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이 되어버린 '하루 열 통화 걸기'
연초에 새롭게 도전했던 '하루 열 통화 걸기'가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나버렸다.
애초 목표가 너무 높았던 걸까. 업무 외의 전화를 열 통화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 이유는 그동안 알고 지낸 수많은 이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였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문자 소통은 셀 수 없이 하지만 전화 통화를 할 일은 갈수록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왠지 인간미가 없고 삭막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단톡방'과 마주한다. 거기에서 때로는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가기도 하고, 전혀 공감가지 않는 그들만의 채팅이 오가기도 한다. 이를 이따금씩 '눈팅'만 할 뿐, 나의 존재는 묻혀 있다고 느껴지는 고독한 채팅방도 부지기수다.
가끔 주말 가족과 외식을 나가면 익숙한 풍경을 목격한다. 분명 한 가족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각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대화는 없다. 예전엔 생경한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커피숍에 앉은 연인이 각자 핸드폰을 쳐다보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럴 거면 뭐 하러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뭐 하러 연인끼리 데이트를 하나.
이런 일은 심지어 직장에서도 펼쳐진다. 바로 몇 걸음만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있는 직원과 메신저로 대화한다. 눈을 마주 보고 입을 열어 대화하는 일은 줄어든다. 메일로 업무 이야기를 하고 메신저로 필요한 소통을 한다. 그게 편한 때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 자식 간에도 전화로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문자로 대화하는 일이 더 잦다. 부부끼리도 그렇다. (이건 필자뿐일까?) 말로 하는 대화가 줄다 보니 말로 소통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뭔가 어색해진다. 가족이라는 일체감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연초에 계획했던 도전은 바로 이런 문자 대화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이들과 소통하고자 함이었다. 이 도전이 실패한 이유는 사람들이 '오랜만의 대화 시도'에 익숙지 않은 탓이었다. 대부분 기대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상대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전화를 했지? 돈 빌려달라는 건가?" 말은 안 했지만 심지어 이런 느낌을 주는 이도 있었다. 연초여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부터 할 수 있어 어느 정도 대화가 이어지긴 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신정에 이어 구정도 지났으니 이제 새해 인사로 대화의 문을 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도전의 계기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였다. 10년 전쯤 퇴직하신 전전 직장의 한 선배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답이 왔다. "목소리 듣고 싶으니 전화 하소" 필자는 즉시 전화를 걸었다. 그 선배는 너무나도 반가운 목소리로 나의 근황을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은퇴한 대선배, 그 선배에게 혼도 많이 났지만 신세도 많이 졌던 터라 점심 한 끼 꼭 대접하고 싶었다. 우리는 10여 년 만의 점심 식사를 실현했다. 문자보다는 육성으로 나누는 전화 통화, 그보다는 만나서 눈을 마주 보며 나누는 대화가 훨씬 인간적이다.
비록 새해 도전은 작심삼일에 그치고 실패했지만, 하루 3 통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나누는 대화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