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겨울, 미리 준비해야 따뜻하다"
노래하는 방통위원... "인생의 겨울, 미리 준비해야 따뜻하다"
6년 전부터 기타를 배워 고향 울릉도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는 사람이 있다. 현 방송통신위원회 김창룡 상임위원이 그 주인공이다. 김 위원은 넉넉지 못했던 젊은 시절 관광객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씩 팔며 번 돈으로 학비를 마련했다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기부를 위해 버스킹 공연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게 '400원의 기적'이었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 대학 재학 시절 학비 마련을 위해 팔았던 ‘울릉도 신비의 약차 감초차’ 한 잔 값이 400원이어서 붙인 표현이다. 그렇게 자수성가한 그가 느지막한 나이에 '1000원의 기적'을 일구는 도전에 나섰다. 자신의 고향인 울릉도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며 관객들로부터 천 원씩 기부받아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착한 프로젝트다.
실제로 그는 대학 교수 시절 여러 차례 방학기간을 활용해 울릉도 버스킹 장기 공연을 열었다. 첫 공연 당시 비록 관객은 소수였지만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등에 땀줄기가 흘러 흠뻑 젖었다고 회상한다. 도전은 예상외로 성공. 1시간 반 동안 관객들과의 대화를 곁들이며 20곡을 부르는 공연을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 10여 차례 했더니 백십만 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는 것이다. 공연 취지에 공감한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지갑을 열더니 천 원, 5천 원, 만 원씩 기꺼이 베풀었다고 한다.
김 위원은 그 수익금에 자신의 돈 백만 원 가까이 보태 2백5만 원을 울릉군청에 기부했다. 울릉도에 사는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얼굴 모를 아이들에게 일종의 장학금을 수여한 셈이다. 2백5만 원을 기부한 이유는 2백만 원씩 5번을 기부하겠다는 의미라는 게 김 위원의 부연설명이다.
실제로 그는 이후 또 한 차례의 울릉도 버스킹 공연을 했고 추가로 2백만 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앞으로 3번 남았어요. 지금 공직자 신분이기도 하고 바빠서 못하고 있는데, 약속한 대로 반드시 나중에 5번 버스킹 공연을 꼭 할 겁니다. 장학금 기증도요"
그는 버스킹에 앞서 울릉도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논술지도도 했다. 2014년 방학 때 고향 섬을 찾아, 말하자면 재능 기부를 했던 것. 하지만 처음엔 그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주는 주민은 적었다. 오히려 울릉군수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며 경계심을 갖고 쳐다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심 없이 꾸준히 논술지도를 하다 보니 주민들은 마음을 열고 그를 받아주었다. 그의 울릉도 버스킹 공연은 그래서 가능했다.
무엇이 고향 울릉도로의 회귀 본능을 작동시켰을까? 갖은 고생 끝에 대학 교수가 되고 학교에서도 인정받는,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불현듯 2% 부족함이 느껴졌다. 한참 일에 바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것은 바로 ‘나눔’이었다. 내가 가진 재능을 누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 그것은 자신을 위한 기쁨이 될 것이란 것도 짐작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그가 나고 자란 울릉도를 찾아 나누고 봉사하는 것이었다. 특히 꿈 많은 어린 학생들을 위한 논술 지도와 버스킹을 통한 장학금 수여.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자신이 논술을 가르쳤던 고향 제자들이 명문대학에 합격했다며 감사 인사를 해올 때 느끼는 흐뭇함과 벅찬 보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고 그는 미소와 함께 말한다. 그것이 진정 실천하는 나눔의 기쁨일 것이다.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김 위원의 태권도 사랑도 유별나다. 한 때 이스라엘에서 태권도 사범도 했다는 그는 국민일보 기자 시절 걸프전 종군기자로 취재할 당시의 일화를 전해줬다.
"서구 언론사 기자들 앞에서 태권도복 입고 검은 띠 동여매고 품새 동작을 했더니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외국 기자들이 나한테 관심을 나타내더라고요. 그 후로 취재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죠. ㅎㅎ. 그래서 그때부터 해외 출장 갈 때는 태권도복을 항상 챙깁니다"
그가 자원해 날아간 전쟁터에서, 서구 언론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취재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태권도라는 비장의 무기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 태권도가 외국에 가면 그처럼 크게 사랑받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요즘 찬밥신세인 게 안타깝다며 K팝처럼 태권도도 전 세계 열풍을 우리가 만들어보자는 게 그의 제안이다. 외국 학교에 태권도 사범을 보내고 외국 태권도 선수를 국내에서 연수시키는 '태권도 외교'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껏 올려보자는 것이다. 절도 있는 태권도 품새와 화려하면서 강렬한 격파, 태권도 군무가 제2의 한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다.
김창룡 삼임위원은 원래 학자다. 영국 카디프대학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인제대 신문방송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곧 정년을 맞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히 나눠주며 살아가면 되기 때문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지금까지 무려 18권의 책을 써낸 그는 앞으로도 저술 활동을 지속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내년 2월에는 19번째 출간이 예정되어 있다.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들, 이 시대 중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그만의 인생철학을 녹여낸 책인 듯하다. 그는 자연에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있듯이 인생에도 4계절이 있다고 말한다. 노년층에 접어드는 지금이 본인에겐 초겨울이라고. 그래서 가을인 50대부터 월동준비를 해왔고 앞으로도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가을에 월동준비를 하지 않아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도전이다. 뒤늦게 기타 연주를 배우고 노래하는 것도, 붓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매주 아내와 테니스를 치는 것도 인생의 한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이다. 음악과 예술, 운동은 즐거움이자 늙어도 늙지 않게 해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도전이며 특히 혹독한 겨울 맹추위에 떨지 않고 여유 있고 따스한 겨울을 나려면, 다시 말해 잘 늙어가며 초라하지 않은 죽음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그가 던지는 메시지다. 적어도 50대에는 그런 준비를 하고 도전을 해야 늙어감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죽음을 순리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의 짧은 대화에서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하루였다. 이런 분과는 자주 함께 식사하며 지혜를 전수받았으면 한다.
2021년의 마무리를 앞둔 어느 날, 윤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