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물컵을 채우라

고뇌 끝에 내린 대승적 결단... 일본은 호응해야

by 윤경민

정부가 일본의 전범 기업 대신, 국내 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대법원의 판결금을 지급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은 고뇌의 결단이다. 결정과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피해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또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을 만날 때마다 문제 해결의지를 밝히고 성의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피해자와 관련 시민단체의 반발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가해자인 전범기업의 직접 배상과 일본 정부의 사죄를 줄기차게 요구했던 피해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반발과 비판을 무릅쓰고 정부는 왜 사실상 정부의 판결금 지급이라는 결단을 내렸을까? 차라리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었더라면, '나 몰라라' 했더라면, 야당의 거친 비판도 피해자들의 거센 반발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되레 정치적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죽창가'를 부르면 그만이다. 반일감정을 부추겨 지지를 얻는 것만큼 식은 죽 먹기는 없다. 이전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실제로 써먹었던 수법이다. 이전 정부가 딱 그랬다.


그런 걸 다 알면서도 현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정치적 이익보다는 국가의 실익을 중시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흠집을 입더라도 더 이상 한일관계를 파탄 나게 할 수는 없다는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도 앞서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공을 정부에 넘기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만일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과연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이 스스로 기꺼이 배상금을 내놓고 머리를 조아려 사죄했을까? 물론 그렇게 한다면 더없이 반가운 일이겠지만 지난 4년 일본의 행태를 보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어두운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형님 외교'로 너그럽고 통 크게 일본을 대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보다 열세였던 것은 불과 백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수천 년간 우리가 우위에 있었다. 한자와 불교를 비롯한 우수한 문화를 전해주었다. 조선통신사 행렬이 지날 때마다 일본 열도 곳곳에는 선진문물을 배우려는 이들로 가득했다. 단지 우리보다 먼저 근대화를 이루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국민 소득도 뒤집히고 있다지 않은가. 우리는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에 들었고, 문화로 치면 최강국에 접어들었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맞서 한일 두 나라는 손을 잡아야 한다. 불안한 동북아 안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일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 얄궂어도 일본은 함께 가야 할 파트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일본은 수출 규제를 풀고 한국은 지소미아를 정상화해야 한다. 이미 코로나 이후 한일 민간 분야 갈등의 장벽은 무너졌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찾고 한국인들이 일본을 찾고 있다. 슬램덩크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고 일본 오리콘 차트는 K팝이 점령하고 있다.


누가 과거를 잊자고 했나? 과거의 역사는 역사대로 직시해야 한다. 다시는 침략당하지 않도록 역사의 거울을 매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일본은 호응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대승적 결단에 화답해야 한다. 가해 기업들의 자발적 모금 참여,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박진 장관은 반쪽 해법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절반 이상 물이 찬 컵이 일본의 호응에 따라 더 채워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의 말처럼 일본이 물이 넘쳐흐를 만큼 컵에 물을 부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국익을 위한 고뇌의 결단을 놓고 국내가 분열되고 갈등이 깊어진다면 그것은 물 잔을 깨뜨리는 것이다. 가까스로 채우기 시작한 물을 엎지르지 말자. 그것은 일본의 극우세력이 원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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