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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Sep 19. 2021

영어의 습격... "와 정말 뷰가 끝내준다"

잔재 일본어가 생명을 다해가면서 그 자리를 영어가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무서운 속도로. TV를 볼 때도 신문을 읽을 때도, 거리를 지나며 상가 간판을 볼 때도,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수많은 영어단어와 마주한다. 


1. 뷰

휴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북한산 향로봉에 올라선 이들이 말한다.


"와! 정말 뷰가 끝내준다! 저기 한강까지 다 보여!"


서울시는 노량진에 세울 고층 집합 임대주택을 이렇게 홍보했다.


"입주민 모두가 한강뷰와 시티뷰를 누릴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 피트니스센터, 스카이라운지, 스터디룸 등 입주민이 이용하는 공동 커뮤니티 시설을 한강 조망이 가능한 최상층에 배치할 계획"


한강이 보이면 한강뷰, 강이 보이면 리버뷰, 도심이 보이면 시티뷰, 산이 보이면 마운틴뷰, 호수가 보이면 레이크뷰. 온통 영어 천지다.


홍보 문구에 나오는 피트니스센터, 스카이라운지, 스터디룸, 공동 커뮤니티... 이것들마저 영어 투성이다. 피트니스센터 대신, 건강센터나 실내운동장, 스카이라운지 대신 하늘 쉼터, 스터디룸 대신 공부방, 공동 커뮤니티 대신 동아리 공간이라고 하면 어떨까.


서울시가 내는 보도자료를 언론은 대부분 여과 없이 그대로 쓴다.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 실제 길거리 간판만 보더라도 헬스센터, 피트니트센터, 스터디 카페, 이런 영어식 간판이 워낙 많다 보니 별 거리낌 없이 영어를 우리말인 양 쓰는 게 버릇처럼 되었다. 


'뷰' 대신 전망이라고 하면 될 굿을 굳이 영어를 쓰는 이유는 뭘까? '경치', '경관', '조망'이라는 좋은 우리말도 있는데 말이다. 한강 조망권, 도심 전망, 산 경치, 호수 경관... 얼마든지 우리말로 표현이 가능하다. 또한 더 다양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다. 


- 리뷰

뷰가 들어간 영어만 따로 놓고 봐도 우리가 얼마나 영어를 습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한 후 감상이나 평가를 하는 것을 두고 흔히 '리뷰'라고 한다. 박스오피스 상위에 랭크되는 영화일수록 리뷰가 많이 달린다. review는 말 그대로 다시 본다는 뜻이다. 재검토한다는 뜻도 있다. 다시 세심하게 살펴본다는 말이다. 책이나 연극, 영화에 대해 비평하거나 논평한다는 뜻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쓰는 리뷰는 그냥 비평 또는 논평이라고 하면 된다. 


- 프리뷰

 뉴스를 포함해 스튜디오물을 녹화하는 부조정실에는 모니터가 여러 개 있다. 그중에 핵심 모니터는 두 개인데, 하나에는 PREV, 다른 하나에는 PGM이라고 쓰여있다. PREV는 Preview, PGM은 Programme의 줄임말이다. 왼쪽 모니터는 다음에 녹화될 화면을 대기시켜 놓는다. preview는 미리 본다는 뜻이다. 같은 말이지만 프리뷰(preview)가 영화계에서는 시사회를 대신하는 말로 쓰인다. 그냥 미리 보기 또는 시사회로 쓰면 될 말을 굳이 영어를 동원해 프리뷰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 페이지뷰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영상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았느냐에 따라 해당 콘텐츠의 인기가 측정된다. 유튜브라는 국경 없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전 세계 누리꾼들의 소통이 가능해진 이후 국내 대중 예술인 가운데 가장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사람은 아마도 가수 싸이가 아닌가 싶다. 그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은 2012년 공개 이후 161일 만에 10억 뷰를 돌파했고 2014년 5월에는 유튜브 사상 최초로 20억 뷰를 넘었다. 2021년 3월에는 무려 40억 뷰를 돌파했다.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BTS는 1억 뷰를 넘긴 뮤직비디오 수가 무려 34개나 된다. '다이너마이트'와 '페이크 러브' ' 'DNA'와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마이크 드롭'(MIC Drop) 리믹스, '아이돌'(IDOL)은 10억 뷰를 넘어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뷰는 조회수를 말한다. 한 사람이 여러 번 동영상을 재생하기도 하는데, 유튜브의 경우 같은 IP에서 여러 번 틀어도 1회 재생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사실상 지구에 사는 사람 거의 대부분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10억 뷰 대신 10억 조회수라고 해도 되는 것을 많은 매체들이 '뷰'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영상이 아닌 글의 조회수를 흔히 페이지뷰(page view)라고 하는데 이는 방문자수라는 말로 대체하면 되겠다.


-박스 오피스

앞서 영화 리뷰 이야기를 하면서 박스오피스와 랭크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들 또한 영어다. 박스 오피스(box office)는 극장 매표소를 가리키는 말로, 통상 영화나 연극 따위의 흥행 수입을 말한다. 박스 오피스 1위 대신 흥행 1위, 인기 1위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랭크는 순위에 매겨졌다, 올랐다는 우리말 표현이 있다. 


-비주얼

경치, 전망이 좋다는 걸 '뷰'가 좋다고 하는데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는 '비주얼'이 좋다고들 한다. 비주얼(visual)은 원래 '시각적인'이라는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잘 생긴 외모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인다. 심지어 특정 집단에서 가장 외모가 뛰어난 사람을 가리켜 '비주얼 담당'이라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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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연예인들의 외모를 묘사할 때 쓰이는 제목에 등장하는 단골 표현이기도 하다.


-비주얼 마케팅

'비주얼 마케팅'이란 표현도 있다. 상표나 상품 차별화의 요소로 '비주얼'을 활용하는 판매활동을 일컫는다. 단순히 상품을 시각적으로 멋지게 노출시켜서 구매 의사를 높이는 게 아니라 제품의 정체성을 실현하거나 기업 이미지를 가시적 형상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말하는 마케팅 용어다. 

국립국어원은 대체 용어로 '진열 판매'를 제시했다. 필자는 '시각적 판매전략'을 제안한다.


-마케팅 리서치 

마케팅이란 말이 나왔으니 경영학 용어도 잠시 살펴보자. 마케팅 리서치는 시장 조사, 혹은 소비자 조사, 상품 조사라는 표현으로 쓰면 된다. 


-노이즈 마케팅

때로는 노이즈 마케팅이(noise marketing)라는 수법도 동원된다. 자신들의 상품을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도록 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서 판매를 늘리려는 기법이다. '반일 종족주의'나 '제국의 위안부'와 같이 정치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책이 많이 팔린 것도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의 덕을 봤다고 볼 수 있다. 연예인의 경우 '악플'보다 '무플'이 더 서글프다고 하듯 노이즈 마케팅은 상품뿐 아니라 대중적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에게도 통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부고' 빼놓고는 무슨 내용이라고 언론에 기사가 나는 걸 선호한다. 무관심은 곧 정치생명의 부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노이즈 마케팅 대신 '구설수 홍보'라는 우리말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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