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과 둔감 사이
2년 전 이맘때 온 국민의 관심이 대구에 쏠렸다. 이른바 ‘신천지 발 코로나 사태’때문이었다. 당시 전국에서 발생한 하루 최고 신규 확진자는 8백 명 대였다. (2월 28일 813명) 대구시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거리는 텅 비었고 약국마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대구의 공포는 전 국민의 쇼크로 확산됐다.
이후 일일 확진자 수는 백 명 아래로 뚝 떨어졌지만 몇 달 가지 못했다. 광복절을 지나며 3백 명대로 늘어났다. 종교 단체 등의 광화문 집회가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를 계기로 집회와 시위는 금지됐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엄격히 적용한 것이다.
개천절과 한글날 대규모 집회가 예고되자 경찰은 원천봉쇄에 나섰다. 광화문 일대에는 차벽이 둘러쳐졌다. 대규모 집회가 어려워지자 소규모 집회가 등장했다. 소수의 자동차 주행 시위라는 새로운 풍경도 생겨났다.
작년 10월 하루 확진자가 천 명대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10만 명 안팎의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 생각해보면 '새 발에 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물론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리라고 그 누가 예측했겠는가. 때문에 그때 그 숫자도 당시의 감각으로는 큰 숫자였을 것이다.
공식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후보들의 유세장마다 인파가 몰린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 규모다. 캠프 관계자, 선거운동원, 지지자, 일반 유권자들이 몰리면서 사람들끼리 밀고 떠밀린다. 2미터 거리두기는 온 데 간데없다. 사전에 예고된 집회와 달리 촘촘한 방역이 지켜지기 어려운 구조다.
확진자가 하루 백 명대였을 때 차벽까지 동원하며 집회를 금지했던 것이 과잉대응이었을까, 아니면 하루 10만 명대인 요즘 발 디딜 틈 없는 유세장을 허용하는 것을 원칙 없는 무대응이라고 해야 할까.
확진자 한 명 한 명 동선 파악하며 역학 조사하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알아서 집에서 치료하란다. 재택 치료 중이던 7개월 영아와 50대가 숨을 거뒀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귓전에 맴돈다.
그때는 호들갑이었고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인가?
민감과 둔감 사이에서 국민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