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박빙이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선거의 판세가 그렇다. 언제 깨질지 모를 살얼음(薄氷) 판과 같다는 얘기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누가 승자가 되든 과반 지지를 얻을 수는 없어 보인다. 여론조사의 추이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누가 되든 40%도 안 되는 표를 얻고 당선될 확률이 높다. 절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지지를 받으며 권력을 쥐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 대통령이 과연 국정을 힘 있게 이끌고 갈 수 있을까?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비아냥 속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그래서 벌써부터 대선 후가 걱정이다. 누가 되든 국론분열, 갈라 치기의 후유증이 커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같은 당 경선 과정에서도 후보 간, 후보 지지자 간에 생긴 깊은 앙금을 씻어내기 어려울 정도인데 본선에서는 오죽하겠는가?
1987년에는 DJ와 YS라는 두 거물이 함께 양보 없이 겨루다 노태우가 어부지리를 누렸다. 그때 노태우의 득표율은 겨우 36%였다. 군사독재를 5년 더 일찍 끝낼 수 있었음에도 ‘보통사람’으로 포장한 전두환의 꼭두각시에게 정권을 내주고 만 것이다.
김영삼은 3당 합당으로 청와대에 입성했고 김대중은 DJP연합으로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두 사람의 득표율은 모두 42% 미만이었다. (김영삼 41.96% 김대중 40.27%)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당시 국정농단 사태와 성난 촛불 민심이라는 매우 유리한 환경에서도 야권 분열 속에 41%대의 그리 높지 않은 득표율로 정권을 차지했다.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이끌어냈던 (막판에 정몽준이 철회했지만) 노무현 (득표율 48.91%)과 범 여권의 분열 속에 약체 후보와 맞섰던 이명박(득표율 48.67%) 만이 그나마 절반에 가까운 표를 얻었다.
절반의 지지도 얻지 못한 채 취임하다보니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추진력이 생길리 없다. 그러니 결선투표제 도입 주장이 나온다. 단일화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투표 용지 인쇄를 목전에 둔 지금도 단일화 요구 목소리가 줄기차게 들린다.
최근 25년간 7차례 대선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당선자는 박근혜다. 박근혜는 절반을 넘는 51.55%의 득표율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라는 기록마저 세웠다. 역대 가장 높은 득표율로 권좌에 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권좌에서 내려오는 기록을 세운 것도 박근혜다. 구중궁궐 청와대 관저에서 담을 쌓은 채 민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소통을 거부하다 탄핵을 자초한 비극의 대통령이었다.
오는 3월 9일 탄생할 차기 대통령은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설령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다고 해도 교만에 빠져서는 안 될진대, 과반의 반대 속에 권력을 획득한 자가 교만해서 되겠는가?
국민을 받드는 자세여야 한다. 낮은 자세로 야당을 포함한 모든 반대 세력과도 힘을 합쳐야 한다. 분열은 파국을 초래한다. 서로 쌈박질만 하기에는 국제정세가 너무나도 엄혹하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재난,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난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정치권의 화합과 국민 통합 만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그게 다음 대통령에게 내리는 국민의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