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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Sep 13. 2021

나라 곳간 거덜낼 기본소득보다 참여소득을 논의하자

피맛골 칼럼 1.


필자는 지난봄 강원도 H군 시골 마을의 모친 집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온 동네 산이 철조망 벽으로 둘러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친의 허름한 농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논둑은 물론 농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없던 대문까지 달려 있었다. 붙어 있는 네모난 표지판을 보니 ASF, 아프리카 돼지 열병 예방용이라는 것이었다. 환경부 허가 없이 철책을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도 붙어 있었다. 멧돼지는 물론 고라니도 못 들어오겠거니 한편으로 고마운 생각이 들면서도 도대체 이 철책을 만들고 세우느라 얼마의 예산이 들어갔을까 궁금해졌다.

 

필자를 놀라게 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주민이 수십 가구에 지나지 않는 한적한 농촌 마을 도로에 새 아스콘이 깔려 있었다. 편도 1차선 시골 마을 시멘트 길이었는데 새로 곱게 아스팔트 포장을 한 것이었다. 주민 입장에서야 깨끗해지고 승차감이 좋아져서 환영할 일이지만 과연 이렇게까지 쓸 예산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필자가 사는 경기도 K시의 한 거리에는 지난여름 어느 날 가로등마다 나팔꽃이 곱게 장식되어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니었다. 거리를 지나는 주민 소수에게 잠시 눈 호강을 하게 해 주었지만 과연 꼭 필요한 장식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돈으로 차라리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삼계탕 한 그릇씩 대접하거나 취약계층 아이들 돌보는 데 쓰는 게 낫지 싶었다. 국민의, 주민의 소득이 증가하고 세금이 많이 걷히다 보니 생기는 일일까.

 

내년 정부 예산안이 사상 최초로 600조 원을 넘었다. 올해보다 8.3%나 늘어난 604조 4천억 원이다. 예산 늘어나는 속도만큼 나라 빚이 증가하는 속도도 빠르다. 국내총생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18년 35.9%에서 내년에는 50%를 돌파하게 된다. 국가 채무가 1000조 원을 훌쩍 넘게 된다 (1068조 3000억 원)

 

대선을 앞두고 현금을 주겠다는 공약이 판을 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 기본 주택, 기본 대출 등 기본 시리즈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전 국민에게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나눠준다는 게 최종 목표라고 한다. 사퇴를 선언한 정세균 전 총리는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아동 수당 확대를 내놓았었다. 부모 소득과 무관하게 만 5세까지 매달 100만 원씩 주겠다는 것이었다. 뒤질세라 이낙연 전 총리도 만 5세까지 매달 100만 원 양육비 지원 공약을 내걸었다. 둘째 아이부터 대학 등록금을 전액 국가가 내주겠다고도 했다. 아동수당을 2030년에는 만 18세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선거 때마다 출마하는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는 자신이 30년 전 국민 배당금 지급, 출산 축하금 3천만 원 지급을 공약했을 때 미친 사람 취급했지만 지금 모든 지자체에서 출산장려금을 주고 기본소득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느냐며 황당 공약 주장에 반격을 가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1억 원과 함께 매달 국민 배당금 150만 원을 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경영 대표를 비롯한 많은 예비 후보들의 이런 공약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퍼주기식 현금 살포 공약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나라 곳간 거덜 날 걱정은 안중에 없이 일단 표를 얻고 보자는 나쁜 공약이라는 거다. 이렇게 세금을 막 썼다가는 국가가 부도 난 그리스 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과 비판도 제기된다.

 

그래서 영국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의 참여 소득(참가 소득)이 주목을 끈다. 부유층과 중산층을 포함한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기본 소득은 불로소득 논란과 함께 근로의욕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본 소득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저소득층과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기 버거운 장애인, 고령자 등의 취약계층에 한해 지급되어야 마땅하다. 그 외에 사회 봉사 활동을 하는 이들에 한해 지원금을 주자는 주장이 바로 참여소득 제도다. 고령자 돌봄 봉사 또는 직업교육과 같은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함으로써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자는 게 참여소득 제도의 목적이다.

 

이 참여소득 제도는 묻지 마 퍼주기 지원과 다르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일본에서도 학자들 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새로운 제도다. 국민연금 고갈, 인구절벽, 소수의 청년이 다수의 고령자를 먹여 살려야 하는 혹독한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기본소득보다는 참여소득에 대한 논의가 대선 후보들 사이에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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