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 이렇게 멋진 산이 있다니 부럽다” 외국인 친구들이 가끔 필자에게 하는 말이다. 평소 산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무척 공감 가는 말이다. 해발 837미터의 북한산은 서울 은평구와 종로구, 경기도 의정부시와 고양시, 양주시에 걸쳐진 국립공원이다. 기암절벽과 계곡, 수려한 경관, 고즈넉한 사찰들을 지닌 북한산은 수많은 시민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선사한다. 이렇게 멋들어진 산을 가진 수도가 전 세계에 그리 많지 않다. 가까운 일본 도쿄도 거의 평지여서 산에 가려면 열차를 타고 2시간을 가야 한다. 미국 워싱턴 D.C도 마찬가지다. 런던과 파리에도 언덕배기 정도만 있지, 산이라고 할 만한 곳은 없다.
북한산뿐이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등장하는 명산 인왕산 정상에 올라서면 청와대와 광화문 거리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338미터의 나지막한 산이기에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 코스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법하다. 서울 동북쪽으로는 739미터의 도봉산이 자리 잡고 있고 한강 이남에는 관악산(해발 632미터)이 서울과 과천 안양에 걸쳐 우뚝 솟아 있다. 강남 동쪽에는 청개산(618m) 대모산 (293m) 구룡산 (306m) 등이 사계절 등산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서울 시내에만 마흔 개가 넘는 산이 있다 보니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국토의 70%가 산이다 보니 서울에 이처럼 아름다운 산과 숲이 많은 게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접근이 편리한 산이 많다 보니 등산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9년 ‘월간 산’이 주관한 설문조사 결과 매달 한 번 이상 등산이나 트레킹을 즐기는 국민은 전체 성인의 62%에 해당하는 26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산을 오르다 보면 20대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많은 이들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안구를 정화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 산을 찾는 것이다. 골프 같은 고급 스포츠에 비하면 돈도 들지 않으니 이 얼마나 안성맞춤이겠는가.
하지만 무턱대고 산에 올랐다가 힐링은커녕 낭패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산악 사고는 1년에 만 건이나 발생한다. (2020년 9890건/ 소방청 자료) 아슬아슬한 절벽에서 무리하게 셀카를 찍다가, 바람에 날린 모자를 붙잡으려다가, 낙엽 속에 숨은 빙판으로 보지 못해 사고가 난다. 2020년의 통계를 보면 실족 추락사고가 4분의 1, 길을 잃는 조난사고가 각각 4분의 1이나 됐다. 심장마비 등 질환은 10% 가까이 됐고 탈진 탈수가 5%를 웃돌았다.
산은 준비되지 않은 자를 품지 않는다. 교만한 자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도사린 위험에 주의하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이들에게만 안식을 건네준다. 정해진 등산로를 이용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길을 잃었을 땐 반드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제대로 길을 모른 채 무리하게 계속 앞으로 나가다가는 조난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벼랑을 만났을 때 무리하게 내려가다가는 실족사고를 당하기 십상이거든요”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50개 주 최고봉에 올랐고, 7 대륙 최고봉 중 에베레스트산을 제외한 6 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반한 한인석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명예총장의 당부다. 그는 초심자를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들을 이렇게 일러줬다.
한인석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명예총장(오른쪽)
첫째, 조난 시 저체온증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여벌의 겉옷. 둘째, 물과 초콜릿과 같은 열량 높은 비상식량. 셋째, 해가 지고 길을 잃었을 때에 대비한 헤드렌턴. 넷째, 접찔림을 방지하기 위한 발목 등산화
산악사고는 단풍철을 맞아 등산객이 늘어나는 10월에 가장 많이 발생하지만 (14%) 봄맞이 등반객이 증가하는 4월에 일어나는 것도 10% 가까이나 된다. 이제 곧 골짜기의 눈과 얼음이 녹는 봄이 온다. 겨우내 쌓인 심신의 피로를 풀러 산에 오르는 이들이 늘어날 때다. 준비되지 않은 자, 교만한 자는 결코 배려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