다. 국회반장(국회반장이지만 내근 전담 데스크였다)이었던 데스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 뉴스 시간에 전화연결로 가자”
 
역시 촉이 뛰어난 데스크였다. 필자는 곧바로 전화 연결 원고를 써 내려갔다. 오전 9시 뉴스에 톱으로 전화 연결 방식으로 보도가 되었다. 필자의 음성을 타고 노무현 대통령이 4월 15일 총선과 재신임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이 청와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뉴스가 TV를 통해 흘러나오자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춘추관 기자들의 전화에 불이 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치적 파장이 무척이나 큰 뉴스였다. 뉴스가 나가고 얼마 안돼 그 이야기를 해줬던 비서관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 그건 내 의견인데, 그걸 뉴스에 내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는 사견이란 얘기 안 하셨잖아요? 그리고 검토되고 있는 건 맞잖아요?”
“검토되고 있는 건 맞는데 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건 아니에요”
파장이 커지자 슬슬 꼬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다음 시간 뉴스에는 그의 추가 언급을 살 붙여 기사를 작성해 방송했다. 그 뉴스는 며칠 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청와대가 해당 기사는 일부 참모의 개인 입장일 뿐 공식 입장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섬으로써 완벽한 특종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아침 전화 취재가 빛을 발한 좋은 사례임엔 분명하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주일 후 윤태영 대변인이 사석에서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YTN 기사 나가자마자 대통령이 전화해서 불같이 화를 내면서 당장 C비서관 해임 발표하라고 하셨어요. 말리느라고 얼마나 애먹었는지 몰라요”
 
천기누설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그 당사자는 해임되지 않고 청와대에서 말미에 수석비서관까지 지내며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02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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