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은 이유
"에이 거짓말! 어떻게 한 반에 70명이나 앉아서 공부를 해요?"
지금 고3인 둘째 아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한 말이다.
필자가 학교에 다녔던 70~80년대, 그땐 그랬다.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땐 학생 수에 비해 교실이 모자라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는 2부제 수업을 해야 했다. 조개탄을 때는 교실 난로는 구릿빛 도시락 수십 개가 서로 따끈한 아래쪽을 차지하려는 전쟁터였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도 그렇지만 "오라이!" 안내양이 학생들을 구겨 넣듯 버스로 밀어 넣고 이 한마디 해야 버스가 출발하는 '만원 버스'는 일상적인 통학 풍경이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이 표어 때문이었을까? 필자 또래 대다수는 형제나 3형제가 다수였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 삼촌 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6남매, 9남매가 보통이었다. 간혹 또래 중에도 유별나게 형제가 많은 친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구룡이었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9형제 중 막내였다. 큰 형 이름이 일룡이었다.
필자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형뻘 되는 사람들 말로는 예비군훈련장에서는 공짜로 정관수술도 해줬다고 한다. 그만큼 출산율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이 사회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었다. 피임약 공급을 늘리는가 하면 심지어 대놓고 낙태를 권장하기까지 했다. 비윤리적인 행위가 버젓이 행해지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인구 억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리라.
1980년을 기준으로 40년 만에 우리 사회 풍경은 반전되었다. 결혼하기 힘들어지고 아이 키우기 힘들어지다 보니 출산율(출생률)이 전 세계 꼴찌로 떨어졌다. 두 남녀가 결혼해 최소 두 명은 낳아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합계출산율이 0.8밖에 안 되니 인구절벽에 다가서게 된다. 실제로 대한민국 인구는 2020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5천만을 조금 넘는 현재의 인구가 47년 후인 2070년에는 3800만 명 이하로 주저앉는다. 인구는 국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노동력, 군사력, 경제력, 내수시장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구가 급감한다는 것은 경제력과 군사력의 약화, 결국 국력의 쇠락을 일컫는다.
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이 겪어야 할 고통은 더욱 큰 문제다. 당장 나의 자식과 손주 노인은 넘쳐나는데 그들을 부양해야 할 젊은이들은 줄어들다 보니 거액의 세금 내다가 허덕이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국민연금 개혁 필요성이 그래서 제기된다.
1년쯤 전과 바로 며칠 전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1년 전쯤 늦둥이가 생겼다는 한 후배가 난처한 표정으로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필자는 거두절미하고 한 마디만 해줬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 그리고 첫째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 보라" 그 후배는 부인과의 상의를 거쳐 출산을 결심, 첫째 딸에 이어 떡두꺼비(이건 시대에 뒤떨어진 남아선호사상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우량아라고 해서 고른 상투적 표현이다) 같은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돌이 지난 지금 물어보니 처음에는 일과 학업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해 망설였지만 낳길 잘했다며 밝은 낯으로 답한다.
"여섯 살 아래인 둘째 아이가 큰 딸아이에게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남매 사이에서 생기는 애정, 상호작용을 보면서 둘째 낳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불편함도 따르고 걱정도 앞선다.
"평일에는 육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휴일에나 하는데, 밥 먹이는 것부터 목욕시키는 일, 그리고 가사 도우미 역할까지 하려니 힘들죠. 아이한테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육아휴직을 쓰려고 해도 외벌이라 부담이 되는 데다, 실행에 옮기기에는 회사 눈치가 보인단다. 아빠의 육아휴직 3개월. 홋벌이 늦둥이 아빠에게는 너무 짧다. 그래도 그의 표정은 밝다.
"아이의 미소가 좋아요. 모든 피로를 녹여주는 방긋 미소가 행복의 원천이죠"
또 다른 여자 후배는 최근 여섯 살 터울지게 될 둘째 아이를 가졌다며 필자에게 슬쩍 자랑했다. 필자가 평소 하도 인구절벽 걱정을 해서 그런지 '여보란 듯이' 임신 사실을 귀띔해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다가올 육아의 과정이 막막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축복이기에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걱정도 있다.
"두 아이가 터울이 많이 져서 부모 입장에서는 두 배로 시간과 관심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살짝 있죠"
경력단절도 작은 걱정이 아니다.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예요. 출산보다 그 이후의 과정, 아이 양육보육에 대한 지원이 명확히 있어야 안정적으로 복귀 계획 세울 수 있기 때문이죠"
대기업 직원이기에 법으로 정해진 출산 육아 휴가를 쓸 수 있고 복직이 보장되는데도 이런 걱정을 하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죽하랴. '연봉 천만 원 버는 갓난아기'라는 제목까지 등장시킨, 올해부터 도입된 부모수당이 출산율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까?
"없는 것보다는 확실히 도움이 되지만 1~2년 지원에 대한 기대감으로 '출산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출산과 아이 양육은 마라톤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지원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차적으로는 유아기 시절의 양육 문제, 2차적으로는 학창 시절 교육비 등이 부모들에게 큰 부담으로 느껴지는 고비의 순간들인데, 단순히 출산지원금, 부모수당 만으로는 전체적인 로드맵 설계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장 어린이집이나 육아도우미 지원 정책이 더 절실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아이 키우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저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보다는 부모가 마음 놓고 일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국가와 지자체, 기업이 아이 돌보는 지원 역할을 체계적으로 해줬으면 한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그래야 경력단절 여성도 줄고, 경제활동 인구가 늘어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가 한 가정 만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 국가, 사회 모두의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구소멸, 지역소멸, 귀가 따갑게 들어온 이 말. 이제는 당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혼과 비혼이 늘어나는 요즘 늦둥이 아이를 가진 후배의 이 말은 울림이 크다.
"자녀가 주는 기쁨, 자녀로부터 받는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쯤'은 꼭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후배들이 점차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